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우주책방

by 샤쵸

‘딸랑’ 문 위에 걸린 챠임벨이 딸랑거리며 울린다. 손님이 들어왔다는 말이다 “어서오세요.”


무미건조한 인사를 마친 뒤, 손님에게 메뉴판을 손에 들려준다. 무언가 만들기 쉬 운 메뉴를 고르기 바라며.


바쁜 점심 시간에는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시킨다. 밥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 게 되는 것은 언제 생긴 유행이며, 왜 생긴 것이며, 누가 만든 것일까. 아아, 하느 님. 돈은 많이 벌고 싶지만 커피는 만들기 싫습니다. 사람들이 커피 적게 마시게 해주세요, 오미자만 시키게 해주세요, 오미자는 시럽에다가 물만 부어 완성할 수 있으니, 저에게 자비를…


이렇게 기도를 해보아도, 메뉴는 계속 들어올 뿐이다.


‘쿠팡이츠, 주문!’


‘배달의 민족 주문!’


띠링, 띠링… 이젠 챠임벨 소리만 들어도 까무라칠 것 같다.


이런 굴레에서 벗어난 나의 생각은 자주 해 보았다. 난 무었을 하고 있을까, 여러 번 생각을 해 보았지만, 이제 꿈에 대해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어쩌면 이렇게 커피 만드는 일이 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다. 옛날엔 나도 커피 냄새를 아주 좋아했다. 커피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 꿈이었다면, 정 말 초라했겠지…


커피나 만들자.


“어머, 사장님! 사장님 옷 정말 잘 입으시는 것 같아요!”


“그래요?” 지금까지 옷을 잘 입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옷을 나름대로 열심히 입 고 오지만,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렇게 손님이 알아 봐주다니.


“어머, 비율도 좋으신데. 모델 하시는 건 어때요?” “모델… 말입니까?” 난 키도 그렇게 크지 않고, 얼굴이 훤칠하게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근데 그런 내 가 모델? 모델을 하다고? 가당치도 않는 소리다. 그런 가당치도 않는 소리에, 가 슴이 두근대면 안 되는데.


그 손님이 간 이후, 모델이 된 나를 수없이 생각해본다.


아, 내가 이런 옷을 입었다면… 내가 이런 브랜드에서 당당한, 소위 ‘모델 워킹’…! …을 한다라던지. 웃음이 자꾸만 새어나온다. 이렇게 설레는 것을 봐서, 내 옛 꿈 은 모델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끼익’ “나왔어” 가게를 마감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니,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다. 뭐, 빨리 들어와 봤자 다들 자기 할 일 하고 있을 것이니까. 예전에는 내가 집에 오자마자 다들 좋아해줬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다녀왔어, 여보?” 이 말이 듣고 싶을 뿐인데, 아무도 해 주지 않는다. 마루 위에 이불을 피고 티비 를 보다가 잔 우리 가족. 옛날에는 나와 같이 보자는 말도 했는데…


집에서 나만 왕따가 되는 기분이었다.


다 씻고, 모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번 찾아보았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모델 공채가 있었다.


“S…B…S 모델 공채?” 모델도 공채를 하나 보다. 연예인 오디션 같은 거겠거니 하면서 처음에는 가벼 운 마음으로 제목을 클릭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자소서 니, 면접이니, 여러가지 조건과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준비 기간도 있었다. 이 모 든 과정을 거쳐도 준비를 한 후에야 나갈 수 있다는 거였다.


“이건 그냥 회사잖아…”


새삼스럽게 연예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딸이 넋놓고 보는 거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기생오라비같은 것들 이 춤만 추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날은 그냥 잤다. 공채


다음 날, 모델 공채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일을 찾은 것 같았다. 이것이 나의 꿈일까? 꿈일것이다. 도 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공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남은 기간은 한 달인데, 자소서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면접을 보지? 어떻게 모델이 되지? 모델이 되 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지?


“사장님, 커피 흘러요!”


“아, 그래..”


생각하다가 커피를 쏟아버렸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었단 거겠지.


이제 커피를 내리는 내가 참 초라해 보였다.


“또 오셨네요?” “아, 네! 오늘도 사장님은 옷 잘 입으신다!”


아.. 감사합니다.”


저번에 내 패션을 좋아해주신 손님이 또 오셨다. 저번에 이야기를 같이 나눠보니, 모델… 연예인, 뭐 이런 쪽에 빠삭하신 분이셨다. 이쪽 업계 종사자이신가 보다. 분명 모델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잘 알고 계시겠지.


“ㅈ…저기.”


“네?” “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걸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나이에 모델을 시작하겠다는데… 자 존심이 상한 걸까, 이 기분을 뭐라고 말하더라, 그래, 기억났다.


쪽팔렸다.


언제부터 내 꿈을 좆는 일이 쪽팔린 일이 되었을까. 내가 쪽팔렸다.


오늘도 그저 커피를 내릴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커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내려가는게 보였다. “다녀왔어” “왔어?” 그녀가 이번엔 나를 반겼다. 무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냐.”


“아빠 상관 아니잖아.”


그녀가 핸드폰을 옆으로 휙 치웠다. 스쳐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모델인 것 같 았다.


“멋있냐? 걔.”


“멋있지. 모델인데, 잘생기고, 키 크고. 멋있지 않아?” “…”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키도 큰 편이 아니고, 딱히 잘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못생긴 모델은 없디? 아빠처럼.”


희망을 가진 채로 물어봤다.


“있을걸? 독특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극찬받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이사람 봐.”


오랜만에 그녀와 대화를 한다. 나와 그녀의 관계가 그와 그녀의 사이에서, 아빠와 딸의 관계로 좁혀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잘생기지 않은 모델도 있었다. 키가 별로 크지 않아도, 아니. 오히 려 작아도 모델인 사람도 있었다. 가슴속에서 희망이라는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 다.


“내가 모델 하면, 멋질 것 같니?” “뭐… 응원은 하겠지.”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공채 링크를 타고 들어가, 자소서 파일을 다운받 았다. 그 손님이 내일도 와야 할 텐데. 내일은 같잖은 자존심이 없어야 할 텐데. 그녀가 좋아하겠지?


내 딸이.


‘핑계네. 내가 원해서 하는 건데.’


이렇게 오늘도 잠이 든다. 깊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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