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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y 12. 2023

ADHD 약이 마법의 약은 아니라서요

부작용과 약효 사이 그 어딘가

  세모의 1학년 입학과 함께 진단받은 ADHD.

그렇게 우린 메디키넷이라는 약으로 시작했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며 울기도 했고, 두통이 심한데 각성된 뇌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못한 때도 있었다. 식욕은 왜 떨어지는지... 오전 8시에 약을 복용하면 오후 4시까지는 약효 때문에 잘 먹지 못해서 점심을 거의 한 숟가락 먹었다고 할 때도 있었다. 급식 먹는 낙으로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우리 세모는 일단 학교에서 튀지 않는 아이로, 반짝이는 세모의 색을 지워내고 다른 아이들의 색깔과 비슷하게라도 맞추는 것이 급했던 때였다.


메디키넷의 단점은 전의 글에서 언급했듯 반동이 너무 심했다는 것이다. 늑대인간 마냥 4시가 되면 돌변하는 아이와 씨름하는 건 오롯이 우리 가족들의 몫이었다. 우린 항상 되뇌었다. 이 모습이 세모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본인이 원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1년을 하루하루 버텨냈다.


  세모의 학원 시간이 4시 이후로 늦춰지는 학원들이 생겨서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드렸더니 이제 알약을 먹을 수 있으니 콘서타 약으로 바꾸자고 하셨다. (참고로 메디키넷은 알약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좋다. 캡슐을 열어 가루들을 요거트에 뿌려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서타는 알약 그대로 먹어야 하기에 알약을 못 먹는 아이들에겐 제한적이다.) 콘서타는 10시간~12시간의 약효가 길게 있다. 약효의 피크 시간이 두 번 있는 약이다. 그래서 메디키넷보다는 약효가 잔잔, 은은하고 반동도 없다.


메디키넷을 먹었을 때 있었던 폭력성과 짜증은 사라졌고 콘서타의 은은한 약효 덕분에 약효가 풀린 후에도 세모의 기분이 요동치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 1학년 동안 먹었던 메디키넷 때문에 세모가 참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약을 먹지 않는 나도 기분이 안 좋으면 눈물이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세모는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그 기분 나쁜 느낌을 설명하지도 못한 채 작은 체구의 그 어린아이가 감당해냈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 같은 계열인 약이기 때문에 콘서타 부작용은 크게 없었다.


그러나 약효가 메디키넷만큼 세진 않아서 오전에 학교에서 좀 더 장난기 많은 아이로 돌아갔으며, 목소리도 크고 시끌시끌한 아이가 되었다. 3월 상담에서는 선생님의 평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콘서타 약효는 과잉행동을 세게 잡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세모는 폭력성이 없고 충동적이어도 행동보다는 언어적 충동성이 남아있는 ADHD 아이라서 다행히 선생님께서 지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셔서 더 증량은 하지 않고 있다.


6주마다 만나는 정신과 선생님과의 진료가 다가올 때마다 난 깊은 고뇌에 빠진다.


약을 증량해야 할까?

증량했다가 부작용이 심해지면 어쩌지?

증량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선생님이 또 전화하실 텐데...


이 결정을 고작 9살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니 너무 버겁다. 나도 내 인생을 어쩌질 못 할 때가 있는데 내 모든 선택이 아이에게 해가 될까 염려해야 하는 그 순간순간이 너무 무겁다.


그럼에도... 시간이 해결해 준 걸까?

이런 힘든 마음이 들 때면 이젠 가볍게 털어놓는 요령도 생겼다.

현대 의학을 믿자.
해결책이 있음에 감사하자.
증량하지 않아서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도와주면 된다.
세모가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에 가르쳐주면 된다.
'오늘 세모가 행복했는가? 오늘 세모가 학교에 즐겁게 갔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가?'에 집중하자.
새로운 약에 적응해야 한다면,
부작용에 힘들어한다면,
항상 다른 대안이 있다.
전문의를 믿자.
원래 약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고,
부작용이 있다면 천천히 적응시키면 될 일이다.


ADHD 약은 마법의 약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모는 기계가 아니다.
모든 약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 약을 먹으면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고
숙제도 척척 해낼 거야.'라든지,
'선생님한테 전화 왔네...
아무래도 증량해야겠어.' 같은 생각으로,
사회성도 학습도 다 해결될 거라는 믿음으로 약물 복용을 시작해선 안 된다.

약물의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약효도 분명히 있다.
이 부작용과 약효 그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아이가 무슨 약을 얼마큼 복용해야
"가장 편안한 하루를 보내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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