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무침

by 수정

더덕무침은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엄마의 반찬이다.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더덕을 한입 깨물면 입안은 더덕향이 가득이다. 내가 더덕무침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엄마는 내가 친정에 갈 때마다 더덕무침을 한 그릇 가득 해 놓으신다. 가끔 엄마의 그 더덕무침이 먹고 싶어 반찬가게에서 비슷한 것을 사다가 먹은 적도 있는데 아무리 맛있는 반찬집도 엄마의 더덕과는 다르다.

한 번은 엄마의 레시피를 배워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전화로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더덕 가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엄마는 그동안 내가 갈 때마다 이렇게나 비싼 더덕을 나 먹이려고 샀었구나...) 그리고 다음으로 할 일은 더덕 껍질 벗기기. 요리하기 쉽게 껍질이 벗겨진 더덕을 팔기도 하는데 가격도 훨씬 비싸고 우리 동네 마트에는 없었다. 속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껍질을 벗기는 것도 쉽지 않고 껍질에서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와 손이며 칼에 다 달라붙어서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더덕에 뜨거운 물을 한 번 부으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는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아 그나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껍질을 벗겨 낸 더덕은 먹기 좋게 부드러워지도록 때려야 하는데 너무 세게 하면 더덕이 으깨져 식감이 별로고 너무 살살하면 딱딱해서 양념이 잘 베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 중간의 힘으로 두드리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어떤 건 완전히 으스러지고 어떤 건 큰 덩어리채로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알려준 양념들을 섞어 더덕과 잘 버무려 완성했다. 한 입 맛을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음... 분명히 엄마가 알려준 대로 똑같이 했는데 왜 이렇게 다르지?'였다.
그 뒤로 나는 다시 더덕무침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냥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놓은 더덕무침을 많이, 맛있게 먹고 오기로 했다.


더덕무침 말고도 내 기억에, 내 미각에 남아있는 엄마의 반찬들이 몇 가지 있는데 또 다른 하나는 애호박 볶음이다. 애호박을 조금 굵게 채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소금, 고춧가루, 계란을 넣고 만드는 것인데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다. 이것은 나도 종종 해 먹는데 역시나 맛은 엄마의 것에 못 미친다.
미역국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끓여보았지만 결국에는 엄마가 알려주신 방법대로만 끓이게 된다. 엄마는 미역과 고기를 볶지 않고 불린 미역에 핏물을 뺀 소고기를 넣고, 물 조금과 간 마늘, 국간장만 넣고 센 불에 끓이다가 팔팔 끓으면 물을 더 넣고 약한 불에 오래 끓인다. 그러면 쉽고 간단하지만 깔끔하고 슴슴한 맛의 미역국이 완성된다.

결혼하고 나서야 끼니마다 국이랑 반찬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부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까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요리책도 몇 권 샀었다. 천 원으로 만드는 집반찬, 누구나 만드는 쉬운 집밥 요리, 뭐 그런 것들이었다. 두고두고 기본으로 먹을 말 그대로 밑반찬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책으로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질 때 나는 수시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진미채는 어떻게 해서 먹어?", "엄마, 콩나물 무쳤는데 맛이 없어. 뭐 넣어야 하지?" 그럼 엄마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며 엄마의 비법을 알려주셨다. 그러면 나는 그걸 종이에 받아 적었다가 컴퓨터로 편집하고 출력해서 미니북처럼 만들어 두었다. 그 미니북은 한동안 우리 집 부엌 찬장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레시피들이 있으니 못 만들 음식도 없고, 나도 주부 경력이 꽤 쌓이다 보니 대충 양념 넣고 버무리면 우리 식구들 먹을만한 것들은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엄마네 집밥이 최고다. 친정에 갈 때마다 나는 엄마의 반찬에 이거 맛있다, 저것도 맛있네 폭풍 칭찬을 날리며 삼시세끼 밥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몇 년 전에야 엄마의 반찬에는 MSG 조미료가 들어간다는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뭐 어떤가 맛만 있으면 되지. 나이가 드신 엄마의 반찬들은 예전에 비해 간이 조금 세지긴 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최고의 요리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엄마의 음식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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