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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어두운 터널

by 사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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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자영업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습니다. '성수기'라 하면 이전 글에서 얘기했던 '대목'과 같은 시기를 의미하는 거고, '비수기'라 하면 평소보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적은 시기를 의미합니다. 업종별로도 그 시기는 상이한데, 꽃집의 비수기는 가정의 달이 지나가면 찾아오는 여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활용할 수 있는 꽃의 종류가 적어지고 꽃보다는 잎 소재 위주의 재료들이 많아지면서 대중들이 흔히 선호하는 종류의 꽃 상품을 만들기가 어려워집니다. 무엇보다도, 꽃이 빨리 시들시들해지니,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이 자연스레 줄어드는 거죠. 결혼식 또한 이 시기에는 많이 없어, 여러모로 꽃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매우 적습니다. 아내가 첫대목을 지나온 후, 무더운 '비수기'가 예외 없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아마도 그때가 길고 어두운 터널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비수기가 시작되니, 아내의 꽃집으로 인입되는 문의가 놀라우리 만치 줄어들었습니다. 가끔씩 꽃이 급하게 필요하신 분들이 당일에 요청하던 건들은 물론이고, 꽃 상품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혼자 덩그러니 가게에 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개인 작업물을 SNS에 올린다던가, 인스타그램 광고도 하는 등 무언가 열심히 했지만 딱히 반응이 없었고, 그런 활동들을 지속하는 것도 비용이 계속 들어가는 일이라 그녀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집에서 그날 하루의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 아내는 가게 안에 아무 일도 없이 혼자 있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었습니다. 그녀가 일을 한 경험은 일반 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이 다였으므로, 그녀에게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근무 시간 내 무언가 바쁘게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고객 문의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는 가게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여간해서는 익숙해지지 않았던 것이죠. 무엇보다도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러 생각들이 드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더 안 좋은 상황들을 가정하게 되고 그 끝에는 자기 비하 혹은 염세주의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의 마음이 참 많이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가게를 더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게 어떻냐는 둥의 서투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남자들은 늘 그렇게 고민을 말하면 해결책만 얘기하려 한다는 핀잔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가 방법을 몰라서 힘들었던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너무도 잘 압니다만 그때는 그 상황이 저 또한 많이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비수기가 끝나고 상황이 나아지나 싶었던 것도 잠시, 어두운 터널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2-3년만 버티면 안정기가 올 거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마음은, 아직 멀게만 보이는 미래에 초점을 두어 힘들어하기보다는 딱 '1년'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그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여러 몸부림도 계속되었습니다.

당시에 그녀는, 본인만의 색깔을 찾아 이미 그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한 동종업계 분들과 자신을 비교하고는 했는데, 그런 까닭에 자신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그만두자라는 심정으로, 평소에 존경해 왔던 플로리스트 분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고자 노력했습니다. 수업을 듣는 동안, 그녀는 꽃을 하는 게 즐거운 일임을 오랜만에 느꼈다고 했는데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자기 인생에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요, 오픈한 지 1년이 지나가면서 희망의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꽃을 배우고 싶어 하는 고객분들이 하나 둘 많아지기 시작한 건데요, 아직 인지도가 없는 꽃집에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수업을 들으러 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녀의 자존감을 많이 높여주었습니다. 플라워 클래스의 경우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였기 때문에, 가게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죠. 가장 고무적이었던 건, 재방문 고객 비중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픈 후 2년 차였던 24년 한 해, 전체 매출 중 재방문 고객 비중이 50%가 넘었는데, 아내가 만든 상품에 만족한 고객분들이 정말 많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버티기로 했던 1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가장 확실히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아내가 걸어가는 길이 평탄한 아스팔트 길은 아닙니다. 여전히 어두운 터널이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이제는 어두운 길 속에서 더듬더듬 손을 짚어가며 나아갈 수 있고, 헤매는 만큼 그녀만의 지도가 넓어지고 있음을 그녀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 해피엔딩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언제고 찾아올 몇 번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가 스스로 빛을 찾아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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