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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Aug 08. 2022

토큰박스

공상과학

작은 토큰박스에서


통금이 해제 된지 얼마 안된 시간이라 그런지 오늘도 아무도 없는 이 거리를 나홀로 걸어간다. 밤새 비가 왔었다. 거리가 젖어있다. 신호등은 주황불을 깜빡깜빡 거리고 있으며 가로등 사이로 푸른 새벽하늘이 보인다.


‘철컥 철컥’


내가 일하는 이곳은 한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다. 전면에 작은 투명 아크릴이 만들어져 있고 손님들에게 손을 내밀수 있는 작은 반원의 구멍도 나있다. 오른쪽엔 백장단위의 회수권과 토큰을 담은 작은 나무상자가 일렬로 선반에 가득하다.

왼쪽엔 얼마전 잡지에서 뜯은 사진이 붙어있다. 노을지는 해변가에 야자수가 보이는 사진인데, 사실 그옆에 수영복을 입은 금발의 여성이 좋아서 가져왔다. 그리고 그위에 은행에서 얻은 달력 하나와 개점 선물로 받은 작은 벽시계가 걸려있으며, 내 작업 선반 오른쪽에 라디오가 놓여져있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다. 라디오가 없다면 이곳에서 한시간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작은 공간이 나의 일터이며, 사람들은 토큰박스라 부른다.


5시50분


지금부터 첫차를 탈 손님들이 조금씩 올 시간이 다되어간다. 기본적인 준비를 해놓아야 이 새벽 아무도 없는 이 거리에서 담배라도 한개피라도 피울 수 있다. 그게 내가 이 토큰 상자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는 몇 안되는 경우이다.

준비는 별거 없다. 토큰을 분류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이지만 내가 하루를 보내야 하는 곳이기에 간단한 정리정돈과 청소정도 뿐이다.



6시 정각


오늘의 첫담배는 6시 정각에 피게 되었다.

이제 조금 하늘이 밝아 지는게 느껴진다. 나의 담배 연기가 저 하늘에 보이는 구름색과 같다. 거리도 내가 출근할때와는 달리 차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새벽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서둘러 뛰는 모습도 보인다. 오늘 하루에서 어떤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저기요, 여기 토큰 하나 주세요’

피던 담배를 서둘러 껐다. 그리고 나의 좁디좁은 토큰 박스로 서둘러 들어간다.

그리고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오늘도 뭘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9시


바쁜 시간이 모두 지났다.

7시부터 9시까지는 하루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등교하는 학생들이 일시에 모여든다. 정말 사람이 많을때는 나의 토큰박스앞에 수십명이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릴때도 있다. 그럴때면 나의 마음도 조급 해져 신경이 예민해지고, 거스름돈 실수로 실갱이까지 일어나면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식은땀이 날때도 있다.


다시 두번째 담배를 물었다. 이번엔 토큰박스안에서.


‘저기요, 여기 토큰 한개만 주세요’

여기서 나의 이름은 저기요다. 가끔 선생님, 사장님도 있지만 대부분 저기요로 불린다. 어찌보면 공상과학에 나오는 로봇과 같다. 그냥 저기요 하면 토큰과 거스름돈을 저 작은 반원 사이로 내미는게 내 일의 전부다.



12시 20분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려는지 많은 사람들이 분주해 보인다. 나도 이 작은 선반앞에 내 도시락을 꺼냈다. 오늘도 김치 냄새가 진동한다. 얼마전 다녀가신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밥과 김치 그리고 마른 멸치 이게 내가 평소 먹는 점심이다. 어제도 그랬고, 일주일 전도 이 도시락과 동일하다.

얼마전 구매한 이 숟가락이 참 마음에 든다. 수저와 포크가 같이 있다. 동그란 수저 가운데 세개의 날이 서있다. 이걸로 김치를 집어 먹기도 편하고 참 누가 생각해낸건지 정말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여기 토큰 한개만 주세요’


오랫만에 들리는 선생님이란 호칭, 아크릴창 너머로 들어오는 비누냄새가 오늘따라 너무 좋게 느껴진다. 이곳 토큰박스에 가득차있던 김치냄새도 이내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여기 거스름돈이랑 토큰입니다.’


평소 원래 말을 하지 않고 건낸다. 특별한 사람으로 느껴질때 난 대답을 한다. 상대가 나의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또박또박 말을 건낸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의 말을 들을 모양이다. 고마웠다. 그뿐이다. 이내 그 비누냄새는 저멀리 사라졌

다. 곧 이곳은 다시 김치냄새로 진동한다.



1시 10분


“싱글…벙글…쑈!”

한시가 조금 넘었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가 시작된다. 이제 점심 시간도 끝났다.

‘오늘은 어떤 사연이 날 즐겁게 해줄지…’

나의 뇌가 생각을 멈출 수 있다. 그냥 내 귀만 쫑끗 세우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오후가 간다.



6시28분


퇴근을 하려는 직장인들과 보충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미친듯이 밀려온다. 애들은 정말 정신이 없다. 회수권을 사려는건지 아니면 자기들끼리 뭔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계속 낄낄대며 수다를 떤다.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도 참을 수 없는지 한마디씩 하곤한다.

그럴때가 나에겐 이 고요한 박스 안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밖은 분주하지만 그와 반대로 고요한 이곳.


바람이 들어온다. 밖 선반위에 노란 은행 나뭇잎이 날아왔다. 가을도 이제 끝나간다. 지난 며칠 계속 떨어지던 은행나뭇잎도 이제 더이상 떨어질 것이 없어보인다.

더이상 아침에 치울 나뭇잎도 없다. 곧 겨울이 오면 대신 눈을 쓸어야 할것이다.

또 하나의 담배를 물었다.



9시


이제 나도 퇴근할 시간이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어제, 일주일전, 아니 작년 이맘때도 오늘과 같은 하루였다. 그냥 하루 하루가 항상 같은것 같다. 나는 왜 정말 살아가는 걸까?

퇴근하다가 오늘도 아마 어제 들린 이모네 국밥집에 들러 반주와 함께 저녁을 할것이다. 지난 몇년간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가끔 이모님이 내가 좋아하는 소세지 부친개를 해주실때도 있다. 소세지는 왜그리도 맛있는건지…


‘철컥철컥’


토큰박스를 닫고서 오늘의 마지막 담배를 물었다. 바깥 공기를 쐬며 피는 담배는 정말 행복하다. 하루종일 베어있던 모든 냄새들이 다 사라지는것 같다. 그와중에 새로나온 이 담배는 정말 아직 적응이 안된다. 담배이름이 솔인것도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역시 난 거북선이 제일이다.


갑자기 식욕이 땡긴다. 이모님 오늘 반찬은 뭔지도 궁금하다.


‘철컥 끼리릭 끼리릭’



토근박스 안에만 있어서 누구도 볼 수 없지만 하루종일 차고 있던 왼쪽 의수를 풀러 가방에 넣었다. 의수에 끼고 있던 장갑도 벗겨 주었다. 정말 이럴때 밤공기와 함께 해방되는 기분을 느낀다.

설레는 마음이 생긴다. 설레는 마음이 가득차간다. 그마음을 안고 어둑한 골목으로 서둘러 내달린다.


내일은 조금 다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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