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수련을 했던 어느 날
그 무엇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이었다.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근해 사무실 자리에 앉았는데 업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출근길 버스 안에서 오늘 회사 가서 뭐 해야지, 이거 해야 돼, 나직이 혼잣말하며 나름의 마인드 세팅을 한 시간 가까이 했건만 소용없었다.
노트북 전원을 켰지만 오늘자 조간신문 기사를 보는 대신 내 브런치 스토리 창을 열어본다. 다음 주에 올릴 <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 브런치북 게시글을 고민한다. 내 카카오톡 방에 이런저런 내용들을 정리하다 아, 이곳이 회사임을 자각한다.
나머지 오전 일과 시간이 일에 집중이 될 듯 안 될 듯 흘러간다. 얼렁뚱땅 점심시간도 사라진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짐을 싸 회사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나니 출근하자마자 빠져들었던 브런치북 게시글 고민으로 복귀한다. 글에 쓸 재료를 찾는다며 과거 내가 보도한 기사들을 하나씩 찾아본다. 갑자기 오래된 상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아까 원불교 법당 앞에 붙어있던 명상 체험 프로그램 모집 전단지가 떠오른다. 명상 관련 자격증을 알아보고, 후기들도 찾아보고, 잠시 요가를 생각하는데 아!
깜짝 놀랐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니…. 일을 제외한 나머지, 오만 것들에 관심이 무궁무진해진 요즘의 나, 그리고 한창 어수선한 회사 상황이 맞물리니 그야말로 파국이다. 이렇게 산만할 수가 없다. 점점 ‘월급 루팡’이 돼 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괴감이 밀려온다. 속상하다. 에잇, 다 망해버려라 따위 마음으로 오늘의 할 일들을 다 내려놓을까도 했지만 끄트머리 남아 있는 끈기를 ‘영끌’해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오늘은 저녁에 P 선생님의 빈야사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내게 P 선생님이란? 2화 참고.) 눈물을 머금고 미뤄 놓은 업무를 만지작거린다.
그런데 실패했다. 이날의 요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망했기 때문이다. 하나도 집중하지 못했다.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고 힘든 자세를 얼마나 버텼는지 등을 거론하는 것도 사치다. 순간순간에 차분하지 못했다. 매트 위에 있는 나에게만 집중했어야 했는데, 집중력은 몇 초만에 날아가버렸다. 계속 날아갔다. 혼자 얼굴이 굳어갔다. 아무 동작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버렸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도전했지만 하기 싫었다. 겨우 수업이 끝났고 느릿느릿 짐을 챙겼다. 다행히 선생님은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쓸쓸히 요가원을 나왔다.
일도, 요가도, 각종 관심거리들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날. 다만 이 모두 시도했고 결국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좌절에 휩싸여 억지로 한 수련이었지만 집에 가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내면 깊은 곳에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기에. 덕분에 오늘이 그렇게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위안 삼으며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사실, 매일이 수련이다. 한 시간 요가 수련이 24시간 반복되는 느낌이다. (물론 사바아사나, 송장 자세가 24번 있는 것 같진 않다.) 참고 참는다. 부끄럽지만 (여전히 부끄럽다.) 점심시간에 요가하려고 오전 일과를 버틴다. 퇴근해서 P 선생님 하타 요가 수업 들으려고 오후 시간을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 집중해 본다. 조금 더 버틴다. 그렇게 참아낸 하루는, 그러니까 수련을 잘했든 못했든 이렇게 완수한 날에는 어둑해진 퇴근길에 은은한 만족감이 차오른다. 나라는 가장 강력한 적에게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을 스스로가 알아봐 주는가 보다.
요가 수련 같은 일상이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충격인 게 없다. 적어도 반년은 된 것 같은데 말이다. 회사 근처 요가원에서 만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형식과 내용의 요가. 그 결과 더 깊어진 수련. 동시에 새롭게 생겨난 호기심들. 이것들로 하루하루가 달라져서였을까. 다채로운 나날들이 인생을 길게 만든 걸까. 원래 똑같은 일상이 이어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낀다니까. 느리게 사는 삶을 언젠가 살 수 있겠지, 나는 오래도록 그려 왔다.
오늘도 새로운 날이다. 점심시간에 M 선생님의 엠보링 요가 수업이 있다. M 선생님 수업은 몇 번 들어봤고 좋아하지만 ‘엠보링’이란 말 자체를 처음 들어봤다. 저녁에는 P 선생님의 매트 필라테스 수업에 간다. 매트 필라테스 수업도 경험이 있지만 P 선생님이 이끄는 수업은 역시 처음이다. 처음으로 가득 찬 하루. 엠보링 요가는 실은 난도가 낮은 수업이어서 피했던 거기도 한데 진심으로 후회했다. 너어어어무 시원하고 개운하고 명상도 잘 되고 호흡도 마음껏 하고…. 완벽한 이완에 도달했다. 기본적으로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수련이거늘. 난도와 무관하게 모든 수업이 가치가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처럼 밸런스 요가, 목 어깨 테라피 등 아직 안 해본 요가가 너무도 많다! 짜릿함이 온몸을 파고들며 요동을 친다.
P 선생님의 매트 필라테스 수업은 P 선생님답게 매우 빡셌지만, 괜찮았다. 속상한 수련을 한 뒤였다. 1등 하려고 요가하는 거 아니니까. 피 터질 정도로 벼랑 끝까지 노력하는 운동 아니니까. 못하면 못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최선을 다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는 그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왜 집중하지 못하는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서툴기 짝이 없었지만 비교적 집중한 수련이 됐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집중하는 방법, 집중이 깨지는 이유, 솔직히 다 모르겠지만 나아지고 있다. 팔 굽혀 펴기와 비슷한 아쉬탕가 나마스카라 자세도 이제는 바닥에 쾅 떨어지지 않는다. 그새 아주 약간 길러진 팔과 코어의 힘으로 천천히 가슴을 매트에 내린다. 어깨 서기 자세도 다리가 사선보다 하늘로 향하는 직선에 가깝도록 뻗어진다. 몸 전체를 뒤로 젖히는 후굴 자세도 좋아졌다. 숨을 내뱉으며 배에 힘을 꽉 주면 예전보다 좀 더 후굴이 된다. 물론 집중을 못하면 언제 네가 할 수 있었냐는 듯, 또 자세들이 안 된다. 대신 집중하고 호흡하고 나를 뛰어넘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장하다. 박사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