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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Jun 02. 2020

나의 한식과 아내의 한식

나랑 아내를 보았을 때 누가 봐도 나는 "한식파"이고 아내는 "양식파"이다. 그럼 누가 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그건 또 누가 봐도 아내가 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흠 "한식"이 좀 더 "건강"하지 않나?


건강한 식습관, 그리고 한식, 또 양식의 정의는 정말 개인차가 크다. 


내가 생각하는 한식은 "숯불구이" "매운 음식" "밥" 등이고 양식은 "햄버거" "피자" "밀가루 음식" 정도이다. 반대로 한식은 그때그때 달랐으나 아내가 생각하는 양식에 대한 정의는 "샐러드" "간단한 식사" "빵" 정도였던 것 같다. 


비록 나의 한식에 대한 정의는 저랬지만 무의식적으로 한식이 양식보다 건강하다고 믿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버릇처럼 한 말들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한식을 먹어야지 건강하다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한식이 양식보다 건강하게 생각된다. 


아내가 생각하는 한식 (출처: 40 Love 블로그) vs. 내가 생각하는 한식
아내가 생각하는 양식 vs. 내가 생각하는 양식



우리는 2014년에 결혼하였다. 


상견례 식당은 주로 한정식당에서 하는 게 분위기 같았다. 너무 비싸진 않은 곳을 가고 싶었지만 한정식집은 주로 비쌌다. 방이 있어서인가? 아님 건강한 식사여서 그럴까? 손이 많이 가서 그럴까? 어쨌든 우린 "다담"이라는 식당에서 상견례를 가졌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반찬 하며 처음에 나온 죽부터 마지막의 "고기" 메뉴까지 뭔가 건강해지는 느낌인데 고기까지 먹을 수 있었다. 

데코까지 멋진 다담의 한정식상

갑작스레 미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내가 먼저 미국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다담"을 찾았다. 그리고 미국 가서 우리가 살 집을 구하고 가구를 마련하고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전화. 임신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예측하기론 "다담"을 간 날. 이게 바로 한식의 힘인가. 우린 아이의 태명을 "다담"이라고 지었다. 


미국에 살면서도 우리의 한식사랑과 양식사랑은 비교적 각자가 리드를 해나갔다. 나는 주로 밥을 찾았고 아내는 주로 빵을 찾았다. 그런데 임신 4개월 차부터였던가? 아내가 한식을 가끔씩 엄청나게 찾기 시작하였다. 설마 이제 아내도 한식 파인가? 그런 생각이 들려던 찰나에 아내는 일주일에 4번 피자를 먹었다. 역시 한번 양식 파는 영원한 양식파?

아내의 피자 늦바람

2017년 4월, 아내의 가슴에서 혹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청천벽력 같은 유방암 진단. 신이시여. 무사히 항암치료와 수술을 마치고 아내는 엄청나게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자 매일같이 운동하고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계속되었고 그해 12월 폐 전이 진단을 받게 되고 무기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이전에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병이 걸린 건 아니겠지만 앞으로의 식습관을 좀 더 개선해보자고 하였다. 모든 야채, 고기, 우유 종류는 유기농으로 바꾸었고, 아내에게 양식보다는 한식을 "나도 모르게" 계속 권장하였다. 아내가 피자가 먹고 싶다 그러면 "에이 그래도 피자는 좀 그렇다 그렇지?" 그러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예를 들어 항암치료 부작용이 좀 덜한 날) 특별한 기념일이 오면 피자를 잘하거나 파스타를 잘하는 이탈리안 식당을 찾기도 하였다. 마치 양식이 건강에 안 좋지만 특별한 날은 허락해도 되는 것처럼. 

여러 암 관련 책을 종합해 만든 항암치료에 좋은 식단표


나는 한식 중에 숯불구이, 매운 음식 등을 좋아하였는데 왜 자꾸 아내에게 "한식"을 강요했을까? 아내는 자기가 힘든 치료를 하고 있는데 음식까지 당기는걸 못 먹는 게 정말 힘들다고 하였다. 뒤돌아보니 내가 그렇게 강요했던 게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물론 암환자의 보호자로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방관하는 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그토록 잘 아는 나인데.. 문득 궁금해진다. "한식"은 "건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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