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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r 21. 2023

“어머님, ADHD 검사를 받아보세요.”

교사로서 차마 하지 못한 그 말

  교사로서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 이 친구는 ADHD 같은데... 약물 치료를 좀 받으면 본인도 편안할 텐데 이젠 너무 늦었으려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ADHD 진단율이 10%나 되니 한 반에 2.5명의 아이들은 ADHD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에 이런 안타까운 학생들을 매년 볼 수밖에 없다.


  ADHD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해 오고 직접 키워오며 난 반 전문가라도 된 것 마냥 학생들을 판단하곤 하는데, 이건 꼭 내가 (ADHD 전문의도 아이지만) ADHD 아이를 키워서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이 특성을 가진 아이들을 알아볼 수밖에 없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져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교실 속에서 교사로서 평균적인 학습 태도와 수업 태도를 매 시간 체감해 온 경력이 10년이다. 초등학생의 ADHD 아이들은 목소리가 크고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께서 말을 할 때 끼어들거나 줄을 서 있을 때 점프를 한다던지 수업 중에 노래를 부른다던지 튀는 행동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런 친구들이 별다른 진단 없이 약물의 개입 없이 성장해 중학교에 오면 양상이 달라진다. 부모님들께서는 아마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잉행동은 사그라들고 주의 집중력 부족의 문제는 점점 커지면서 그냥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 또는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거나, 그 무섭다는 사춘기의 그림자에 가려진 ADHD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학교에서 ADHD가 의심되는 친구들을 보면 일단 조용히 개인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을 굉장히 힘겨워한다. 독서를 해야 하는 시간에 멍 때리고 30분이고 앉아있거나 영어 단어 5개를 외우는 데에도 머리를 부여잡고 씨름을 하고 있다. 머리가 안 좋아서? 아니다.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아마 우리 아이들의 사고 흐름은 이럴 지도.

교과서 한쪽을 이해하고 싶어도 한 문장 읽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그전 문장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도무지 안 된다. 그러다 재밌는 게임이 떠오른다. 당장 해야겠다. 아 너무 재밌다! 멈추고 공부해야 하는데... 아 너무 재밌어!! 그러다 시계를 본다. 3시간이 흘러 있다. 학원을 못 갔다. 엄마한테 잔소리 폭격을 맞았다.

그럼 엄마는 우리 아이가 사춘기가 와서 그렇다는 어찌 보면 간단한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아이를 이해해보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ADHD 진단을 받고 약물 복용을 시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또 한 번 놓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반 금쪽이들은 대부분 부모님들과의 관계가 아름답지 않다. 관계가 안 좋아서 금쪽이가 된 아이들도 있지만, 아이들이 잘하고 싶어도 자기 자신을 어쩌지를 못 해서 부모의 낮은 기대마저도 못 미치는 자기 자신들을 자책하며 질풍노도 시기 속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홀로 걸어간다.


  교사로서 우리 금쪽이들 더 이상 외롭지 말라고, 너의 의지박약 문제가 아니라 뇌신경 회로가 조금은 다르게 태어나서 그런 거라고, 약물 복용을 시작하면 네가 원하는 꽃길을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ADHD 진단 검사를 권할 때 종종 부모님들께서 자신의 아이를 정신병을 가진 아이로 본다고 생각하시거나 우리 아이는 그런 폭력적이고 문제 있는 아이까지는 아니라고 기분이 확 상해버리셔서 교사에 대한 신뢰를 잃는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교사들은 도움을 주고 싶어도 입을 다문다. 아마 학부모님들께서는 담임교사가 어려운 말로, 또는 아이의 칭찬으로 빙빙 돌려 ADHD 검사를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실 때가 많을 것이다.


  부모님들께서 만약 금쪽같은 금쪽이를 키우고 계신다면, 담임 선생님들과의 상담에서 ‘우리 아이가 ADHD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겠구나.’라고 담임 선생님의 빙빙 돌린 말속의 핵심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빙빙 돌린 말들을 쫙쫙 펴서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 이전에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모든 건 교사가 힘들어서 검사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아이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너무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자기 자신을 모른 채, 교실에서 내가 홀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 ADHD라는 것을 모른 채,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뇌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 너도 잘할 수 있다고, 너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고, 만약 ADHD를 갖고 태어난 아이라면 널 도와줄 수 있는 약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부모님께 아이를 미워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상담을 할 때 아이의 교실 속 상황들, Fact만을 나열한다. 이런 말들을 들었다면 ADHD 검사를 한번 받아보면 좋겠다. 이 말들의 앞, 뒤에 붙은 칭찬은 제외하겠다.

어머님, 네모가 굉장히 똑똑하지만 목소리도 크고 아직 어리다 보니 다른 친구들의 기분을 잘 읽지 못해서 네모의 이름이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불리긴 해요.

어머님, 네모가 수업 시간에 가끔 불쑥 질문을 많이 해요. 호기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어머님, 네모는 뭔가 앉아서 진득하게 하는 것보다는 활동적으로 친구들이랑 노는 걸 더 선호해요.

규칙을 어겨서 불러서 얘기해 주면 잘 알아들어요. 그래도 다시 또 어겨서 자주 얘기해줘야 하지만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으니 기다려보겠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 이해를 하는 데 힘들어합니다. 글이 길어지면 이해를 더 어려워해요.

아이가 힘드시면 풀배터리 검사를 한번 받아보세요. 아이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할 때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다리를 떨거나 하는데 본인도 조절을 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책상이나 사물함 정돈이 잘 안 되고, 해야 할 일을 자주 잊는 편이에요.


  물론 편견을 가진 교사도 있지만, ADHD라는 단어에 편견을 가진 부모님들을 뵐 때면 안타깝다. 부모님들이야말로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보호자이며 아이의 평생을 함께할 분들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딱 1년만 그냥 아이의 힘든 씨름을 옆에서 응원하며 함께 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여 사회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해내야 할 때 필요한 자질들을 배우는 초, 중, 고 시절, 자존감을 쌓아갈 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이유가 부모님의 편견 때문이라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어머님, ADHD 검사를 받아보세요.”
우리 아이들이 교실이 힘들대요.
우리 아이들이 잘하고 싶대요.
우리 아이들도
자신을 알고 도움을 받으면

잘할 수 있대요.


*사진 출처- 허그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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