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걸린 아재의 육아 일기(5)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평온하지만 다소 지루하기도 한 삶이기에 간헐적 여행은 삶의 필수요소이다. 특히 7년 전 새로이 나의 가족이 된 앵두와 함께라면 말이다. 내 마음은 몇 주전부터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이곳을 노닐고 있었다. 그리고 달력이 d-day를 가리킨 즉시 여행은 내게 현실이 되었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에 하나는 앵두에게 가장 신선하면서 재밌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이다. 앵두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뛰쳐나왔다. 세상과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신 싯다르타 선생님조차도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 했기에 앞으로 앵두가 겪을 고난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앵두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앵두가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것이 아빠로서의 작은, 어쩌면 너무 큰 욕심이다. 특히 또래 아이들이 하는 것들은 대부분 경험해주고자 한다. 여기에는 어릴 적 패스트푸드 점에서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다른 친구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패스트푸드점에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생이었던 나에게는 햄버거 주문은 너무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일들은 그 후로도 많이 있었다.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을 갔을 때 어떤 메뉴를 시켜야 하는지도 몰랐고, 주문을 하는데 알 수 없는 말들이 많이 오고 가 많이 위축되었다. 그런 곳에 가면 난 의례 입을 닫게 되었고, 그냥 남들이 시키는 메뉴를 따라 시키고 적당히 분위기 파악하며 나의 무지를 감추는데 급급했다.
뭐, 사람 성격에 따라 모르는 거를 드러내고 대놓고 하나하나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그런 외향형 주의자들을 아주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내 성격은 결코 그런 성격이 못되었고, 우리 딸에게는 나이에 맞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는데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어린이용 티브이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기차는 앵두에게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은 차를 가져가지 않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계획했다.(물론 당일치기다) 앵두는 기차역으로 가는 내내 기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는다. 기차의 생김새를 설명할만한 충분한 묘사 실력을 갖추지 못한 나는 “조금 있으면 기차 들어올 거야. 그러니까 노란 선 뒤에서 기차 오는 거 자세히 봐~~”라고 말하며 답을 회피했다.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 철길을 가득 채운 자갈이 눈에 들어왔는지 저 돌덩이는 왜 저기 있냐고 또 묻는다. 역시 답을 모르는 나는 “그러게”라고 응수하며 잽싸게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본다. 기사를 읽고 이해한 후 설명을 하려는 찰나 도착한 기차에 이미 다리를 올린 앵두는 자갈의 진실은 내팽개쳐버린 채 열차 안으로 들어간다.
파란색의 보들보들한 천으로 덮인 의자에 앉더니 방방 거리며 신나 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는가 싶더니 내 좌석 위쪽의 물건 받침대를 보고는 아무 물건이나 위에 올려놓으라고 제스처를 취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큰소리를 내지 않고 복화술로 내게 지시를 한다.
그렇게 대구역에 도착한 후 이번에는 지하철도 타보기로 했다. 어김없이 앵두는 지하철의 생김새는 물론 기차와 지하철의 차이를 묻는다. ‘지하철은 땅 밑으로 움직이는 거라 밖이 안 보여라’는 매우 초등학생스러운 답변을 하였으나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앵두에게는 꽤 적절한 설명이었던 듯싶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단을 내려가 출입 통과대에 도착한다.
카드를 대니 작은 플라스틱 판자가 회전하며 길을 열어준다. 신기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더니 다시 계단을 내려가 스크린 도어 주변을 서성인다. 그렇게 지하철 체험도 마친 후 패밀리 레스토랑과 서점을 둘러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점에서 앵두는 책 2권과 줄넘기를 구매했다. 예전부터 줄넘기 줄넘기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손에 넣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나중에 줄넘기 가격이 만 원인 것을 확인한 후 깜짝 놀랐지만 요즘에는 귀여운 만화 캐릭터 하나 그려 넣으면 물건 값이 두 배로 뛰는 것은 예삿일이니 별 수 있겠는가 싶다.
앵두는 집에 와서도 계속 줄넘기를 하게 해달라고 한다. 결국 창고에 집어넣었던 매트리스를 꺼내 바닥에 깔아 준 뒤 줄넘기 길이를 조절해 주고 줄넘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아직 몸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아니면 점프해야 하는 타이밍을 잘 잡지 못했는지 2개밖에 하지 못한다면 툴툴댄다.
어느덧 밤이 되어 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하는데 앵두가 내게 와서 유튜브를 보게 해달라고 한다. 오늘은 재밌는 거 많이 했으니 유튜브 보지 말고 그냥 자라고 했더니 앵두가 내게 말한다.
“기차랑 지하철 타는 거 재미없었단 말이야. 별거 없었잖아~~”
아이쿠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야심 차게 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비용을 썼지만 앵두에게는 유튜브만큼 재밌는 여행은 아니었나 보다.
아직은 유튜브가 좋기만 한 앵두. 그렇다고 유튜브만 보게 둘 수도 없는 일이고. 참 어렵다 어려워. 부모가 되는 길은 말이다. 그래도 앵두가 세상에 나온 날부터 나도 ‘아빠’가 되었으니 계속 고민해야겠다.
2박 3일의 여정이 7살 앵두에게는 힘들어서였을까? 다음날도 계속 자기만 한다. 그 덕에 나는 짬을 내어 이렇게 소소한 글을 쓴다. 다음 여행은 앵두가 정말 좋아하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