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벌신사
이제 옷을 사지 않는다.
가장 편하고 심플한 옷으로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누구도 나의 옷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뻔하다.
아침에 일말의 갈등도 없이 어제 입은 옷을 입고 출근하면 그만이다.
스티브잡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티셔츠를 100벌 사놓고 입었다고 한다.
이젠 그를 이해할 수 있고 내가 그의 스타일을 닮아가고 있다.
그는 일에 집중하느라 그랬고 나는 단지 편하다는 것이 전부다.
물건이 넘쳐나는 요즈음 미니멀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옷과 신발을 두 마대 교회에 나눔 했지만 아직도 더 버려야 한다.
옷이 가장 처리가 쉽고 그릇이 가장 어렵다.
멀쩡한 사기그릇들을 쓰레기봉투에 넣는 건 용서가 안된다.
그릇의 90퍼센트는 쓰지 않는다.
나에겐 이것이 가장 버리기 힘들다.
누가 제발 가져가 버리면 좋겠다.
잡다한 물건들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이 더디다.
편리지상주의인 나는 자잘한 소품과 물건들이 많은 편이다.
이제는 쓰레기로 보인다.
하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당근으로 고물 장사를 하던지 나눔으로 처리하는 게 가장 현명한 것도 안다.
지금은 그러한 에너지가 없으니 쉴 때 하기로 미루어 놓는다.
옷을 사지 않으니 저축이 되고 쇼핑에서 해방된다.
무얼 사야 할지 어떤 것과 입어야 할지 선택과 갈등도 사라진다.
그러자면 한 번 살 때 품질이 좋은 걸 제대로 사야 한다.
내일도 감색 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걸어 두었던 감색 카디건과 엉덩이를 가리는 감색 조끼를 입는다.
올겨울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