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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Jan 03. 2021

"개념 의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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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것들이 정말 많았던 책. 시기적절하게 만난 책이었고 의미 깊은 내용이 많았다. 특히 마지막에 강조된 "융통성"과 "원칙"과의 발란스 그리고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료는 "문화"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완벽한 보건의료 정책이란 없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 최선을 추구해야 하고 얼렁뚱땅 넘기기에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의식에선 권리에 가까워진 보건의료를 정책으로 펼쳐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인상 깊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몇 가지만 추리고 내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본인 부담률이 높은것 자체도 문제지만, 우리 건강보험이 중증질환보다 경증질환에 대한 보장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자주 일어나고 가벼운 일에 치중을 해야 될지 드물게 일어나지만 무거운 일에 치중을 해야 할지. 이건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의 성향 성격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보건의료라면? 막상 건강하고 아픈 일이 잘 없는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 치중이 되던 불만이 많을 테고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가볍고 자주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쓰는 일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느낄 테다. 


"의료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의료분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올바른 의료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기도 어렵다."


"조선 사람들은 병이 낫지 않으면 약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르는 것 같았다."


책 본문 중에 한국 사람들은 약을 많이 주는걸 좋은 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부분 그리고 조선 사람들은 병이 낫지 않으면 약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이런 문화적 특성들이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상반되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기도. 암 같은 생명이 오가는 질병에서 약효과 없을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을 내는 게 공정하지 못하기에 Value-based insurance 즉 약효과에 따라서 본인부담금을 조절하는 정책이 미국에서 고려되기도 한다는 아티클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처럼 신약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가격으로 주는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천문학적인 약값을 내기가 부담되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조선시대의 이야기. 


"단순히 응급실이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진짜 응급환자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정말 급박한 상황에서 찾는 경우 그리고 그 시간에 연 병원이 없기에 일반 감기 증상으로 찾는 환자들로 정말 복잡한 곳. 그렇다고 무조건 환자를 받자고도 환자를 가려가면서도 받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질이 물론 중요한 보건의료이지만 물리적 한계는 어쩔 수 없기에. 


"즉, 일반 재화와 같은 방식의으로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책정할 경우,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의료서비스를 필요 이상으로 주고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과잉진료를 제한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가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은 과연 존재할까? 의사들의 양심에만 맡기더라도 코너 케이스들이 있기 마련일 테고. 너무 타이트하게 진료를 억제해도 필요한데 서비스를 못 받는 코너 케이스들이 생길 테니, 참 어려운 문제.


"옛날에는 우리 국민이 모두 못살았으니 지금은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가 생기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잘사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복지를 두 문장으로 정리한 문구. 잘 사는 사람들의 세금을 걷어 못 사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많은 복지가 세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잘 사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줄이는 부분이 있는 것도 부분적 사실. 어떻게 해야지 효율적으로 세원을 쓸 수 있을까?


"이와 같이 과거에는 의료의 영역이 아니였던 부분들이 점점더 의료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의료화라고 한다."


인간들이 장수하기 시작하면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질병들이 의료의 영역으로 오는 건 불가피한 일이나 미용과 편의를 위한 수많은 의료서비스들이 의료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허락해야 할까? 많은 노력과 수고를 들여 의사가 된 사람들이 먹고살자고 추가하는 서비스들은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을까? 


"신약을 개발한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고 홍보하는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를 지칭하는 질평부풀리기라는 용어도 있다."


이 또한 자유경제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의료화는 적절하고 어떤 의료화는 부적절하고 이런 기준들을 확실하게 세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새로운 약에 대한 개념은 많이 들어봤어도 새로운 질병에 대한 개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회사로써는 수익을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제약회사들 보건의료와 맞닿아있는 회사들이나 영리 병원에서 홍보를 하는 건 규제의 범위 안 일까?


"그 모든 불만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공감과 소통의 부재'일 것이다"


의사들도 사람이기에 개개인 능력이 다를 수 있을 테다. 공감과 소통도 알다시피 사람들 간의 편차가 있을 테고 그러면 이것을 시스템적으로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의대 교육에서 한 과목을 추가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때가 있는 반면, 원칙을 지켜야 할때도 있기 때문이다."


Gray area. 세상의 많은 결정들이 그렇듯이 흑과 백으로 단순하기만 하진 않다. 융통성과 원칙의 사이에서 발란스를 찾는 방법. 사회적으로 시스템적으로 터무니없는 융통성과 너무나 완고한 원칙 사이에 그 어딘가에 보건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법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세계에서는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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