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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06. 2018

사색8. 부채탕감 송별회

2월 28일(금)

장례식장 같은 송별회, 해고가 이유라도 회식은 열린다. 사장은 인사라도 하겠다며 회식 자리에 들른다. 사장 얼굴을 보자, 해직 동료 선준욱 과장이 꾸벅 인사한다. 선임이 인사하는데, 나만 이 시팍새끼야 할 수 없잖나. 그동안 감사했다고 하려다가 사장 얼굴을 보니 속이 뒤집어져 인상을 구기고 만다. 더이상 사장-직원 관계가 아닌데도 겨우 할 수 있는 게 표정 관리 않해도 되는 정도. 


“우리 성공해서 만나요.”

사장은 성공을 우리가 다시 만날 기준으로 삼는다. 당신이 성공해서 만나자는 건지, 내가 성공해서 만나자는 건지. 내가 성공하면 당신을 왜 만나야하는지, 자기는 이미 성공했으니 너만 성공하면 된다는 건지. 사람 짤라놓고 한다는 말이 성공하라니, 재수 없다.     


불판에 지글대며 익어 가는 한우와 21년을 견뎠다는 향긋한 양주로 구성된 테이블이라도 해고 직원 송별회라면 전혀 근사하지 않다. 다시 좋은 자리 찾을 수 있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여행이나 가는 게 어때, 이런 저런 위로의 말들을 건넨다. 정작 주인공들은 입을 닫고 있다. 이런 송별회, 짤린 사람을 위한 건지, 살아남은 사람을 위한 건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니네는 죽고 우리는 살아서 미안하다는, 일말의 부채를 털어내는 자리인 듯해 해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런 자리가 꼭 필요한지 모르겠다. 2차, 3차 술이 질펀하게 들어가니 본론이 나온다.     


“이게 뭔 일이냐고. 차 부장님도 책임을 지라고.”

현태진 차장이 차동수 부장 속을 긁기 시작한다. 그런데 차 부장이 무슨 책임을 지나. 부장이 뭐라고. 부장은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현 차장에게 되묻는다.      


“형님도 사표 써야죠. 형이 대신 죽겠다고 쉴드쳐서 다 막았어야죠. 시팍, 형이 맨날 우리한테 자기 믿냐고, 자기는 늘 사표를 가슴에 지고 살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며.”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현 차장이 내뱉는다.      


“나 믿니?”

뭘 딛으란 말인지 예전에 차 부장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나에게 확인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난 못 믿는다, 부장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이 판에선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누구를 믿거나 믿음을 요구하는 게 위험한 거다. 각자도생도 어려운 판에 누굴 믿고 못 믿고 하는 게 어디 있나, 앞으로 나 믿니 이런 말씀마시라, 당신 믿는다고 했다가 나중에 믿지 못할 일 생기면 더 속상하다"

라고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차 부장과 현 차장의 날카로운 공방은 놀랍게도 해직 동료 선 과장의 '현 차장님이나 똑바로 하라'는 트집으로 전환된다. 결국 '니가 개새끼야', '이거 쌍놈이네' 하고 현 차장, 선 과장 둘이서 싸운다. 논점이 틀어진 공방에 술자리는 지루하다 못해 비루해진다. 장례식 같다고 했나. 장례식장에서는 조문객들이 종종 술 취해 싸움을 한다. 죽은 자와 전혀 상관없는 산 자들만의 싸움이다. 그렇고 그런 싸움판을 슬며시 빠져나간다.      


반쯤 열린 택시 창문으로 쌀쌀한 바람이 넘어와 얼굴을 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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