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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un 21. 2023

리셋

공상과학

인정 욕구가 강한 유메는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누구보다 꾸준하게 공부하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결과로나 과정에서나 모두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화창하고 낮의 햇볕이 따가운 여름이었다. 학교 정문의 길가엔 수국이 만발해서 다들 폰카로 오늘의 화려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유메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기말고사가 다가 오기 때문이었다. 이번 기말고사를 통해 갈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래야 부모님과 선생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유메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기에 자신 만의 계획에 따라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음이 항상 조급하다 유메는.


일주일 남은 기말고사 일정에 맞게 유메는 교과를 펼쳐서 체크해 둔 항목들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시작된 공부버릇이다. 나름 자신만의 공부 방법이다. 교과서에서 중요한 항목들을 먼저 체크하고 그것들을 따로 시험공부 기록장에 모두 기록한 뒤 그중에서 시험에 나올 법한 것들을 다시 한번 추려 다시 한번 기록장을 작성한다. 어찌 보면 좀 비효율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메는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방식에 더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유메는 사실 꿈이 있다. 어떤 직업을 갖겠다거나 어떤 일을 이루겠다는 꿈이 아니다.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어떤 일을 이루고 난 뒤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유메 자신도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면서 그 굴레에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왔다.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간절하다.


내일이면 유메의 마지막 고등학교 기말고사 시험이 있는 날이다. 사실상 이번 시험의 결과가 유메의 대학진학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이기에 그동안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시험을 잘 볼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말고사를 망치게 된다면 내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었다. 왜냐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나 과정을 보면 그는 절대로 쉽게 변하지 않을 사람이란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외부의 큰 작용이나 또는 사건으로 인해서만 변화하는 인간형인 것이다.

유메는 조금은 엉뚱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고민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유메의 꿈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용기는 별로 없었고, 계속 이방향으로 나아가면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을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편안함은 얻을 수 없게 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메는 시험 당일 늦게 등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겐 소심하고 어리석은 일탈이었지만, 인생이란 큰 선을 보면 위험한 일탈이었다.


당일 아침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여느 시간과 같은 7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다만 바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지 않고 동네의 탄천을 향했다. 다들 출근 또는 등교를 하는 시간이라 탄천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책가방을 메고서 탄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이 불안하고 초초했기에 그렇게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렸을까? 저 멀리 산책로 길가에 한 여자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달려가 보니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쓰러져 있었다.

유메는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는 탄천 주변 산책로인데요. 할머니의 심장이 안 좋아 쓰러지신 것 같아요. 구급대원 부탁드려요. 급히요!'


전화를 마치고 할머니의 무릎아래를 책가방으로 받치고 몸을 편안한 자세로 유지시켰다. 학교에서 심근경색이 발생할 때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유지하라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손과 발을 주무르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괜찮을 거예요. 곧 구급대원이 올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얼마 후 구급대원은 도착하였고 할머니를 근처 병원으로 모셨다. 아침에 일어난 이 갑작스러운 일들로 인해 혼자 멍하니 탄천을 바라보며 잠시 서있었다. 갑자기 기말고사가 생각났다. 난 있는 힘을 다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간신히 등교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의 계획은 아침의 일로 틀어져 버렸다. 무언가 아침의 일들로 인해 나의 일탈이 무의미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험 시간 내내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긴장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괜찮아질 거란 생각에 위안을 두었다.


시험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봤다.


'유메군!'

'네'

'이번 기말고사에서 유메군이 전교 1등을 했습니다. 다들 박수!'

'짝짝짝!!!'


'그리고 한 가지 더. 유메군이 기말고사 보던 날 어떤 할머니를 구해준 사실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유메군이 시청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들 좋은 일을 한 유메군에게 박수!'

'짝짝짝!'


얼떨떨했다. 유메는 좋은 성적도 얻었고, 표창장도 받게 되었다. 정말 그의 인정욕구가 모두 충족된 날이다.


그날 조금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모든 걸 내려놓는 행동으로 변화하려 시도했었다. 그런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는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끝을 맺었다. 물론 그것이 유메가 진정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려 했을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다시 그의 삶을 일정한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 어떤 힘이 있다고 어렴풋 생각하게 되었다. 후에 결과로 어떤 것이 남겨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유메는 기회를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참, 유메 근데 너 그날 시험이었는데 그 시간에 거기에 왜 있었던 거니?'

'아....'

'그냥. 시험날이라 잠시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바람 쐬러 간 거예요.'

'아. 그래. 참 그날 네가 그곳에 간 것도 참 운명이었나 보다.'


유메의 인생선은 단단하여 쉽게 다른 곳으로 휘지 못한다. 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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