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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l 03. 2019

사색68. 냉소와 긍정 사이

4월 29일(화)

어제 읽었던 구약 성경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요셉은 친형들에게 노예로 팔리고, 주인 아내에게 강간 미수 가해자라는 누명으로 감옥에 갔다. 살면서 부당하고, 황당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한다. 그런데 피해자 입장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통제할 수 없잖아. 그런 일을 당하고 싶은, 예상하는 사람이 있겠나. 그렇다면 그런 일이, 사건이 사람을 찾아가는 건가.  


요셉은 말도 안 되는 시련을 당할수록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며 하나님과 자신이 이 상황에도 함께 있다는 태도로 대응한다. 예를 들면, 감옥에 있을 때 당시 같이 함께 투옥된 이집트 파라오 왕의 술 시중 담당 신하의 모호한 꿈을 상담해준다. 사실 감옥에서 남의 사정에 무슨 관심 있겠나. 시답잖은 꿈 이야기가 무슨 상관인가. 노예살이, 감옥살이, 어차피 망한 인생, 남의 사정이 오늘 내 관심을 움직일 수 있겠나. 그런데 요셉은 긍정적인 자세로 남의 사정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지식으로 해몽해준다. 돕는다.    

  

반복하는 부당한 상황과 대우는 자기 인생을 냉소로 치부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을 견뎠는데, 또 어려운, 심지어는 더 힘든 일이 이어진다.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하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요셉은 인생을 포기하거나, 이런 처지를 만든 상대에게 복수하겠다는 자연스러운 반응, 태도가 아닌 연속하는 부당한 처지 속에도 신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신의 계획을 가지고 상황에 대처한다.      


날 짜른 사장, 심지어 실직이라는 결정을 전달해준 차동수 부장에 대한 분노, 만약 기회가 있다면 복수하고 싶다. 복수라 해도 할 수 있는 게 몰래 신발에 오줌이라도 싸? 면전에다 ‘이런 씨발놈들’하고 소리 지를까. 날 실직자로 만든데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있을까. 지난 면접에서도 거절당하고, 어차피 날 뽑지도 않을 거면서 왜 면접하자고 하는 거야, 또 다른 거절에 대한 분노도 삭일 수 있을까. 부당한 상황을 유발한 자에 대한 용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격으론 불가능하다. 결국, 신앙으로 점프해야 용서가 가능한데, 신앙도 그렇게 좋진 못하다.       


찰스 스완돌 목사의 저서 <요셉>에서는 

"하나님, 지금 저를 도와주십시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제가 만든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십시오. 저로 어둠을 넘어 주님의 손을 볼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제가 부서질 때, 저를 다시 빚어주소서. 이렇게 버려진 상태와 거부당한 상태에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라고 부당한 상황 속에서 기도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시련을 신뢰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특히 찰스 목사는 요셉도 그렇게 했는데, 당신도 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이라고 격려한다. 저런 용서와 구원을 기대하는 기도가 정말 가능한 일일까. 저 기도문을 날마다 읽어 마음을 다스리고, 내 태도를 바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다가도 실직 유발자들만 생각하면 불끈 복수심이 일어난다. 기도하려 눈을 감으면 그 인간들이 생각나 울화병이 터진다. 개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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