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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Aug 23. 2023

7세 소녀의 MBTI

 요즘 부쩍 유튜브 보는 시간이 늘어난 내 딸 앵두가 어느 날 내게 다가와 묻는다.

 "아빠, 난 티야 아이야? 나 에이야?"

 혈액형의 의미는 알고 있기에 앵두가 묻는 게 혈액형이 아니라 MBTI라는 생각이 들었다. 앵두의 MBTI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앵두를 옆에 앉힌 뒤 말했다.

 "앵두가 티인지 아이인지 에이인지 한 번 확인해 볼까?"


  구글에서 MBTI로 검색을 한 후 무료 검사를 시작했다. 질문을 그대로 읽어줬더니 앵두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7세 아이의 눈에 맞춰 최대한 쉽게 풀어서 물었더니 하나하나 착실히 대답한다. 쉽게 풀어 설명하는 데 치우치다 보니 원래의 문제와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아이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추상적 단어가 많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내성적인 아이들 중에도 내성적인 편에 속하는 것 같은데, 본인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본인이 속상했을 때의 경험도 털어놓고, 엄마 아빠에게 섭섭했을 때의 감정도 털어놓았다. 그 외에도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언제 놀림을 받았는지도 내게 술술 풀어놓았다.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앵두의 일상과 기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매일 책도 같이 읽고 재밌는 놀이도 하고, 주말에는 멀리 여행도 가서 앵두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아기였던 앵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조금씩 성장하며 자아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검사를 마친 뒤에는 앵두에 대한 미안함은 물론 성장 과정에서 받는 상처에 대해 아빠로서 잘 살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끼리는 큰 감정의 반목 없이 잘 지내면 그거로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가끔씩 가족 모두가 심리 검사나 상담을 받는 것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앵두가 그토록 궁금했던 티인지 아이인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ESFJ라고 한다. 잘 믿기지는 않지만 우선은 앵두에게 결과를 알려줬다. 알파벳이 네 개나 되니 외우기가 힘든 모양이다. 검사 결과가 뭘 의미하는지도 잘 이해 못 한다. 그냥 유튜브에 나온 것처럼 철자를 알고 싶었을 뿐인 듯하다.


 앵두의 고민과 속상했던 감정을 듣고 나니 내가 느끼는 것만큼 앵두가 어린 건 아닌 것 같다. 갓난아기가 어느덧 7살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하루하루 성장하며 어느덧 훌쩍 소녀가 되고 성인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그 성장 과정에 있어 나는 앵두에게 가장 중요한 몇 사람 중에 한 명이겠지? MBTI가 육아의 기쁨과 책임감을 더욱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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