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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May 09. 2019

사색55. 기억을 못 하니

4월 16일(수)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재차 확인하고, 이젠 서류 통과도 어려운 일인가 싶다. 불안감에 휩싸여 계속 잔다. 어머니는 일하러 가시고 나는 잠을 잔다. 짜증 난다. 그래도 잔다. 자야 한다. 

    

전화가 울린다. 혹시나 면접 콜인가, 소스라치게 침대에서 뛰어나가 보니 해운대 제수씨다. 조카 해동이 머릴 깎으러 이 동네 미용실에 왔는데, 온 김에 집으로 들르겠단다. 조카 녀석들 오는 건 반갑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청소하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며느리 손님론'이 이해 간다. 만약 동생이 조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온다면 집 청소를 할까, 세수라도 할까. '편안한 관계'의 정의는 어찌 내려지나. 지저분한 집 그대로 맞이하는 게, 아니면 방문객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집안 정리를 해놓는 건가. 청소를 한다는 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보다 내가 더럽게 해 놓고 사는 꼴을 보여주기 싫은 게 아닐까. 집 더러운 꼴 보여줄 수 있는 게 친밀함의 기준인가.     

어머니께서 여럿 반찬과 국을 해놓으셔서 제수씨, 조카들과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제수씨는 어머니께서 이렇게 찬을 다 준비해놓고 일하러 가시느냐고 놀라워한다. 워크맘, 실직자 아들 밥까지 챙겨주는 게 놀라울 따름이겠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밥 먹고, 자죠”

“어머니는 요즘?”

“뭐, 밥 차려주고, 자죠”

제수씨 빵 터지는 웃음에 입안의 밥알이 무차별 곡선을 그리며 식탁으로 떨어진다. 해동은 이제 4살이 됐나, 미운 짓을 하기 시작한다. 예전엔 볼 수 없던 반대로 말하기 “밥 안 먹고 싶어요”, “화장실 안 가고 싶어요” 엄마의 지시를 반대말로 비꼬기 시작한다. 말도 못 하는 아기 같았던 조카가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니 감회가 새롭다. 애들이 벌써 많이 자랐구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조카들과 논다. 오르락내리락 수십 번을 반복해도 재밌기만 한 미끄럼틀, 아이들 입에서 웃음소리도 끊임없이 반복한다. 제수씨는 근처 시장에서 장 보다가 마카롱을 좀 샀다며 한 박스를 건넨다. 마카롱 같은 거 전혀 먹어 볼 마음 없었는데 덕분에 한번 맛보겠다 인사한다. 차창 밖으로 마카롱 맛있게 드세요 하고 애들 둘을 뒤에 태우고 제수씨 자동차는 해운대로 떠난다.      


마카롱, 커피랑 먹으니 굉장히 맛있다. 달콤한 색깔을 먹는 듯, 8개짜리 한 박스, 4개를 연속으로 먹는다. 달콤함으로 순간 기분이 하이퍼 되는 듯했는데, 곧 우울해진다. 어제 해운대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오랜 시간 바다 바람을 맞은 게 약간의 감기 기운을 남긴 듯하다.    

 

텔레비전을 튼다. 이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뉴스 속보가 빗발친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200여 명 수학여행 고등학생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했단다. 실종 소식 중심으로 실시간 속보가 이어진다. 안타깝다. 갑자기 실직을 당해도 뇌에 펀치를 맞은 듯 한 충격을 받는데, 자식이, 가까운 지인이 해상 실종 사고를 당한다면, 이건 뇌를 프리킥 때 축구공 발로 차듯이 한방 차인 것 같을 터.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사건을 마주한 인생들, 그 전환의 거친 잡음이 예상되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저런 뉴스를 보면서 순간 그나마 내 인생은 비록 실직자지만 거실에 안전하게 앉아있는 걸 보면 평탄한 편이구나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사람이 200명이 물에 빠져 죽는데, 나는 저들의 처지와 비교해, 남의 비극적인 상황까지도 내 상황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도구로, 변태 같은 정신승리 요법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이 하루를, 실직자의 비극을 견디고 싶은 걸까.      


