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못 먹은 햄버거
암 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들
햄버거는 내 최애 음식 중 하나였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항암 치료를 하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독한 항암제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고, 고에너지가 응축된 방사선은 구강 세포들을 손상시켜 음식물이 닿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먹방 유튜브를 켜 놓은 채 다른 사람의 먹방을 지켜보는 것뿐. 치료 후 먹어야 할 푸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치료를 마치고 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웠을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아니었다. 새로운 불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다른 암 환자들처럼 말이다.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사실 내 상황은 아주 안 좋았다. 비인두암 4기의 5년 생존율은 40%, 거기에 40세 이하의 남자는 생존 가능성이 더욱 낮다고 했다. 그러니 암에 조금이라도 안 좋다면 피해야 했다. 먹방 유튜브만큼이나 암 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 행동 등에 대한 유튜브도 많이 찾아봤다. 수십, 수백의 영상을 찾아봤지만 더 혼란스러웠다.
‘아니 대체 뭘 먹으란 거야?’
일반 상식처럼 술, 붉은 육류, 불에 탄 음식, 인스턴트식품, 과당 음료, 패스트푸드, 밀가루 음식 같은 것들은 이해한다. 하지만 계란, 땅콩, 옥수수, 우유, 치즈 같은 평범한 음식들도 먹지 말라니 기가 찼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암을 유발하는 음식은 대충 아래와 같다.
기름에 튀긴 음식
소금에 절인 음식
육가공 제품(햄, 소시지 등등인데 암에 걸리기 전 난 거의 1일 1 소시지의 삶을 살았다. ㅠㅠ)
과자류
청량음료
편의점 식품
통조림
설탕에 절인 과일류
냉동 간식
숯불 구이
대충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들이다. 유튜브를 보면 볼수록 더 이상 유튜브를 보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술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2. 숯불 구이는 피하고 고기를 먹을 경우 구운 것보다는 삶은 고기를 먹는다.
3. 우엉, 연근, 시금치,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조금씩이라도 먹는다.
4. 액상 과당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
5. 통조림에 든 음식과 햄 같은 가공식품도 먹지 않는다. (햄버거나 샌드위치도 여기 포함시키기로 했다. 햄버거에 햄이 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햄버거는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불에 구운 고기 등등 안 좋은 요소가 많아 보여 안 먹기로 했다.)
그렇게 2년을 버텨냈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암 재발의 전조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들 것이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위의 5가지를 지키며 지내고 있을까?
답은 ‘거의 그렇다’이다.
1. 술
암에 걸리고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술을 끊었다는 것이다. 다수의 암 환자들이 금주에 실패한다. ‘한 잔은 괜찮죠?’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술을 마신다. 물론 폭음을 하는 분은 드물다.
하지만 난 술을 너무 좋아했고, 성향상 한 잔만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한 잔만 마시라 날 유혹했지만 한 잔 마실 바엔 안 마시겠다는 것이 내 의견이었다. 술은 취하는 맛에 마시는 거다. 취하지 않게 마실 거라면 안 마시는 게 낫다.
물론 금주의 장점은 어마어마했다. 우선 체력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부익부 빈익빈은 체력에도 적용된다. 금주를 통해 축적된 체력으로 운동을 하고 그 운동을 통해 체력이 길러진다.
또한 밤 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을 수도, 공부를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흘려버리는 밤의 시간을 난 온전히 나를 성장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2. 숯불 구이, 붉은색 육류, 튀긴 고기 등등
가끔씩 먹는다. 저녁 식탁에 나오면 먹고 나오지 않으면 안 먹었다. 어차피 단백질은 꼭 필요한 영양분이고, 고기 몇 점 집어 먹었다고 몸속의 암이 급속도로 커지지는 않을 테니 가끔씩 먹었다. 하지만 숯불 구이는 피했다. 고기가 불에 직접 구워질 때 나오는 발암 물질이 특히 나쁘다 하니 그에 대한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친한 형과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식당이 숯불구이 고기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의 일상은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과 비슷해져가고 있었다.
3. 다양한 채소 먹기
암에 걸린 후 식탁에는 다양한 채소가 올라왔다. 의무감으로 젓가락을 옮기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물론 채소 섭취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건강을 위해 꾸준히 먹고 있다.
4. 액상 과당 음료
회식에 가면 술을 마실 거냐 사람들이 묻는다. 고개를 저으면 음료수라도 시켜드리냐 묻는데 그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전 물이 좋아요.’
그런데 최근 통닭을 먹다 나도 모르게 콜라에 손이 갔고, 그걸 지켜본 직원 중 한 명이 ‘어?’하고 놀랐다. 절대 내 돈 주고 음료수를 사 먹지는 않지만 통닭이나 피자를 먹을 때 한 잔씩 먹는 경우도 있다.
5. 가공식품 등
사실 먹을 일이 없다. 퇴근 시간이 되면 바로 집으로 향하니 사람들과 외식을 할 일도 없고 집에는 몸에 좋은 음식들 뿐이었다. 하지만 가공식품을 피해야겠다는 집중력은 점점 약해졌다. 발병 초기만 해도 음식에 햄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매의 눈으로 살폈으나, 어느 순간 입 속에서 씹히는 햄과 소시지를 발견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햄버거에 대한 내적 금지도 서서히 약해지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나 햄버거 먹고 싶어.”
그 뒤의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호텔 1층 식당에는 햄버거 브랜드가 있었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렇다. 이게 암 환자들의 현실이다. 아주 평범한 일상도 암 환자들에게는 걱정과 불안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나하나 금지 사항들을 지워나가며 예전의 일상을 향한다.
그리고 햄버거는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