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스며들듯이

꿀 같았던 사바아사나 때 떠오른 심상

by 사샤

퇴근해서 작은 방 책상에 앉아 있는 지금. 지쳐버렸다. 지금 시각은 저녁 9시 5분. 오랜만에 야근을 했다. 급하게 기사 쓸 게 생겨서 오후 4시가 다 돼 갈 즈음부터 미동도 없이 노트북 화면만 보며 키보드를 가열차게 두들겼더랬다. 중간중간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정도가 되면 화장실 일을 보고 목이 말라 따가울 지경이 돼서야 물 한 컵 뜨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겨우 겨우 기사를 써서 팀장한테 넘겼는데, 기사를 반 토막 분량으로 줄여놨다. 문장들도 거의 다 새로 써놨다. 사실 다 봤다. 내가 쓴 기사, 키보드 엔터 키 ‘타다다닥’ 쳐서 밑으로 내려놓고 첫 문장부터 새로 쓰기 시작하는 거 내가 다 봤다. 구글 문서 창은 다 보인다. 다 보이는 거 알면서 그런 거다 이 사람. 이 나쁜 팀장아. (흑흑.)


아무튼 그래서 많이 빡치는데(화난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지. 암.) 오늘 점심시간에도 회사 앞 요가원에서 요가를 했기에, 요기니에게는 삶의 모든 순간이 수련이므로, 심호흡을 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그래, 점심에 매트 필라테스 수업 재밌었지. 힘들기도 했지. 운전대처럼 생긴 필라테스 링을 활용해 여러 동작들을 해봤는데, 특히 엉덩이와 허벅지에 자극이 많이 됐다. 아주 빡세게 몰아붙이는 수업이 아니었어서 또 할 만했다. 오전부터 컨디션이 좀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 (간절기에는 컨디션 관리는 필수다. 우리 모두!)


오늘 하루는 이렇게 어찌어찌 흘러왔고 다시 작은 방 책상. 침실에 있던 노란 불빛 스탠드를 잠시 책상 위로 가져왔다. 포근한 조명이 마음에 안정감을 선물한다. 옆에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에 젖은 머리가 흩날린다. 시원하다. 편안하다. 어제 특별했던 몇 분의 순간이 기억난다. 실은 오늘 이 글로 말하고 싶었던 요가 이야기는 바로 이거다. 어제 아침 동네 스포츠 센터, 동네 요가 수업에서 한 사바아사나 이야기.


나는 사바아사나를 하고 있다. 중년 요기니 분들이 수업에 새로 합류하셔서인지, 요즘 선생님은 천장 형광등을 전보다 환하게 켜두신다. 그래서 사바아사나 때 찾아오는 어둠이 평소보다 더 어둡게 느껴진다. 밤에 잠들기 직전 혹은 아침에 잠에서 깨기 직전의 내가 된 듯하다. 가장 이완된 상태의 나.


다만 오늘은 사바아사나 전에 쟁기 자세를 오랜만에 한 탓인지 늘어났던 허리에 약간 통증이 남아 있다. 허리를 편안하게 하려고 매트 위에 허리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툭툭 털어낸다. 좌우로 왔다갔다 허리 롤링(rolling)도 해본다. 선생님의 명상 말씀이 시작된다.


말씀들이 유난히 촉촉하게 느껴진다. 힘든 감정과 생각이 들 수 있다, 외면하려고 하지 말고 알아차리면 된다, 그 감정과 생각과 나를 분리시킨다, 그 감정과 생각이 나 스스로가 아님을 자각한다…. 이런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 멘트가 촉촉하다 못해 내가 촉촉한 곳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사바아사나를 하며 정말로 오랜만에 심상이 떠오른다. 어느덧 나는 새벽이슬을 머금은 잔디밭 위에 누워 있다.


내가 누워 있는 잔디 밭은 몽골의 드넓은 초원의 일부다. 너무나 넓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아래로 펼쳐지고, 위로는 계속해서 확장의 확장을 거듭하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무한 팽창하는 초원과 하늘,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존재한다. 초원 한가운데 누워 위, 아래 세상의 경계가 된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뺨에 살짝 바람이 스쳐간다. 순간 눈을 뜨니 하늘 색깔이 맑디 맑은 파란색에서 그보다 연한 하늘색으로, 그러다 별빛이 군데군데 삐져나오고 있는 보라색이 된다. 어스름한 저녁의 빛깔이 된다.


밤을 맞이한 몽골의 광활한 초원, 그 위에 누워 있는 내가 바닥으로 서서히 몸이 가라앉는다.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듯이”. 가라앉고 가라앉던 몸이 초원의 일부가 돼 간다. 물기가 묻어 있는 풀 속으로 내 몸이 깊이 박힌다. 결국, 초록색 풀밭과 하나가 된다. 내 몸이 서서히 초록색으로 물든다. 내 마음도 초록색으로, 자연의 색으로, 건강과 평화와 자유의 색으로 변해 간다.


art_1399863154.jpg 머릿속에 떠오른 몽골의 초원과 하늘, 그것과 비슷한 사진 (출처: 프레시안)


문득 허리와 뱃가죽에 은은하게 남아 있던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진 사실을 깨닫는다. 편한 쪽으로 몸을 기울여 일어나라는 선생님 안내에, 꿀 같았던 사바아사나가 종료된다. 앉은 자세로 목과 어깨를 늘리는 마무리 자세를 하면서도 ‘이대로 명상 좀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너무나 평화로우므로, 너무나 편안하니까 이 상태를 좀 더 길게 이어가고 싶다.


아, 어제부터 지끈지끈했던 어깨도 완벽하게 이완됐구나, 또 한 번 깨닫는다. 앞으로도 아침에 요가 수업을 올 수 있는 체력과 컨디션을 유지하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아침 요가 수업 횟수를 줄여볼까 고민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다만 무엇이든 강박이 생길 수준으로 하지는 않을 거다. 컨디션 관리든 요가든 사바아사나든. 아아, 행복했던 사바아사나. 또 찾아와 줘. 아침 요가, 동네 요가, 놓지 않을 테니까.

이전 10화회복의 아쉬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