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더러스트 코리아에 갔다 왔습니다 허허허
작열하던 태양이 슬슬 집에 갈 채비를 하고, 그 덕에 물에 탄 보라색 수채화 물감이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한다. 십여 명은 덮어버릴 그림자를 만들 법한 커다란 나무, 그 아래 수 놓인 잔디 위에 매트를 깔고 나는 누워 있다. 눈을 감는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명상 음악이 드넓은 잔디 광장을 메운다. 눈을 감은 모두가 음악에 몸을 맡겨 어디론가 날아간다. 날아가 도착한 곳에는, 눈물 펑펑 흘리며 피 터지도록 간절히 찾아 헤맸던 나 자신이 있다.
지난 일요일 늦은 오후 서울숲에 있었다. ‘원더러스트 코리아 2025’ 행사가 열렸다. 햇살을 받아 눈부신 초록색들로 가득 찬 야외에서 종일 요가와 명상 수업이 이어지는 일명 요가 페스티벌. 서재페(서울숲 재즈 페스티벌)니 락페(락 페스티벌)니 페스티벌이라고는 한 번을 가본 적 없는 내가 요페(요가 페스티벌의 준말이라고 우겨 본다)에 갔다. 실은 갈까 말까 했었다. 정가 8만 원에 달하는 티켓을 그냥 주겠다는 데도 고민했다. 요가를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 그러면 어디 요가 너 마음껏 해봐라, 라고 말하는 세상의 등 떠밂을 외면하려고 했다.
일주일 전 요가 수업을 예약하는 앱에 알림이 떴다. 원더러스트 코리아 행사에 참여하는 소수의 요가 센터에만 주어지는 무료 티켓이 있으니 어서 신청하라는 공지였다. 솔깃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홀로 요가의 세계를 탐방하는, 같은 말로 요가 친구가 없는 내게 페스티벌은 버거웠다. 위아래 옷 모두 피부에 착 붙은 와중에 납작한 배가 살짝궁 보이는 몸짱 요기니들 사이에서 안 어색한 척…. 하고 있을 내가 눈에 선하다. (이미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이 ‘비사교적’ 성격 때문에 기자 일도 하기 힘….)
그러다 띠리링, 며칠 뒤 또 스마트폰이 진동을 했다. 이번에도 회사 근처 요가원이 쏘아 올린 진동. 신청자 중에서 추첨을 통해 티켓을 제공하겠다더니, 신청자가 별로 없었는지(나처럼 친구 없는 요기니들이 꽤 되나 보다) 수련실 앞에 티켓을 둘 테니 1인 2매씩 가져가면 된다고 알려 왔다. 더는 도망칠 곳도 없이 무조건 요페에 갈 수 있는(가야 하는) 상황. 그런데도 안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갈 때쯤 우연찮게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해외 인플루언서가 이런 말을 했다.
“호기심에는 유통기한이 있어. 살다 보면 이렇게 돼 보고 싶다, 저 사람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호기심이 솟아. 그 마음이 들었을 때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뭐, 괜찮겠지’ 하면서 결국 행동하지 않게 돼.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버릇이 사라져.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듣고 그 마음이 식기 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해. 그게 힘든 일이더라도.”
아무래도 알고리즘이 날 갖고 노는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지나가는 누군가의 말에 이렇게 순식간에 심장이 움직여 버리니, 이렇게 되면 정말로 어쩔 수가 없게 돼 버리는 것이다. 여전히 혼자 갈 결심은 서지 않아 남편을 설득했다. 요가는커녕 스트레칭과도 거리 두기를 하는 남편이므로 ‘우리 같이 매트를 깔고 몸을 이리저리 늘렸다 줄였다 해 보십시다’라고 부탁하기가 미안했지만 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의외로 남편은 “같이 가보자!”라고 흔쾌히 답했지만. (고맙다요 남푠) 나의 목소리가 부르는 곳으로 우리는 향했고, 평화로운 이 숲 속에서 끝내 몸과 마음의 완전한 이완, 바로 사바아사나(송장 자세)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디 사바아사나뿐이던가. 요가하는 나를 열심히 기록한 나만의 사진작가는 내가 보지 못했던 수많은 나를 선물했다. 요페에 참가한 어느 요기니들 못지않게 진지한 눈빛으로, 나쁘지 않은 아사나 수행 능력과 남다른 아우라를 뽐내는 이 30대 여성. 약간의 팔 근육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꽤 멋진…. 나도 모르는 새 어엿한 요기니가 돼 있는 나 스스로에 취하기 직전 상태가 됐다. 얼마 전 우리 요가원의 최고 ‘빡센’ P 선생님이 내게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말씀하신 건, 냉정한 팩트(fact)를 전달하신 거였을까. 난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 칭찬에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반문했는데 말이다. (P 선생님과의 에피소드는 다음 글에서 또 풀어볼게요. 저번 P 선생님 에피소드는 <못하는데, 하고 싶다> 편 참고.)
요페 ‘원더러스트 코리아’에서 원더러스트(wanderlust)는 독일어로 방랑벽을 말한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뜻도 된다. 새로운 경험이나 호기심에 대한 욕구, 탐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원더러스트 코리아의 현장에서 원더러스트를 실현했다. 호기심의 유통기한을 지나치지 않고 ‘요가하고 싶다’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일에 성공했다.
물론 다음 날 실패했다. 전날 땡볕에서 김밥과 닭강정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시달렸던 탓인지 출근해서 내내 배가 아팠다. 아팠다 안 아팠다 해 참을 만했었는데 퇴근 1시간 전부터 식은땀이 났다. 저녁 요가 수업을 예약해 뒀는데. 요가가 가진 회복의 힘을 믿기에, 꾸역꾸역 요가하러 갔어도 끝나서는 웃으면서 나올 것을 아니까 어떻게든 요가원에 가려고 했는데 못 갔다. 이렇게 아픈데 집에 가서 누워야지 이 사람아, 라고 내가 말하는 게 들렸다. 유통기한을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 취소 가능 시간까지 수업을 취소해 수업 횟수 한 번은 살렸다. (오예)
할 수 있는 만큼만, 느릿느릿하더라도 내 속도대로, 나의 요가를 완성하겠다는 심정으로 뱃속은 쾌차했다. (사바아사나 자세로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일하다 보니 점심시간, 50분 요가를 가볍게 완수한 내 몸속에는 긍정의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요가 또 하고 싶다. 아, 오늘은 퇴근해서 남편과 러닝을 해보고도 싶다. 선배며 후배며 요즘 회사에서 나를 피곤하게 하는 이들이 매일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도 그럭저럭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내 덕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