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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싫은 걸까, 아이가 있는 삶이 싫은 걸까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인 이유

by 이사비나

50년대 생 아빠와 60년대 생 엄마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잘 지켜 정말 딸을 둘만 낳아 잘 키우셨다. 그 베이비부머의 세대의 자녀인 80년대생 '나'는 둘을 낳아 '다자녀' 부모가 되었고, 90년대생 동생은 딩크를 (잠정) 선언했다. 그리고 나라에선 제발 하나라도 낳아주면 다 키워줄 테니 낳기만 해라라는 표어를 내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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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둘이라도 낳은 나는 2010년대생 첫째와 2020년대생 둘째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 노인 인구가 한국 인구의 반이 된다고 하던데, 이 아이들이 겪을 경제적, 사회문화적 어려움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지구의 '초품아'를 찾아 캐나다로 떠나볼까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은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어서 아이들이 걸어가기 편해서라고 하지만, 사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 살고 고싶은 것이 아닐까?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이가 많은 곳은 일단 안전하다는 뜻이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 교육 시설 등 여러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는 곳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서 1년 동안 지내며 내가 이곳으로 잠시 이사 온 게 마치 '초품아'를 찾아 떠나는 부모들과 같다고 느꼈다. 아이가 없는 한국을 떠나 아이들이 어디든 있는 캐나다라는 나라로. 지구에서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지 않는 지방의 한 도시와도 같다면, 캐나다는 그나마 여전히 아이들이 있는 서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자녀가 '보통'으로 여겨지는 캐나다


처음 하교를 데리러 간 날이었다. 세모의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하나, 둘 엄마들에게 달려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 둘, 셋, 넷?! 아이가 네 명인 집이 있었다. '와 진짜 많네...' 둘을 낳고서도 절대 셋째는 없다 했던 나로서는 어떻게 넷을 낳았을까 그 엄마가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둘째의 친구는 심지어 다섯째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처럼 두 명인 집도 물론 있었지만, 한 명으로 끝내는 집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둘이나 셋은 낳는 분위기.


2023년 기준, 캐나다의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43명이라고 한다. 2023년 기준, OECD 국가 9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0.81명으로 가장 낮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아이와 살아보니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을 어딜 가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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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육아휴직 제도가 부러웠던 미국 엄마들


왜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투자하는데도 계속 예상과 다르게 출산율은 늘지 않을까. 미국에서 해외 출장을 갔을 때, 과제가 미국인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인터뷰의 내용 중, 미국의 육아휴직에 대한 생각을 묻는 내용이 있었다.


"아이가 있으신데 미국에서는 육아휴직 제도가 어떤가요?"

"육아휴직이 있으면 다행이죠. 보통은 6주 정도 쉬면 다 다시 일을 시작해요. 한국은 어때요?"

"한국에서는 1년 정도 육아휴직을 주고, 공무원은 3년도 줘요."

"3년이라고요?!"

놀라는 그녀들의 모습에 약간 뿌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뭔가 이런 제도도 있다고 자랑하듯 나는 한 술 더 떠 말했다.

"그리고 어린이집이 무료예요. 나라에서 보조금을 대줘요."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시간당 돈을 내야 하는 캐나다의 현실을 듣고 나는 우리나라가 정말 아이가 있다면 키우기 좋은 나라구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가 싫은 걸까, 아이가 있는 삶이 싫은 걸까


우리나라에는 노 키즈존이 있다. 이 개념이 아이에 대한 '혐오'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배려받은 일도 많았고 아이를 보면 여전히 귀엽다고 웃어주는 청년들, 노인들, 그리고 아이들마저도 아기를 귀여워해준 경험이 더 많다.


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아이가 싫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이가 있는 삶이 싫은 거다. 아니. 아이가 있는 삶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들에 취약하다. 굉장히 계획적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 오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의대를 가기 위해 7세 고시를 준비하는 것처럼. 그런데 결혼과 출산, 육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통과의례나 마찬가지다. 일단,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인식이 이 모든 것들을 망설이게 한다.


한국에서 결혼과 육아는 희생이다.

캐나다에서는 결혼과 육아는 운명이다.


한국에서 행복은 평범한 삶이다.

(평범하다는 기준에서 벗어나면 불행한 삶이다.)

캐나다에서 행복은 현실에서 기대를 뺀 삶이다.

(어쩌면 행복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잘 키워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우리가 가정을 이루는 이유는 이 가족의 구성원,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삶의 매 순간을 누리고 싶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것을.


가족은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할 시간, 서로를 알아갈 시간, 그리고 충분히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부모를 집으로 일찍 보내주어야 한다.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학원에 갈 필요 없이 부모가 집에 일찍 갈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또 준비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알아갈 시간을 빼앗는 직장 문화가 해결되어야 한다. 돈을 줄 테니 아이는 이 돈으로 키우고, 당신은 직장에서, 사회에서 효율을 내야 한다는 정책들은 한국이 추구하는 "사람보다 효율성"의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는 학원을 돌고 부모는 회사에 시간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가족'이란 공동체로 기능하게 해주지 않는 시스템은 개선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의 직장 문화는 우리가 조직을 위해 일하길 바란다.

캐나다의 직장 문화는 개개인이 모두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





자꾸 서러워지는 한국의 워킹맘

2월 말,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고 학년 마무리로 가장 바쁜 시기,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혹시나 해서 나도 검사를 했더니 독감이었다. 열이 많이 나는 데다가 차로 3시간 거리에 사는 부모님께 갑자기 와서 봐달라고 하기에도 죄송했다. 친정 엄마가 독감에 옮을 수도 있는 걸 알면서도 부탁하는 불효는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독감인데 출근을 해서 동료 선생님들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교감 선생님, 아이가 독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도 독감이라고 하네요. 오늘 병가를 써도 될까요?" (쓰겠습니다도 아니고 써도 될까요?라고 말해야 한다니.)

"할 일 다 하셨어요?"

"네. 혹시 급한 건 제가 재택으로 바로 생기부 수정하겠습니다."

"마스크 쓰고 와서 일하면 되지 않나?"

언제든지 아프면 병가를 내고 대체 교사가 오는 아이의 캐나다 학교 시스템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사람보다 효율성을 따지는 문화에 지쳐간다.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 사람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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