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요가 없이 어떻게 회복했지
코로나를 이겨내고, 아니, 어쩌면 코로나를 조금은 껴안고 출근했던 지난 월요일. 점심시간에는 회사 앞 요가원의 ‘아쉬탕가’ 요가 수업이 예약돼 있었다. 요가를 한 이래 정식으로 아쉬탕가라고 이름 붙은 요가 수업은 처음이었다. 물론 아쉬탕가 요가에서 하는 태양 경배 자세 등 일부 아사나와 시퀀스는 그동안 해보긴 했다. 그래도 동네 스포츠 센터에서 시작해 1년 넘게 요가를 했는 걸.
다만 ‘제대로, 오직 아쉬탕가’는 내게 최초였다. 며칠 전 9월 요가 수업 시간표가 새로 나왔고, 월요일 점심시간 수업에 아쉬탕가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내게 아쉬탕가 요가란 빈야사, 하타를 포함한 요가 종류들 중에서도 가장 빡세고 엄격한 FM, 요가의 정석 같은 이미지다. 게다가 요가 선생님들의 선생님으로 통하는 M 선생님이 안내해 주시는 아쉬탕가라니! 잔뜩 쫄았는데도 은근슬쩍 기대감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속이 울렁거렸다. 요가원 출발 30분 전이었다. 백 퍼센트 회복한 상태로 출근한 게 아니었어서 그랬을까. 마침 생리 날짜도 찔끔찔끔 밀리고 있던 상황. 아랫배가 무언가로 꽉 찬 듯하며 무거웠다. 머리도 무겁고 눈꺼풀도 무거운 채로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오랜만에 회사에 나와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어깨도 무겁고. 이제는 속이 메슥거리다 못해 토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수업 예약 취소해야 되나, 생각이 스치며 시계를 봤지만 이미 취소 가능 시간은 지났다. ‘한 시간 전에 취소했어야 하는데. 후우우.’ 남은 건 결정의 순간뿐. 아쉬탕가,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우선 가보자. 못하겠으면 그냥 앉아서 명상하지 뭐.
그렇게 나는 운동복 가방을 들고 회사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첫 아쉬탕가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이 생각보다 컸던 걸까. 오늘처럼 컨디션이 바닥일 때 억지로라도 요가 수업을 다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멀쩡해진 스스로를 발견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 솔직히 한 발짝도 못 움직일 정도로 아픈 게 아니라면, 그래도 한 동작 한 동작씩 시도는 해볼 만한 힘은 남아 있다면, 더 고민하지 않고 요가원에 가는 게 백 번 맞지. 그리고 잠시라도 푹 쉴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도 사실 요가원에만 있다. 회사 안은 당연하고 (당연히 없다. 암. 내 자리도 불편한 걸.) 회사 근처 어디 카페에도 요가원 만한 회복실이 없다. 여러모로 결국 나의 발길은 수련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
수업이 시작됐고 차분한 마음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무리하지 않기로 다짐한 덕분인지 오히려 동작들이 더 잘 된다고 느꼈다. 의외로 수업 속도도 막 빠르지는 않아 따라갈 만했다. 현재 몸 상태와 본래 아사나 수행도를 떠올리며 포기할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최대한 나아갈 수 있는 수준까지만 최선을 다했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몸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말랑말랑해진 몸과 마음으로 계속해서 한 동작, 한 동작을 정성스레 해냈다. (요가의 말랑말랑 경지가 뭔지 궁금하다면 8화 참고.)
와. 이 정도도 충분해. 아픈 몸으로 여기까지 해내다니.
끝내 아쉬탕가 요가를 수십 분째 해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느낄 때쯤 드디어 마지막 동작, 사바아사나 차례가 다가왔다. 선생님이 조명을 끄고 수련실 안을 어둡게 해 주시며, 동시에 눈을 감고 송장 자세를 한 나는 마침내 완벽한 이완에 다다르게 됐다.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아랫배며 머리, 눈꺼풀.... 무거웠던 신체 부위들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토하기 직전이었던 내 위장은 원래의 건강했던 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회복의 아쉬탕가.
의사 선생님 못지않은 아쉬탕가의 손길로 치유의 길을 걷게 된 나는, 글을 쓰는 목요일까지 4일 연속으로 매일 요가를 하고 있다. 매트 필라테스, 아침 동네 요가, 매트 웨이트까지. 그래도 P 선생님의 빈야사 수업이 조금 그립긴 하다. 저번주에도 코로나 때문에 못 해서 꼭 듣고 싶었는데, 갑자기 회식이 잡히는 바람에 예약까지 해둔 수업을 눈물을 흘리며 취소해야 했다. (젠장 회사) P 선생님이랑 빈야사 요가하고 집에 가는 길이 정말 깃털처럼 가벼운데. 흑흑. 다음 주 수요일 저녁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나 자신, 정말 요가 없었을 때는 뭐 하고 살았던 걸까. 아플 땐 어떻게 나았나. 속 답답할 때는 어떻게 풀었었나. 뭐 하면서 설렘과 재미를 느꼈었을까. 아무튼 이제는 이래저래 요가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