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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Feb 04. 2023

평범한 소원

공상과학

종이를 한번 두번 세번 접었다. 정확히 세번이었다. 그리고 소원함에 넣었다.


말끔한 헤어스타일에 검은 정장을 하고 검정 페라가모를 신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미중년의 남성이었다. 그가 오른편 책상위에 둔 서류 가방에서 흰종이 한장을 꺼냈다. 그리고 정장 포켓에 꽂혀 있던 만년필을 꺼내들고 조용히 써내려 갔다. 열중하던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나역시 주술에 걸린듯 절로 미소지어졌다.



나는 관공서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말단 공무원이다. 그다지 좋은 대학이라 할 수 없는 학교를 졸업하고 삶에 대한 큰 고민없이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다. 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제천시 화산동 주민센터에 발령을 받아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바로 몇분 전.

누가 보아도 평범해 보이지 않은 그 미중년의 남성이 방문하였다. 그는 딱보아도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자신이 원하는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단란한 가정의 멋진 남편이자 아빠로 우뚝서 있을거라 짐작되었다.

출입구를 들어서는 발걸음이 경쾌하고 잘 딲여져 있는 검정 구두가 그 발걸음을 더 빛나 보이게 했다. 솔직히 좀 부러웠다. 그에 비하면 난 며칠째 같은 옷에 같은 신발을 신고 있다. 외모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이 꾸며 보아야 거기서 거기란 생각에 그런것에 나의 시간과 돈을 투자 하지 않는다.


그런 그 남자가 나에게 다가 와 물었다.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곳에 소원함이 어디 있지요?'


그의 목소리는 외모 만큼이나 정중한 말투에 적당한 저음이 어우러져 나에게 멍울져 있던 긴장감들을 이완 시켜주었다.


'저쪽 왼쪽 복도 끝으로 가시면 빨간 우편함 같은것이 있습니다. 그게 소원함이에요'


나 역시 평소와는 좀 다르게 목소리 톤에 신경을 쓰면서 정중하게 안내 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좋은 향수 냄새도 난다. 아마도 명품 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 남자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슨 소원이 있길래 저렇게 소원함을 찾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동사무소에 비치된 소원함은 한달에 한건 정도의 사연이 있을까 말까 할정도로 참여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소원함을 이렇게 물어 물어 찾아 가는 사람은 내가 근무한 이후로 본적이 없었다. 정말 궁금했다. 무슨 소원을 썼을까? 보기에는 별로 소원 따위는 없을 것처럼 안정적이고 성공한 중년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소원이람. 저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갖는 소원은 무엇일까?


문득 나의 소원은 뭔가 생각해보았다.

아이폰? 1인용 오피스텔? 돈 많이 버는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간절 할만한 것들이 없었다. 그냥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물건들의 나열 뿐, 딱히 누군가의 건강이나 안녕들을 바라는것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냥 살기 위해 사는 것일까?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조금 허무감이 밀려왔다.


'저기 선생님 커피 한잔 드세요'


누군가 말을 거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 올려보니 아까 나에게 소원함을 찾던 그 미중년이었다.


'고맙습니다. 잘마실께요.'

'아까 친절히 말씀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제 소원도 꼭 이루어 질것만 같아요.'


그는 하얀 건치가 빛나 보이게 밝은 미소를 지었다. 나의 하루도 덕분에 조금은 밝게 빛나고 있다.

그가 돌아간뒤 한참이나 좀전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으며 나 역시 소원을 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직원들에게 배포된 연하장을 두번째 서랍에서 꺼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볼펜을 꺼내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 적어 내려갔다.


'비록 평범한 사람이지만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평범한 소원을 적은 나는 그것을 소원함에 넣었다. 벌써 소원이 이루어진듯 행복한 마음과 뿌듯함이 가득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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