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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12. 2018

사색17. 인수분해

 3월 9일(일)

오전 9시,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일어나 반시간 정도 방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침대로 들어간다. 좀 지났나, 슬며시 눈 떠보니 오후 1시가 훌쩍 지나있다. 일요일이니, 교회를 가야 한다는 신앙인의 자동 반응에 대충 세수만 하고 교회로 간다(예배는 오후 2시).     

설교가 끝나고, 그룹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 다시 침대에 눕는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려 전화를 받아보니 교회 그룹 친구다. 아무리 실직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모임에서 내내 짜증내고, 다른 사람들 의견에 비판만 하더란다  앞으로 그러지 말라하며 전화를 끊는다. 곰곰이 복기해보니, 비판적이었다기보다 합리적으로 말한 것 같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듣기 싫었나 오히려 본인이 착각하는 건 아닐까  짜증 난다. 무엇보다 실직이라는 어려운 일 당해 있는 사람보다 교회 모임을 망친 게 더 큰일이라며 면박 전화를 준 건, 사람이란 어떤 일이든 자기 일과 남의 일로 구분 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자기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한편, 내가 남들 의견에 대해 핀잔만 하는 기본이 안 된 사람인가 자책을 해본다. 자책을 하다니 마음이 약해지는 가 보다.     

비영리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모임에서 얻으려는 각각의 목적이 다양하다. 특히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하고, 모임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문제점이 있으면 분명하게 끄집어내야지, 마냥 ‘사랑’이라는 실천 하지도 못할 idea를 구현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를 대하다간, 정작 필요한 것도 얻지 못하고, ‘당신은(나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만 가지게 한다. 그건 악의 없이 공동체를 파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한 채 ‘기도로 하나 되는, 서로를 위한 마음을 주세요’하며 하고 있는 건 하나님도 곤란하실 것 같다. 현실에 박힌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하늘로 점프만 하는 태도로 교회를 열심히 다닌 들 어떤 성취가 있을까.      

무거운 몸을 침대에 뉘어, 지금 상황을 놓고 인수분해해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직장이다. 왜? 무엇보다 지금, 이때 일하고 있는 게 가장 나를 위한 것이다. 일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할 테니. 또, 일자리로 얻는 소득, 사회적 명성도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자체로 만족감이 있다. 놀고 있다는 말은 상태를 서술하지만 사실은 자존감을 죽이는 말이다. 사회적 명성이라지만 거창하지도 않고 남들 일할 때 나도 놀지 않고 일한다는 명성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일자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살아있는 게 아니다. 당장 지난주 화요일에 면접 본 곳에서 전화 와서 ‘같이 일합시다’ 했으면. 기다리는 거 너무 힘들다. 단단한 신앙이 있다면 이런 일을 당해도 신앙적으로 상황을 탐색할 수 있을 텐데, 신앙이 있고 없는 게 문제인가, 직장이 있고 없는 게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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