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꽃집을 시작한 지도 3년이 지나가니 직업으로써 일상에 익숙해져 새로운 일이 주는 설렘도 지나가고, 조금 더 현실적으로 '꽃집'을 바라보게 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꽃집 하면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들이 바로 나왔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하루를 고심하더니 몇 가지 좋은 점을 말해주더군요.
아래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주관적인 생각들로, 꽃집을 운영하시는 다른 사장님들의 생각과는 무관하다는 점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읽어보시면 격한 공감은 아니더라도 한 번은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 계절마다 찾아오는 작은 행복
잘 아시는 것처럼 계절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꽃들이 모두 다른데요, 때문에 계절을 꽃으로 느끼면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 꽃이 이 계절에 피어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그래서 그 꽃의 가치가 어떠한지 그 누구보다 오롯이 실감합니다. 그것을 아름다운 작업물로 구현했을 때 느끼는 개인적인 만족감은 다른 직업에서의 성취감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 같기도 합니다. 다가올 계절의 꽃들을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과 기대감도 큰 기쁨이죠.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상태의 계절 꽃들을 꽃시장에서 접하면, 종종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업무 하는 동안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공간을 가득 채운 꽃 향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일이 몇 개나 있을까요. 보고서에 씨름하고 계약서를 검토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 무해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일로써 다룬다는 점이, 꽃집 하면 좋은 점들 중 하나입니다.
2. 시간에 대한 주도권
꽃집만이 아니라 여느 자영업자라면 공통으로 느끼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의 건강, 개인적인 상황 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좋은 점들 중 하나입니다. 직장인의 경우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거나 해도 기한을 앞둔 중요한 업무들이 있는 경우, 쉽게 휴가를 쓸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이에 비해 꽃집은 엄연한 나의 것이고, 본인이 전부 책임을 지는 일이니 스스로의 판단 하에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영업시간이 확보되어야 가게에 대한 고객들의 인식이 좋아지고 일정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으니, 아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꽃집 사장님들은 영업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편입니다. 일하기 싫다고 가게 문을 닫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지시나 요청이 아니라 내 일을 시작하고 멈출 권한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은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예약제로 꽃집을 운영하고 있어, 가끔 예약이 없거나 꽃을 모두 소진한 경우 일찍 영업을 종료하는 소소한 행복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3.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
세상에는 경제적 대가를 제공하는 수만 가지의 직업이 존재합니다. 그 모든 일이 이 사회와 환경을 유지하고 그 사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영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써 기능하고 있죠. 그러나 그러한 직업의 대부분은 그러한 대의를 실감하고 보람을 느끼기 힘든 환경 속에 놓여 있습니다. 분업화된 사회에서 파편화된 직업적 기능만을 수행하다 보니, 종사하고 있는 일이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기여하는 가치를 느끼기 힘든 거죠. 영업 마케팅 팀에서 일하는 김 대리가 마케팅 방안을 고민하며,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의 사회적 맥락까지 생각할 여유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이에 비해, 꽃집의 업무는 본인의 일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직관적으로 느끼기 쉬운 편입니다. 꽃을 전해 받을 누군가 뿐만 아니라, 꽃을 주문한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죠.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일은 아니지만,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간혹 꽃으로 순간의 행복함을 경험한 고객 분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면, 꽃다발을 만든 사람도 행복해집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경제적 성공의 확률을 따지자면, 그리 유리한 직업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업을 확대하거나 자동화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표준화된 레시피가 존재할 수 없으니 많은 일의 대부분이 사장님 손을 거쳐합니다. 열심히 노동한 만큼만 대가가 돌아오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세상에 무해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어떤 일은 누군가의 욕심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바로 눈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도 있죠. 농가에서 한 해 동안 정성스레 돌본 꽃들을 가져와 본인의 감각과 경험을 더해 아름다운 작업물을 만들고, 그것을 누군가의 특별한 날에 제공하는 일은 적어도 세상에 흉터를 남기는 일은 아닐 겁니다. AI 시대에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직업들조차도 기계로 대체되는 날이 오겠지만, 꽃을 만드는 이 일만큼은 오래도록 인간이 만드는 중요한 일로 남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저의 바람이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