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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un 08. 2023

어리석은 남자의 브로콜리

공상과학

느티나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집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다. 보호수로 지정될 정도로 오래되고 커다란 느티나무. 그밑에는 마을에서 만들어 놓은 디자인적인 벤치가 자리 잡고 있으며 하교 시간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리곤 한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 가끔 사진으로 남겨두곤 했다.


혼자 이 마을로 온지는 조금 되었다. 날 아는 이가 없는 이곳으로 온지도 십년이 훌쩍 넘었다. 젊은 날 상처를 잊고 싶어 잠시 들렸던 이곳에 이렇게 오래 살게 될줄은 몰랐다. 아마도 집앞 느티나무를 보는 즐거움이 그럴 수 있게 해준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느티나무는 남들과 다른 그런 특별한 존재였다.


어느날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저 커다란 느티나무를 우리집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상식적인 방법에서 옮기려 한다면 포크레인으로 대략 10미티정도의 둘레부터 파기 시작해서 안쪽으로 조금씩 조심해서 파들어가는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뿌리를 꺼내어 옮기면 가능 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4명 이상의 인부가 노끈으로 사방에서 잡아당겨 느티나무가 쓰러지는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쓰러져 지금과 같은 브로콜리 모양의 느티나무는 어딘가 훼손될것이 분명하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당연히 남들 눈에 띄이게 되어 절도죄로 집앞 파출소에 끌려 갈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피하고 싶다. 남들의 이목도 있고 하니 그러면 안될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들 몰래 느티나무를 우리집으로 옮길 수 있을까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루에 한번 삽질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의 폭을 적게 하여 어떤 다른 변화가 없는것 처럼 인지하게 만드는 방법은 좋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쌓여가는 흙들로 민원이 들어올것 같다. 그리고 그 커다란 느티나무를 집으로 나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기에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럼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옮겨야 할까?


새로 나오는 가지 하나를 꺾어서 화병에 담아 두었다가 뿌리가 나면 그때 옮겨 심으면 될것 같았다. 그렇다 삽목이 가장 현실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처럼 커다란 느티나무를 나는 아마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은 흐른뒤에나 가능할것이다. 물론 제대로 옮겨 심은것이 잘 커나간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볼 수 없는 기쁨을 대신 다른 누군가가 보고서 지금의 내 기쁨을 갖는다면 그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혹시 느티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밤 난 전지 가위를 들고 느티나무 아래에 섰다. 커다란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얀 보름달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이 느티나무를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고요한 음악이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전지 가위가 달빛에 순간 반짝였다. 가위를 느티나무 하단의 어린 가지로 향했을때 조금은 서늘한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이내 그 작은 가지를 잘랐다.


'뚝'


수돗물을 담은 투명한 화병에 삽목할 가지를 조심스레 담궜다. 시간이 조금 흘러 한달이 되었을 무렵부터 느티나무 가지에서 작은 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어느새 뿌리가 할아버지의 커다란 수염처럼 길게 뻗기 시작했다. 조만간 옮겨 심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심장의 통증이 느껴졌다.

평소 가끔 가슴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가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숨이 멎을것 같은 통증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난 이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갑작스러웠다.

숨이 멈추고 내 영혼이 우리집 거실을 돌아 갈때 난 다시 보았다. 그 작은 화병에 담겨진 느티나무가 날 배웅해주는것 같았다. 난 한참을 보았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했다. 현관을 열고 가녀린 초승달이 있는 하늘로 올려 보았다. 비록 보름달은 아니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초승달이었다. 누가 가르켜 준것도 아니지만 고개를 들어 내 몸을 하늘로 띄웠다. 점점 초승달과 가까워지던 때에 다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커다란 브로콜리처럼 서있는 느티나무가 너무 아름 다웠다. 그동안 고마웠다.


안녕이란 작별인사를 건넸다. 헤어짐이었다.


'안녕...'


그 마을엔 두개의 커다란 브로콜리가 엄마와 자식처럼 함께 나란히 서있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알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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