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시티즌십 세리머니에 참석하다
캐나다 이민의 마지막 절차는 바로 시티즌십 세리머니(Citizenship Ceremony), 긴 여정의 종착역이다. 그는 미국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H-1B를 받았다. 남들이 으레 하듯이 Green Card를 지원해도 됐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캐나다 이민을 택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통 학생 비자로 시작해 그 이후로 취업 비자, 이후 영주권 신청을 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남편이 착실히 일해온 보람이 있었던지, 그는 Express Entry라는 캐나다 영주권의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었고 2019년 초부터 캐나다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영주권 취득 후 각종 요건을 갖추고 나면 비로소 캐나다 시민권을 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캐나다 시간으로 2월 3일, 바로 어제 아침. 마침내 시민권 취득의 마지막 절차인 시티즌십 세리머니에 참여하러 우리는 아침 일찍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다운타운 까지는 늘 삼십 분 남짓 걸리곤 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예상보다 붐비는 캘거리 아침 러시아워 덕분에 결국 우리는 오 분 늦게 세리머니 회장에 도착했다.
아까 전부터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늦으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을 늦추지 못하던 남편을 달랬다. 설마 시민권 취득 당사자를 겨우 오 분 늦었다고 안 들여보내주겠어,라고 말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소로 헐레벌떡 뛰었다. Suite 210이라는 숫자가 바로 내 눈앞에 보였지만 마음이 급한 그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210, on your right!"라고 그에게 방향을 일러주었다.
코너를 뛰어 돌아가보니 우리 앞에서는 이미 열댓 명의 대기자가 긴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세리머니는 우리에게 공지한 시간에 딱 맞춰 시작하지 않았다. 아, 사실 사전에 이메일로 공지받았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다. 거의 한 시간 정도일까? 그 이유는 바로 시민권 취득 대상자들이 준비해야 할 서류를 모두 지참했는지 빠짐없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티즌십 세리머니에 나는 관객(Guest)의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서류 심사를 받아야 하는 남편을 두고 관계자가 안내해 준 대로 가보니 Ceremony Hall이라는 커다란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캐나다를 상징하는 붉은빛으로 장식된 널찍한 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게스트들은 이곳에서 시민권 취득 대상자들의 입장을 기다린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니 8시 15분에 시작 공지되었던 행사는 9시 30분 정도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세리머니의 진행을 맡은 변호사가 간단히 주의사항 및 식순을 안내하고, 곧이어 풍채가 좋아 보이는 시민권 담당 판사가 들어왔다. 그는 가운데에 마련된 판사석에 앉아 사람들을 향해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시민권이라는 커다란 유종의 미를 거둔 사람들에게 그는 일종의 짧은 덕담을 전했다. 그리고 곧이어 Citizenship Ceremony Oath, 즉 시민권 선언의 낭독을 시작하였다. 시민권 취득 대상자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들고 낭독을 시작한다. 옆에서 슬쩍 지켜보니 남편 역시 꽤나 진지한 얼굴로 선언문을 읽고 있었다.
I swear (or affirm) / That I will be faithful / And bear true allegiance / To His Majesty / King Charles the Third / King of Canada / His Heirs and Successors And that I will faithfully observe / The laws of Canada / Including the Constitution / Which recognizes and affirms / The Aboriginal and treaty rights of / First Nations, Inuit and Métis peoples / And fulfil my duties as a Canadian citizen.
간단히 요약하자면 시민권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헌법을 준수하며 캐나다 원주민들(First Nations, Inuit and Métis peoples)의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으레 시티즌십 세리머니에서는 대개 PM, 즉 Prime Minister의 환영 메시지를 녹화해서 보여주곤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꽤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앨버타 주의 캘거리라서 일까? 이 세리머니에서 새로운 시민권자들을 환영하는 메시지는 이곳에 훨씬 먼저 정착해 삶의 터전을 잡은 캐나다 원주민들로부터였다.
캐나다 시민권 테스트는 지리, 역사, 경제를 비롯한 폭넓은 분야에 대한 공부를 요구하는데, 원주민들의 권리와 역사에 대한 교육은 이 테스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원주민들에 대한 올바른 역사 교육 및 반성의 자세를 견지하는 캐나다의 정책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곧이어 세리머니를 주재하는 변호사는 시민권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대상자들은 모두 우측 상단에서 남편이 들고 있는 시민권 증서, 즉 Citizenship Certificate와 작은 기념품인 Canadian Maple Leaf의 뱃지를 수령했다. 세리머니에 참가했던 어느 일가족의 귀여운 두 딸이 즉석에서 판사의 요청으로 뱃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도왔다. 작은 손으로 뱃지를 하나하나 나누어 주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칫 지루하기만 할지도 모르는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한 판사의 배려가 엿보였다.
한참 후 남편의 이름이 불렸고, 그는 잰걸음으로 앞으로 향해 자신의 시민권 증서를 받았다. 평소 늘 밝은 인상의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오늘따라 한결 더 신이 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른 가족들에게 자랑할 수 있도록 사진과 동영상을 실컷 찍어주었다. 오늘은 말 그대로 그의 날이니 말이다.
시민권 증서 후에는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다 같이 캐나다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리머니 주재 판사가 "자, 이제 다 같이 캐나다 국가를 부릅시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국가입니다." 라며 사람들을 독려하는데 나 조차도 이유 모르게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앞에는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 갈 때마다 영사관 인터뷰를 할 필요도 없고, 무려 약 186개국의 나라를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며 그는 하루 종일 신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그러한 불편함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 생소하기도 하면서도, 그동안 그가 겪었던 불합리함을 잘 알기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종종 예전 국적에 발목이 잡히곤 했다. 미국 출장을 가려고 했지만 비자가 반려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비행기 환승이 가능한 국가도 제한되어 있었기에 특정 항공편만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발리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시댁 식구들이 입국 심사에 발이 묶여 삼십 분을 기다렸던 적도 있다. 그들의 눈앞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입국심사대에 갖다 댐으로써, 3초 만에 입국장을 나왔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만약 나였다면 그런 국적의 불합리함에 대해 단순히 불평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히 원망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일하고, 또 많은 것을 희생해 온 그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다.
축하합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캐나다 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