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설레다
후원 모니터링을 하다가 낯익은 이름 석자를 기억에서 소환해 본다.
사십 년 전의 나의 첫사랑이다.
아니 오십 년 전이로구먼.
나이도 비슷하고 그가 맞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도시로 올 리도 수급자가 될 리도 만무한데 말이다.
근거리에 있고 맞다면 소주라도 한 잔 기울여볼까 잠시 설렘이 일렁거렸다.
어젯밤 꿈에 나의 중신아비 친구가 난생처음 보이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싶었다.
그건 아니야.
다 늙어 만나면 서로 대실망만 할 것이 뻔하고도 남을 일이지.
그나마 예쁜 추억 하나는 남겨 두어야지.
교복을 입고 성지곡 수원지를 돌다가 그의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었지.
그는 아니었는데 내가 그를 전적으로 짝사랑한 거였어.
첫 직장에 입사하고 한 번 만났었고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사십 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모교에 전화를 하여 연락처를 알았다.
요즘이라면 알려주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나의 설렘을 다 알기라도 하듯이 빚쟁이가 아닌 걸 감지하고는 너무나 쉽게 번호를 나에게 주었다.
역시 명문고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우러러보았다.
유선을 타고 나의 음성은 들떠 있었고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상대방은 충분히 알고는 기뻐하는 마음으로 둘의 연결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었다.
너무도 쉽게 통화가 되었고 나에게로 한 번 오기도 했었다.
아직도 그의 학교 전화의 대기음을 들으면 묘하게 아련한 추억에 젖게 된다
만나 보면 첫사랑은 퇴색된다.
절대 고이 간직하기를 바란다.
경험자로서 하는 말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들추지 말아야 하는 게 첫사랑의 정석이다.
그 뒤 그는 이혼했다고도 했었다.
난 그가 그 당시 명문 K고교에 다닌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게 충분했었다.
그가 이성인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야말로 사춘기 소녀였었다.
수급자라고 해도 나의 첫사랑은 초라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마음을 접는다.
그의 늙음을 보기 싫어졌고 나의 늙음은 더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그와 술 한잔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절대로 그럴 순 없다.
찬란했던 그 시절을 그리면서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여기서 소주는 어찌하여 설탕물이 되고 밥은 꿀맛인지 모를 일이다.
나의 그리움이 사라지고 그를 완전히 잊는다는 반증 아닐까.
하긴 연락할 실마리도 전혀 없다.
수급자의 주소 이력을 찾아보니 동명이인으로 그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그가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