예전에 눈과 귀가 먼 남자와 척추장애를 가진 여자의 부부,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 <달팽이의 별> 시사회에 갔다. 영화가 마치고 주인공 두 분을 앞에 두고 어떤 아주머니가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저렇게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 당신들 덕분에 내가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다며 소감을 말하더라. 순간 내가 내 존재에 대한  열심의 동기로 남의 존재로 그 동기를 찾으려는, 장애인의 삶을 자신의 삶의 동력으로 수단 삼는 아주머니에게 구역질이 났다. 아줌마 얼굴에 가서 토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저 진도 앞바다 좌초한 배에 갇혀 있는 아이들로 지금 실직자인 내 처지가 낫구나 하고 있지 않나. 아니, 사는 게 어떻게든 내 살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면 그 방법이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 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어쨌든 내 살 동기를 어디서든 가져오는 게 나쁜 걸까? 다만, 세월호 사고 당사자와 내 실직 상황을 비교하려는 본능적인 비교 우위 사고가 펼쳐지는 게 무섭다. 이렇게 까지 이기적,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라니.      

 

선준욱 과장에게 전화가 온다. 어떤 조그만 회사인데, 당분간은 불투명하고 리스크가 클듯한데 같이 들어가잔다. 자기는 영입 제안을 받았는데, 내 자리도 하나 추천해놓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들어본다. 특별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너무 임시적인 느낌이 들고, 벤처 특성이 강하고, 그 회사 상품은 성공하리란 가능성이 있지만, 그게 성공한다고 갑자기 들어간 내 자리까지 연결성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 정중하게 “안 땡긴다”고 말한다. 생각해서 제안해준 선과장이 고맙다. 이 연락이 설마 신이 내게 준비해놓은 것인가? 신의 신호와 내 취향, 이 둘을 어떻게 분간할지 모르겠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신붓감을 구하는 걸 보면,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낙타에게 물을 주는 여자가 배우자감이라는 구체적인 신호, 예언이었다. 설마 선 과장의 전화가 그런 구체적인 신호인가? 억셉트 했어야 했나. 그런데 내 마음은 거기서 일하는 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아직도 취향을 따지나. 직관에 따르는 게 맞나. 그 반대로 하는 게 맞나? 구체적인 신호를 알 수 있나. 여하튼 나는 이번 제안에 대해선 결정 냈다.      


어머니와 목욕 간다. 어제 넘어져 까진 무릎 상처 때문에 온탕에 몸을 담그기 어렵다. 릴랙스 하러 간 목욕탕에서 찰과상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요령 것 목욕을 마친다. 몸을 말리고 옷을 입는 데 누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다가온다. 고등학교 동창이다.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민망하다. 내 민망한 기색을 알아차리고 ‘내 명철이다, 박명처리’하며 벌거벗고 통성명을 한다. 동창을 만나 반갑지만, 벌거벗은 건 부끄럽다. 나는 목욕을 마쳐 옷을 주섬주섬 입는데, 명철은 목욕하러 온 것이라 옷을 툴툴 벗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 말투에서 서울 엑센트가 묻어난다며, “이 새끼 서울 사람 다됐네” 타박한다. 사실 서울 토박이가 들으면 내가 하는 엑센트는 부산 말인데. 또, 타향살이 수년에 부산말도 서울말도 아닌 외계 엑센트가 된 거다. 가끔 나도 내 이상한 말투를 듣고 있으면 서울에서 바등바등 살아낸 타향살이 흔적 같아 안쓰럽다.      


어머니는 야식으로 만두를 구워주신다. 만두를 굽다가 예전 나 고3 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어머니랑 같이 가던 만두집, 거기 다리가 불편하시던 아저씨 기억나느냐고 물어보신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니, 어머니는 그런 것도 기억을 못 하냐고 핀잔을 준다. 기억이란 게 사람마다 중요한 정도를 차별해서 기억하기 때문에 엄마가 기억하는 걸 나는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걸 핀잔하냐고 버럭 화를 낸다. 어머니는 옛 추억을 공감하려 한 건데, 정작 나는 화를 내고 있으니 서로가 민망하다. 보통이면 아예, 그래요, 그래 하며 장단을 맞출 텐데 오늘 우울해서 그랬나. 어머니는 본인에겐 나 고3 때 공부하느라 매일 밤 기다리다 같이 만두 먹고 하던 소중한 기억인데, 내가 전혀 기억의 단서를 찾지 못하니 화가 나서 핀잔을 했나 본데, 순간 "그런 것도 기억 못 하니"에서 “못하니”라는 말이 “취직도 못하니” 하는 잔상으로 겹쳐, 안 그래도 기분이 엄청 착잡해서 그런지 이상한 데서 화가 난다.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이제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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