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와 제목 모두 ‘엔딩’
저는 각자 매력을 뽐내시는 글쟁이들, 작가님들, 글벗님들과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쓰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이 분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결성하고 벌써 두 번째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요. 앞으로는 모임 글을 쓸 때마다 매거진 <나의 심연>에 게재하려고 합니다. 마감이 매달 말일이라서 그쯤 올라올 거예요.
안녕하세요. 계절이 바뀌었나 싶을 만큼의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더군요. 제 퇴사 말입니다. 두 번째 퇴사였죠. 첫 퇴사와는 분명 달랐지만 어쨌거나 퇴사, 아무튼 엔딩이었습니다. 수년 전 이미 해봤음에도 속해 있던 곳을 떠나는 것, 마침표를 찍는 행위는 여전히 어렵더라고요. 어떤 엔딩이 되면 좋을지 한동안 고민했었습니다.
태도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장착하기로 한 태도는 ‘누구에게도 얼굴 붉히지 않기’였습니다. 솔직히 여러분께만 말씀드리는데, 특히 이번 퇴사는, 퇴사까지 하는 마당에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얼굴을 붉혀야만 직성이 풀리겠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내고 싶긴 했죠.
이제 전 직장이 된 이 회사, 상황이 좋지 않거든요. 회사 사람들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서로 간의 갈등과 반목이 깊어진 지 오래입니다. 세상 곳곳의 숱한 부조리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옳은 게 무엇인지, 그야말로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 ‘언론사’인데도 정작 사내에서조차 그게 안 됐어요. 세상까지 갈 필요도 없이 회사부터 부조리 천지였고 부당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함께 일했던 것도 인연이고, 이 인연이 언제 어디서 다시 시작될지 모르잖아요. 부조리와 부당함으로 가득 찬 회사가 사실 특정 인물 몇몇 책임도 아니고요. 제가 미워했던 동료들도 몰라서 그렇지, 사정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나쁜 기억 못지않게 좋은 기억들도 존재해서요. 감사했다, 많이 배웠다, 또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모두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들끓는 마음에 긍정적인 찬물을 끼얹어 콩가루 엔딩은 막았습니다.
너무 남들 험담만 했네요. 제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엔딩은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되더군요. 저는 전혀 몰랐지만, 동료들은 예전부터 각자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더라고요. 기자였던 저에 대한 여러 사람의 평가와 의견을 듣게 됐습니다. 거의 칭찬이었어요. 4년 반에 걸쳐 받은 피드백이 소중해, 잊지 않고자 노트에 적어 놓았는데요.
꼼꼼하다, 똑똑하다, 순발력 있다, 주체적이다, 기사를 포함한 글을 잘 쓴다, 말을 잘한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있다, 세심하다….
흠, 자기 자랑, 이거 쉽지 않은 거였군요. “앞으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식의 말씀도 해주신다면야 감사히 수용하려고 했는데 역시, 엔딩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도 ‘얼굴 붉히지 않기’ 태도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해요. 저라는 한 사람에 대한 피드백이어서인지 겹치는 내용이 대부분이더라고요. 덕분에 정작 저는 몰랐던 저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그렇게 꼼꼼한가? 나, 순발력 없는데? 내가 회사에서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있던가? 물음표가 끊이지 않았지만 뭐, 그런 면이 보이긴 했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엔딩은 제게 ‘성장’도 선물해 줬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러분. 이렇게 엔딩을 맞고 보니까요. 문득 옆을 보니 스타트도 동시에 맞게 된 거예요, 이런! (‘positive’입니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죠. 이번에는 어떤 스타트가 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진짜로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맘에 안 드는 남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지쳐서, 거든요. 7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하며, 아니, 그전에 3년 정도 이어진 취업 준비생 시절 때부터 전 지쳐 있었고 더는 버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직업인으로서의 고민과 직장인으로서의 좌절을 감당할 힘이 바닥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엔딩이었던 건데요. 스타트 준비가 덜 된 엔딩이었죠. 네, 저 결국 그냥 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이 참 편아아아아아아아안합니다. (극강의 편안함입니다.) 목표 없이 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아, 처음입니다. 그저 오늘을, 내일을, 멀리 나가도 다음 달과 그다음 달 정도 계획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놓지 않았고 그 어느 때보다 세심히 돌보고 있으니 길은 나타날 거라고 믿어요. 제가 꼭 저만의 답을 스스로 찾아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30년 넘게 별 탈 없이 제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저이니까요.
잘 사는 일환으로 얼마 전 전남 구례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준다는 사성암이란 절에 들렀다가 근처 타로 카페에 가봤어요. (불교도 안 믿고 점도 안 믿습니다.) 재미 삼아 뽑아 본 타로 카드들은 일제히 제가 왕이라고 말하더군요. 킹왕짱 할 때 그 킹, 그 왕이요. 왕이 그려진 카드를 몇 개나 뽑았는지 몰라요. 타로점에서 왕은 카리스마, 힘, 특별함을 상징한다고 해요. 제 안에 저만의 무언가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그걸 밖으로 마음껏 꺼내라고, 그렇게 하고 싶은 일 다 해도 다 잘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기분이 킹왕짱 좋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안에 있다는 그것, 저만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올해만 지나도 조금씩 보일 것 같아요. 안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편안한 제가, 항상 그랬듯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제 삶을 차근차근 꾸려갈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오랜만에 만난 엔딩이 무척 반갑습니다. 연말이라는 엔딩을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잖아요. 엔딩 오는 김에 제대로 엔딩 하고 싶었던 거 혹시 있으셨다면 한꺼번에 엔딩, 해버리시죠, 뭐. 2025년 엔딩과 합쳐서 더블 엔딩, 트리플 엔딩 추천해 드립니다. 엔딩, 해보니 좋네요. 좋은 거 여러분과 같이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