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글도 쉽지가 않네요 요즘은
#2025년 6월 11일 오후 9시 16분
최근 합류한 사내 TF 팀은 사무실 출근을 강제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언제든 알아서 일하고 기삿거리만 잘 가져오면 된다는 식이다. 기사라는 성과만 내면 만사 오케이라는 것. 그러니 휴일에도 일하고 싶으면(?) 일하라고 팀장은 말한다. 다른 평일에 쉴 수 있도록 대체 휴일을 부여해 줄 거니까.
우선 매일매일 사무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것 자체는 너무 좋다. 지옥버스, 지옥철에 (구급차에) 실려가는 듯 최소 40~50분 이상 출퇴근하지 않아도 돼서다. 다만 재택근무를 허하는 대신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소리로 들려 부담도 크다. 사무실 출퇴근의 부담을 덜은 대가로 기사를 제때 써내야 한다는 부담을 잔뜩 받아온 느낌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사무실 출근 썰을 푼 이유는...... 그래서 오늘 내가 재택근무를 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원래 쓰기로 했던 기사 가원고 2개를 오전 중에 털었다. 나는 지금 새 정부 인사 검증 TF에서 일하고 있는데, 우리 팀은 인선이 확정된 인물들뿐 아니라 '유력' 후보군도 한 발 앞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던 중 팀장 지시로 취재한 내용 중에 '얘기되는' 것들이 일부 잡혀서('얘기되는' 아이템 시리즈 보고 오세요), 미리 기사를 써둔 셈이다. 그 유력 후보군이 최종적으로 임명되면 그 즉시 보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설마 임명 안 되진 않겠지 허허 기사 써 놨으니까 임명 꼭 되렴)
그런데 오후에는 공쳤다. 아직 얘기되는 걸 못 찾은 새 정부 인사나 유력 후보군의 면면을 알아보다 집중력이 훅 떨어지고 또 딴짓하고...... 오후 4시 반쯤 깨달았다. 아, 오늘 오후는 완벽하게 공쳤다. 내일 정말 열심히 일하자. 왜냐면 내일 퇴근 전까지 아이템 발제안 내놔야 하니까 허허. 그렇게 내일의 나에게 막중한 임무를 떠넘기고 나는 카페 야외 좌석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만끽했다. 그리고 책도 조금 읽었다.
곽아람 기자님의 신간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책이었다. 직업 에세이 수업이 지난 월요일 끝이 났는데 선생님께서 특별히 내게만 추천해 주신 책이다. 기자로서 직업 에세이를 조금 더 가볍게 써보고 싶다면 이 책을 참고하라고 하셨기에, 수업 끝나고 바로 주문했었더랬지. 곽아람 기자님 인스타그램도 팔로우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곽 기자님은 매일 인스타에 일기를 쓰고 계셨다. 구내식당에서 받아온 그날의 식판 사진과 함께. 기자님의 '식판 일기'를 눈여겨본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해 이번 신간이 나오게 됐다고 한다.
아직 책 초반부에 머물러 있지만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결국 되고 싶은 사람, 지금 현재 부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곽아람 기자님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책에 담긴 기자님의 이야기는 나 박사샤 기자의 이야기와 꽤 겹쳤고 여러모로 달랐다. 나도 구내식당과 같은 가벼운, 일상의 소재를 찾아 내 업 이야기든 마음속 이야기든 쉽게 쉽게 써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OOTD 사진과 함께 일기를 써서 올려볼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난 패션에 관심 많으니까.
이제 뭘 하지? 앞으로 뭘 하지?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뭘까? 나 지금 이거 재밌나? 그래서 계속 하나?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쏟아내고 있는 요즘이다.
#2025년 6월 12일 오후 6시
후.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나왔다. (오늘은 초집중을 위해 일찍이 회사로 출근했다) 방금 전 오후 6시까지 아이템 발제안을 정리해서 텔레그램 단체 방에 공유해야 했는데 20분 전쯤 던지고 나와버렸다. 에이 몰라...... 어제부터 오늘까지 도대체 몇 명의 이름을 각종 사이트 검색 창에 쳐 보고, 또 검색된 내용들을 살펴보고 한 건지. 뭘 알아냈어도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도 판단이 안 돼 선배한테 다 물어보고. 그러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쯤이었다. 그렇다, 오늘도 오후 4시 반이었다! 오늘 견적 나왔다고 명확히 인지한 시각. 지금까지 나온 극히 미미한 이 결과물이 오늘 낼 수 있는 내 결과물의 전부다. 물론 취재 영역에 한해서지만.
내일 남편과 일본의 시골 한 곳으로 떠난다. 3박 4일 일정이다. 월요일에 돌아온다. 팀원들 모두 바쁜 와중에 아주 많이 눈치가 보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정한 휴가 일정이었으므로, 나는 뻔뻔하게 비행기를 타러 갈 예정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일요일에 브런치 글 올릴 시간이 없다는 것. 여행 중에, 놀고 있는 와중에 각 잡고 글 쓸 자신은 없으니 미리 써두려고 용을 쓰고 있다.
독자님들이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3개월 전 브런치 작가가 된 뒤로 매주 2개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일요일 마감은 무조건 지키기로 작가가 된 순간부터 스스로 정했다. 나머지 날들 중에 아무 때나 글 하나를 더 올리는데 그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순전히 내가 그러고 싶어서 시작한 루틴인데 요즘 약간 버거워지고 있다. 꾸준히 쓴다는 것, 이는 진심 보통 일이 아니다. 매우 비범한 일이다.
비범한 인간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았다. 그 결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차피 40분 뒤에 요가 수업이 있다. 빈야사 기초 수업인데 과연 내게 이 수업이 '기초' 수준일지가 너무 궁금하다. 어영부영 요가 1년 했다고 어떻게, 뭐, 자신감이라도 생긴 건가? 전굴 자세 절대 안 된다고 유튜브 영상 계속 찾아본 게 바로 그제 일인 것 같은데 허허.
오늘도 이렇게 똥글 하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카페 창밖을 바라본다. 창가와 마주한 자리에 앉아 있다. 조금씩 노을이 지고 있다. 창밖 풍경 색깔이 살짝 누렇다. 따뜻한 색감,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나는 평소에도 자기 직전까지 침대 머리맡에 딱 이 색깔 조명을 켜고 있다. 아,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 조명을 직접 켜고 싶은데...... 그 조명을 켠다는 건 잠들 때가 됐다는 거고, 난 사실 조금 자고 싶은 것 같......
잠들지 말고, 빈야사 요가를 재밌게 해 봐야겠다. 땀 줄줄 흘리며 수련한 뒤에 마지막 자세, 사바아사나. 홀가분하게 누워서 오늘 하루 피로를 쫙 풀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글 한 편을 써낼 것이다. 나 자신 어쩌다 갓생 살고 있다. 힘내자. 내일 여행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