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하는 기자>를 마무리합니다 새 브런치 북으로 만나요!
기자를 그만두고 쓰는 <요가하는 기자> 글입니다. 그리고 이 브런치 북의 마지막 글이기도 합니다. 엄연히 퇴사를 했으니 더는 요가하는 ‘기자’는 아니니까요. 그럼 이제는 음, 요가하는 그냥 사샤? 어떠신지요. 허허. 곧 새로운 요가 브런치 북으로 찾아올 예정입니다. 그동안 제 글과 함께 해주신 독자 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함께 해요. 아, 그리고 제 퇴사 썰이 궁금하신 분들은 ‘[공지] 45일 만에 돌아온 사샤입니다’ 제목의 게시글을 참고해 주세요.
나는 어젯밤 필사해 놓은 책의 한 구절을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한수희의 <마음의 문제> 128쪽에 나오는 문장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혼란스럽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해. 그 모든 불행과 불운과 불상사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다음 단락에 이어지는 문장. “그러나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달 반 넘게 손을 떼고 있던 브런치 북에 글을 쓰는, 심지어 이 브런치 북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려고 하니 두렵다. 막막하다.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하지는 않았다. 벌써 이 글의 두 번째 단락을 쓰고 있으니까. 내가 두려워하고 막막해했던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거다.
이쯤 되니 다시 한번 한수희의 문장들이 떠오른다. “자 자, 지금까지도 넌 어떻게든 해왔잖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다음 단락, 그가 쓴 첫 문장. “그러니까 몸에 힘을 빼.”
몸에 힘을 빼고 이번에는 두 권의 노트를 펴본다. 하나는 그저 글을 쓰는 행위를 하고 싶을 때 만년필을 휘갈길 수 있는 빈 공간이 돼 주는 쪽빛깔 줄 노트. 또 하나는 표지에 영국 근위병 캐릭터가 잔뜩 그려진 런던 줄 노트. 퇴사 이후 요가의 기록들을 이 두 노트에 남기고 있다. 현재는 런던 노트를 요가 일지로 쓰고 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연차를 소진하던 중 강원도 양양에 갔다. 1박 2일 요가 여행이었는데, 그때 쓴 10월 28일의 요가 일지가 첫 기록이다. 가장 최근의 요가 일지는 11월 11일 화요일. 이번 주는 일요일에 10km 마라톤에 나가기로 해서 특수하게(!) 주 5일 요가를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도 대회 전날 토요일에 뜨거운 빈야사 요가를 할 예정이다.
회사에 퇴사를 통보한 뒤로 내가 그 무엇보다 시급히 처리한 일은, 회사 앞 요가원 수강권의 환불 절차를 밟는 것이었다. 퇴사를 한다? 더는 이 회사로 출근을 안 한다는 뜻이고, 그 말인즉슨 회사 근처에 있는 요가원도 가기 어렵다는 것! 집에서 회사까지 대중교통으로 족히 40~50분 이상 걸렸기에 굳이 그 요가원을 힘들게 다닐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새 정이 든 선생님들과 이 요가원만의 수업 내용이 꽤 마음에 들었었지만…. 마음에 드는 요가원은 또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지금 다니는 요가원에 등록했다. 그동안 다녔던 동네 요가는 아니다. 수영을 주력 상품으로 내건 동네 스포츠 센터에서 일주일에 3일, 아침 시간에만 운영하는 요가 수업을 1년 넘게 다녔더랬다. (이 브런치 북 6화 참고.) 오전 7시 20분부터 50분 수업이 이뤄져, 대개 10시까지 출근하면 되는 내 생활 패턴과 딱 맞아서 등록한 거기도 했었지.
