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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Mar 17. 2020

와이프의 암 진단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1)

2017년 4월 7일 난 수업을 앞두고 사무실에서 숙제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와이프가 지난주 병원에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병원을 가는 날. 너무 무심하게 집을 나왔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와이프의 전화. 


울고 있었다. 속으론 정말 진부하게도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와이프를 진정시켜야겠다 생각되었고 어디인지 궁금했다. 옆자리에 있던 사무실의 친구에게 말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표정이나 내 리액션이 좀 과했기에.


'암'이라는 단어가 쓰기 싫었었던 것 같다. "와이프 가슴에 뭐가 만져져서 검사를 했는데 좀 이상 하대" 사실 돌이켜보면 와이프는 '암'이라는 단어를 나에게 썼었다. 확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암'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수업을 못 간다고 교수에게 이메일을 간단히 썼다. 


그때 다시 걸려온 와이프의 전화. 아들을 픽업해서 만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픽업해서 우리가 자주 가던 공원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정신없이 어린이집으로 가서 아들을 픽업하였고 그 당시 3살이었던 아이에게 따로 얘기를 하진 않았다. "오늘은 아빠가 왔어" 였던가. 


유모차를 열심히 끌고 공원으로 가던 길 저 멀리 와이프가 보였다. 



우리는 잔디밭에 누워 눈물을 훔쳤다. 아들에게 슬픈 모습은 일단 숨기고 싶었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2차 의견을 받아야겠다며 난 다른 병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정신을 좀 차려보니 이번 주말에 아들의 생일파티 (약 50명 정도 이미 초대)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여행(호텔/비행기)이 계획되어있었다. 


뭐가 어찌 됐건 일단 '여행 간다' vs. '안 간다'와 '생일파티 그대로 한다' vs. '안 한다'의 고민이 시작되었고 두 번째 고민은 그나마 쉽게 '그대로 한다'로 결정하였는데 여행은 결국 포기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갈 걸 그랬나 보다. 


어쨌든 새로운 도시에서 처음 맞는 아들 생일이기에 와이프는 욕심이 있었다. 우리가 빌린 공간을 다 공사장 콘셉트로 꾸미는 것. 초대된 아이들에겐 다 공사현장 조끼와 안전모를 씌우는 것. 케이크도 역시나 공사 콘셉트. 


그래도 시간은 간다.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양가 부모님께 힘들게 사실을 말씀드렸고 네 분 다 바로 큰 병원에서 치료받길 원하셨다. 일단 이사를 하기엔 촉박한 시간이니 바로 비행기 표를 예약했고 우린 아들의 생일파티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날 약 50명 정도의 사람들 중 1-2명이 와이프의 진단 소식을 알고 나머지는 몰랐기에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아들의 즐거움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정신없이 생일파티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아들을 재우고 와이프와 둘만 한 공간에 있게 됨과 동시에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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