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리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데뷔작 및 드라마 <십각관의 살인>
[원작: 십각관의 살인(The Decagon House Murders, 十角館の殺人-1987), 저자: 아야츠지 유키토]
[드라마: 십각관의 살인(十角館の殺人), 훌루(Hulu)에서 2024년 방영]
사람은 지나치게 대칭적인 것에서 종종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Uncanny Valley Effect, 즉 불쾌한 골짜기 효과라는 용어로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 심리 현상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보통 완벽하지 않은 대칭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마저 말이다. 적당히 불완전한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뇌. 이러한 심리를 가진 우리가, 만약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재어진 열 개의 각도로 나뉘어 있는, 정십각형의 공간에 며칠 동안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채 갇혀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더불어 만약 그곳에서 무참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면?
십각관(十角館), 열 개의 완벽한 대칭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의 존재는 소설 전체에 을씨년스러운 영향력을 드리운다. 이름답게 이 건물의 모든 것은 정십각형 혹은 열 개로 이루어져 있다. 집의 구조, 방의 개수, 테이블의 모양, 햇빛이 들어오는 천창, 심지어 컵과 식기들 까지. 이 건물의 설계자는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유명한 건축가인데, 괴짜로 이름난 그의 편집증적인 면모가 발휘된 듯 십각관 전체는 내내 오싹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중 등장인물들도 몇 번이나 다른 방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모두 똑같이 생긴 열 개의 방이 둘러싸고 있는 그곳. 마치 감옥의 건축양식 중 하나인 판옵티콘(Panopticon)을 연상케 한다.
소설 <십각관의 살인>에서는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대학생들 일곱 명이 괴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이 십각관에 머무르게 된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무인도, 츠노시마 섬. 그리고 그들은 한 명씩 차례차례 의문의 범인에게 살해당한다. 연구회 학생들은 서로를 범인으로 의심하면서도, 섬 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외부인이 범인일 가능성도 고려해 가며 함께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
동시에 육지에서는 예전 미스터리 연구회 소속 회원이었던 '가와미나미'라는 학생이 이미 죽은 나카무라 세이지의 이름으로 보내온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받는다. 강한 호기심과 정의감을 가진 성격인 그는 이 편지에 관련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다 '시마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시마다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주요 참고인의 지인이며 경찰에도 연줄이 있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던 두 사람은 이 사건을 계기로 친해지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건 내부의 시점으로는 츠노시마 섬의 십각관 내, 일곱 명의 대학생들이 연루된 연쇄 살인 사건과 그 범인에 대한 추리. 그리고 사건 외부의 시점으로는 가와미나미와 시마다가 중심이 되어, 의문의 편지 및 미스터리한 인물 나카무라 세이지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사건 내부와 외부의 시점이 교차되며 서술되는 스토리가 짜임새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도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십각관의 살인>은 원작 소설의 발매 이후 37년 만인 2024년 영상화가 되었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된 동명의 드라마는 큰 각색 없이,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 흐름을 따라간다. 특히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상상만 했던,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숨 막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십각관 세트를 완벽하게 재연해 냈다.
또한 개개인의 자세한 심리묘사는 크게 다루지 않는 원작과는 다르게, 드라마는 이러한 점을 보완하려 한 노력이 여실히 보인다. 원작 소설에 굉장히 충실한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중간중간 인물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장면을 삽입하여 조금 더 그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캐스팅도 안정적이라 만약 소설을 읽기 부담스럽다면, 혹은 소설을 읽고 나서 드라마에 관심이 생겼다면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잠시 공백을 두는 바이다.
<십각관의 살인>은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무인도라는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을 배경으로 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형태의 추리 소설이다. 소설 내에서 여러 종류의 트릭이 사용되었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트릭은 바로 모리스가 밴이라는 것. 즉, 그는 십각관에 존재했던 사람이지만 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십각관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인인 그는 섬에서는 피해자 후보 중 한 명인 밴, 그리고 육지에서는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탐정 중 한 명인 모리스를 동시에 맡아 허를 찌르는 놀라운 반전의 결말을 제공한다.
이 결말에 대해 다소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들도 있다. 특히 섬과 육지를 낮밤으로 오가는 그 트릭은, 개연성에 있어서는 살짝 의문의 여지를 제공하긴 한다.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 중반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개인의 알리바이를 아주 낱낱이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러한 트릭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총 여섯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의 동기가 다소 약하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몇몇 이야깃거리들을 감안하더라도, 수많은 추리소설의 고전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소설은 미스터리를 즐기는 독자로 하여금 그 재미와 지적 유희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생겼다면, 지금 당장 <십각관의 살인>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열 개의 대칭이 주는 그 숨 막히는 공포를,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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