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어느날 현관문 앞에 커다란 박스가 하나 놓여있었다. 보낸이를 보니 어디 외국에서 배송된 제품처럼 보였다. 그런 수취인에 대한 주소는 있는데 연락처와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주소로 볼때 이곳이 아닌건 확실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고 웬지 호기심에 2미터가 넘어 보이는 박스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섰다.
항상 같은 퇴근길에 들어서던 현관문과 다른 느낌이었다. 누군가 이곳에서 날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혼자서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다음 맥주 한캔과 함께 의미없는 티비를 보는게 나의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호기심 가득해보이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박스에 무엇이 들었을까?
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지만 박스의 테이프를 뜯는 순간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이 된다는 생각에 쉽게 박스를 열 수는 없었다.
우선 한켠 박스를 두고 예전의 내 모습처럼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그 박스에 대한 생각은 한동안 없어졌던것 같다. 오히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녀가 생각났다. 갑자기 야한 생각이 들었는지 나의 페니가 조금은 딱딱해지는것이 느껴졌다.
혼자 사는 나는 이럴때면 자위를 하곤 했지만 오늘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박스 하나가 있어서인지 실행으로는 옮기지 않았다.
사실 찌질한 삶을 살아가는 난 이럴때마다 자괴감에 힘들다. 이런것만이 나의 사랑을 배출하고 표현하는 방법뿐인지 하는 이런 생각, 정말 절망감이 크다.
샤워를 마친뒤 어제 사둔 냉장고의 맥주 한캔을 꺼냈다. 평소 마시는 맥주가 없어서 사과맛이 난다는 맥주인데 요즘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첫모금에 이거 그냥 탄산 애플아냐? 하는 의심이 들정도로 맥주 같지 않았다.
맥주는 맥주다워야 맛있는건데. 마치 사람이 사람다워야 멋있는 것처럼…
그래도 맥주가 맞는지 몇모금에 살짝 볼이 뜨거워지는걸 느꼈다. 순간 거실 한켠의 커다란 박스가 보였다.
뜯어 볼까 하는 충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모르고 개봉했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변명거리도 생각했다.
정말 궁금했다. 이박스 안에 뭐가 있을까.
칼로 개봉하지 말라는 주의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 날카로운 걸로 개봉하면 안되는 어떤 물건인가?
더 호기심이 발동했다. 테이프 뜯은 자국을 내지 않기 위해 손톱을 이용해 최대한 천천히 테이프를 뜯어 나갔다. 그리고 박스를 열었다.
순간 놀라 난 뒷걸음쳤다.
사람의 시체인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인지, 박스안엔 분명 여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인 같았는데….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한모금 다시 마신후 그 박스에 다시 다가갔다.
조심히 저절로 닫혀진 박스를 다시 열었다.
사람 모양의 커다란 여자 인형이었다.
정말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고 하기엔 사실 조잡한 부분이 조금 있어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노란 단발 금발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인형은 간호사 복장의 하얀 가운은 입고 있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스를 조금더 자세히 보니 사용설명서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게 섹스 인형이란걸.
지난 밤 마신 맥주 캔들이 어지러져 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아침을 알려주는 동향의 아파트.
재채기가 난다. 지난밤 거실에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것 같다. 그 인형과 함께.
인형은 마치 관속에 있는 것처럼 박스에 누워 잠들어 있다.
잠든 널 깨우고 싶지는 않아 홀로 일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이 지난밤의 혼돈을 깨우는듯 하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양치를 하고, 대강 세수를 하며, 평소 바르던 스킨과 로션을 나의 뺨에 한대 후려치듯 치댔다.
아직은 겨울의 찬 바람이 느껴지는 그런 날씨다. 2월말 어느날.
주위의 쇼윈도우에 옷매무새를 고치며 서둘러 걸었다.
지하철 입구는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와 메트로 신문을 나누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분주한 아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두분은 모녀지간 같은 모습이다. 계속보니 닮아 보인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계단을 서둘러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