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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Apr 11. 2023

아마도 늑대인간을 키우나 봐요.

ADHD, 달이 뜨면 나타나거든요.

오후 6시, 세모의 바깥 놀이가 끝난 후.

하늘은 붉은빛을 띨 때도 있고, 점점 어둑어둑 해질 무렵이다.


삐삐삐삐.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
이것 봐!
(손에 든 모든 것들을 휘휘 돌리는 세모.)
그리고 이것 봐! 아, 이거 보라고!!
(발에 닿는 모든 것들이 축구공이 된 마냥 차서 날려버리는 세모.)
세모야, 밥 먹자. 빨리 손 씻고 와.
(세모는 외출복을 벗어던지고 동생과 잡기 놀이를 시작한다.)
세모야, 밥 먹자. 빨리 손 씻고 와.

나는 이 말을 10번을 반복한다.

세모야!!! 하나! 둘! 셋! 넷!.... 열!
(그제야 화장실로 달려가는 세모. 손을 씻고 나온다. 방에서 만들기를 시작한다.)
세모야! 식탁으로 오라고!
(세모는 식탁에 앉는다.)
세모야, 숟가락 들어.
세모야, 숟가락 들어.
세모야, 숟가락 들어.
먹어요.
먹어요.
먹어요.
(30분, 40분이 지나서야 시작된 그의 식사.)



세모가 복용하고 있는 약은 '콘서타'이다.

콘서타는 ADHD 증상을 12시간 정도 완화시켜 준다. 집중력을 높여주고, 아이가 스스로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약이다.


그 약효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세모의 뇌에서는 ADHD 파티가 일어나나 보다.


눌러왔던 신나는 과잉행동들이 표출되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 소위 영어 표현에서 말하는 'Mood Swing', 감정이 그네를 타듯 이랬다 저랬다, 우울했다 과하게 신이 났다 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메디키넷'에서 '콘서타'로 약물을 변경하고 나서는 아이의 이런 '반동' 증상이 좀 옅어졌지만 우리에겐 항상 6시에서 7시는 힘든 시간이다.


어린 동생은 오빠의 과잉 행동에 다치지 않기 위해 자기 살 길을 찾느라 정신없고, 엄마인 나는 감정을 억제하고 아이에게 같은 말을 10번, 20번 해야 한다.


세모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부를 때,

초 단위로 움직이는 그의 움직임을 볼 때,

내가 요구하는 모든 말들이 허공을 떠돌아

그의 귀에 닿지 않는 순간까지...


이 시간을 나는 '늑대인간'을 만나는 시간으로 정했다.


자식한테 '늑대인간'이라니?

늑대인간은 그래도 잠시만 늑대인간이니까.

약물 복용의 '반동'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세모는 세모의 모습이니까.


괜찮다.


'늑대인간'을 키우는 이 잠깐의 시간이 견딜만하다.

아이의 ADHD를 잘 알고 있기에,

아이의 뇌가 '콘서타' 약으로 열심히 12시간 일해왔기 때문에,

이 시간은 내가 견디는, 견뎌야만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마저도 세모의 모습인 것이다.

나 역시 '늑대엄마'가 될 때가 있으니까.


세모는 내가 '늑대엄마'일 때도 사랑해 주니까.




아마도 전 늑대인간을 키우나 봐요.
달이 뜨면 나타나거든요.
ADHD 그 자체인 아이의 모습이 말이죠.
그 시간은 어김없이 매일 찾아와요.
우리 집은 늑대가 뛰노는 숲이 되고
우리는 그 어린 늑대가 그 순간 자유롭길,
그 순간이 덜 괴롭기를 바라며
매일, 기꺼이 견뎌냅니다.





*사진 출처- iStock by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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