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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un 07. 2023

2024년 1월 20일 오전 7시 15분

공상과학

수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몽환적인 이곳을 난 헤엄치고 있다. 어딘지 모르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 곳이다. 물속에 있지만 숨을 쉴 수 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지만 그렇게 숨을 쉬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의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다.

하지만 평소 건강이 좋지 못한 엄마가 생각나서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받았다.


'00 병원입니다. 미쯔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어머니 사고를 목격하고 지금 00 병원 응급실로 왔는데요. 지금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는데 제가 간호사 선생님을 바꿔드릴 테니 통화해 보시겠습니까?'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중추신경계의 손상이 있고 대량 출혈로 지금 호흡이 불안전한 상황이세요. 바로 응급수술을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지금 이곳으로 바로 올 수 없으시니 수술비를 입금해 주시면 바로 수술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미쯔이상을 바꿔드릴게요.'


당황스러워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 들으셨죠? 계좌번호 문자로 보낼 테니 바로 입금해주세요. 그리고 병원으로 바로 오시고요. 찍힌 제 전화로 전화하시면 될 거예요. 제가 어머니 곁에서 상황을 계속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수수실로 가야 해서 이만 끊을게요.'


'저.. 여보세요...'


띵동(핸드폰 문자음)


'ㅇㅇ은행 xxxxxxxxx-xxx-xxx 1천만 원 예금주 미쯔이'


너무 긴박하고 당황스러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난 즉시 인터넷 뱅킹으로 1천만 원을 입금하였다. 내가 알바를 하면서 틈틈이 모아 온 돈이었다. 전재산이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걸어주세요.'


송금을 마친 뒤 전화를 해보아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혹시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긴장되었다. 00 병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성함의 환자가 응급실에 계신지 또는 수술실에 계신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 했다.


서둘러 00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려고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빈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미쓰이라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난 길을 건너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우선은 병원 쪽으로 뛰다가 빈택시가 보이면 그것을 타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길은 정체되어 있었고 빈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숨이 차올라 달리다 쉬다 달리다 쉬다를 반복했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고, 다리는 왠지 힘이 없어 점점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길 건너의 빈택시를 발견한 나는 좌우를 살피고 바로 뛰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보지 못한 자동차에 치어 쓰러졌다. 파란 하늘 뜨거운 아스팔트, 머리에서 흐르는 액체가 느껴졌다. 머리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려는 듯 모든 걸 포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나른했다. 그리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실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하얀빛 많이 보였다. 선이 없고 면만 보이는 세상이었다. 어떤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냥 뇌에서 느끼는 감과 촉감으로 통해서 이곳도 하나의 공간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난 어떤 침대와 같은 곳에 누워져 있는 것 같았다.


'수술실인가...'


하지만 주위 어떤 것을 보더라도 이곳이 수술실이란 생각이 들게 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수술복이 아닌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은 신지 않은 상태로 어딘지 모를 이곳이 누워있었다.


'딸깍'


공간 어디선가 문소리가 들렸다. 그쪽 방향에서 어떤 남자가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했다.


'2023년 3월 25일 오후 2시 10분 교통사고로 인한 대퇴골 골절과 대량출혈로 사망'


그의 말투에 경건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죽은 건가?. 그럼 이곳은 저승세계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저는 지옥을 가는 건가요?'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몇 장 넘기더니 말했다.


'다시 환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생이요? 그럼 저는 다시 살 수 있는 건가요? 영화를 보면 동물로 태어나기도 하던데...'


'물론 인간으로 다시 태어 날 수 있지만, 다시 아이로 태어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모두 잊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점은 내게 있어서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었다. 좀 더 열심히 살아서 근사하게 날 키워가고 싶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에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한 미쯔이씨의 아이로 태어납니다.'


'아.... '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날 받은 전화는 속된 말로 보이스피싱이었던 것이다. 난 바보처럼 그 말에 속아 허둥대다 그날의 사고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전 사기를 당한 게 맞는 거죠?'


'네. 맞습니다.'


'전 그 사람의 아이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고요?'


'네. 맞습니다.'


'왜 이런 환생을 하는 거죠?. 그냥 모르는 사람의 아이로 태어나면 안 되는 건가요?'


'원래 환생이란 건 지난 업들을 털어내기 위한 무한 반복의 삶입니다. 당신과 미쯔이씨가 만들어낸 업과 인연을 털어내기 위해 환생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 신은 그런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극락이란 삶에 도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모든 기억은 없어지니 괜찮을 겁니다.'


그가 건네준 하얀색 알약 하나를 먹었다. 그리고 난 지금 미쯔이의 아내의 뱃속에 있다.

아직은 기억이 모두 살아 있다. 사기꾼의 아내가 주는 영양분을 통해 나는 지금 살고 있다. 아마 양수인 것 같은데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이 안에서 몇 개월 생활을 하면 난 아이로 태어날 것이며 아마도 지금의 기억이 모두 없어질 것이다. 순간 화가 났다. 발로 그의 아내를 찼다. 그런데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나의 발차기를 그들은 태동 같은 것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의 발차기는 하지 않았다.


이곳은 시간의 개념이 없다. 그냥 계속 자주 졸린다. 깨어있을 때는 너무 편한 느낌이 든다. 내가 전생에 살아었던 어떤 인생들도 지금의 편안함과 비교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나가면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지금도 날 사랑 가득한 말로 내게 대화를 건네주는 그녀의 아이로 살아갈 것이다. 어떤 삶이 펼쳐 있을지 모르지만 바로 전 인생보단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득 전생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그날의 사고가 그냥 사기꾼의 말뿐이었으니 엄마는 다치지 않았으리라. 엄마가 보고 싶었다. 평소 살갑게 굴지도 못했고 오히려 항상 귀찮다는 투로 투덜거리기만 했다. 난 정말 못난 딸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자살을 하게 되면, 된다면, 이들에게 가장 큰 복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잃게 된다면 그들에게 큰 슬픔일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생각했다.


다시 산다 해도 내 인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서 내가 잘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냥 죽음으로써 이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게 내 인생의 가장 잘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저승에서 들은 말도 나로 하여금 자살을 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만일 살면서 자살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환생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소멸됩니다.'


차라리 더 이상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잘된 일일 거라 생각 들었다.


생각 끝에 이곳에서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탯줄이라 불리는 이 끈을 이용해 목을 맨다면 가능할 것이다.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탯줄을 목으로 휘감기 시작했고 내 작은 힘으로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나의 의식은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 전 죽었을 때처럼 몸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나른하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생각하니 조금은 아쉬움도 들었다.


 



정신을 잃어가던 그때였다.

갑자기 환한 불빛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밝아 눈을 감았다. 내가 동여맨 탯줄이 끊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날 끄집어내듯 잡았다. 난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이유 없이 삶의 의지가 강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힘차게 울었다.


새로운 내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처럼.


'2024년 1월 20일 오전 7시 15분'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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