하지만 백수가 된 나는 이제 수업을 언제 시작하는지, 몇 분 동안 이뤄지는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하. 남는 게 시간이니까. 호호. 제대로 요가할 수 있는 아늑한 곳이기만 하면 된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오전 10시부터 11시 20분까지 80분 수업을 하는 동네 요가원에 새 둥지를 틀게 된 배경이다. 20명 정원이 꽉 찬 채로 50분 동안 부랴부랴 수업이 진행됐던 회사 앞 요가원에 비하면, 6명 안팎 도반 님들과 한층 ‘찐하게’ 그리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요가를 해가고 있다. 원장 선생님의 아쉬탕가, 그리고 S 선생님의 빈야사 요가가 특히 좋다. 만족하고 있다.
새 동네 요가원에서의 하루하루는 앞으로 새 브런치 북에서 계속 쓰게 될 테니, 이번 글에는 양양 요가원에서 쓴 일지를 여러분께 공유해볼까 한다. 이 요가원은 양양 바닷가 바로 앞에 자리 잡은, 통창으로 바닷가가 훤히 내다 보이는 고요한 곳이었다. 나는 이 요가원 안에 마련된 방 한 칸에 짐을 풀고 저녁 요가를 한 뒤,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요가를 했다. 일출을 바라보며.
양양에 도착한 날 저녁 요가에서는 ‘두려움’을 맛봤다. 머리 서기 자세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시도해 봤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가 이 자세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는지, 내가 머리 서기를 성공할 때까지 내 몸에서 손을 안 뗄 작정인 것처럼 보였다. 감사했지만 무서웠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두 발이 공중에 떴는데, 동시에 목 뼈가 C자 모양으로 ‘뚝’ 하고 그대로 꺾일 것만 같은 공포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살아 있는 공포였다.
실은 다리를 띄운 채로 잠시 더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부러 내려왔다. 그대로 하반신 마비가 돼버릴 듯한 직감마저 들었달까…. 어쨌거나 이날 처음 만난 선생님이지 않았나. 내가 선생님을 덜 믿어서 더 무서웠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머리 서기를 할 수 있는 요기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 뿌듯했다. 짜릿했다. 동시에 이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왠지 요가뿐 아니라 내 인생의 과제도 바로 이것인 듯했다.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바닷가 도반 님들과 차담을 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명상을 했다. 내 고유 영역인 매트, 그리고 매트 안팎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시간이었다. 해님을 바라보다, 해님이 똑같이 비친 창문을 바라보다, 그 시선을 거두지 않고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기도 했다. 멈춰 서고 싶은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였다. 그냥 매트 위에 앉고 싶어 다시 앉아도 봤다. 눈도 슬며시 감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주체적인 나, 자유로운 나, 한계를 넘는 나였다. 숨겨져 있던 고유의 내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수업을 마치며 오늘의 문장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오늘은 용감한 하루가 될 거야,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난밤을 내내 선잠으로 지새웠는데도 개운해졌다. 머리가 맑아졌다. 퇴실을 하고 양양의 한 독립 서점으로 향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책들이 여러 권이었다. 남편에게 선물할 책도 샀다. 거실에 둘 집 모양의 오브제와 파스텔 톤의 비즈로 엮인 팔찌도 샀다. 이곳에서만 8만 원 넘게 돈을 썼다. (후덜덜.) 쓴 돈만큼 기쁨과 즐거움, 여유로움이 차올랐다. 홀로 여행의 묘미가 이런 건가, 잠시 알게 된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새 동네 요가원으로 돌아온다. 토요일에는 새로운 선생님과 요가를 한다. 토요일에만 오시는 J 선생님은 남성이다. 남성 선생님의 요가 안내는 처음 받아본다. 새로움과 도전으로 가득 찬 요즘이 좋다. 불안과 두려움, 때로는 우울도 물론 내 곁에 있다. 더 솔직해지자면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고 있다. 퇴사 이후 건강 검진차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더니 아무래도 투약을 하는 게 좋겠다는 진단이 나왔다. 당분간은, 적어도 남은 올해는 최대한 매일을 행복과 자유, 평온함으로 채우며 나를 돌볼 계획이다. 이 과정에 요가는 절대, 절대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