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즐거움

by 수정

‘덕질’이라는 말의 어감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아 대체할 만한 다른 말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연예인을 좋아하고 시간과 마음을 들여 그를 응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만한 말이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아무튼 음악을 듣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호감이 가는 연예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 인생의 유일무이한 연예인은 오직 ‘김동률’ 뿐이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1993년 대학가요제를 통해서였고, 그 이후로 그의 음반을 사 모으고, 그의 음악과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속으로나마 열렬이 좋아해 온 나만의 이 취미생활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내 취미생활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전람회’로 활동하던 시절, 나는 중학생이었고,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아끼고 모아 그의 테이프를 샀다. 엄마가 영어 공부하라고 사준 워크맨에 영어 테이프가 아닌 전람회 테이프를 넣어 무한 반복하며 들었다.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테이프가 늘어져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전람회 3집부터는 CD로 구매해서 CD플레이어로 듣다가, MP3의 시대로 넘어오면서는 음원을 구입했다. 요즘에는 소장용으로 CD를 구매하고, 음악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듣는다. 그렇게 훌쩍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수많은 연예인들이 잊혀지거나 사라졌지만, 다행히도 나의 률님은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음원을 발표하고 몇 년에 한번이지만 콘서트도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와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왠지 그를 ‘오빠’라고 부르기는 어색하다.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그만의 아우라와 예술가로서의 기품 때문일까. 팬심을 담아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해 본다. 그래서 팬들은 그를 ‘률옹’이나 ‘률님’이라 부르곤 한다. 나 또한 ‘률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그는 “이적은 왜 ‘군’이고 나는 왜 ‘옹’이냐”며 팬들에게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워낙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통에 유니콘처럼 상상 속 신비로운 존재처럼 느껴지다 보니, 아무래도 오빠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내향인에게 덕질은 어울리지 않는 취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대상이 ‘김동률’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 역시 낯을 많이 가리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콘서트가 아니고서는 그를 보거나 만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언젠가 그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 팬과의 일화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다른 가수의 팬들은 소리를 지르며 쫓아다니는데 자신의 팬은 말도 못 하고 쭈뼛거리다가 조용히 캔커피를 전해주고 갔다는 사연이었다. 나를 포함해 그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팬들 또한 비슷할 것이다. 다들 조용히 그의 음악을 들으며, 언젠가 있을 콘서트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나의 률 사랑은 남편까지도 그의 팬으로 만들었는데 나와 수시로 률님의 노래를 듣다 보니 남편도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급기야 우리는 함께 콘서트도 가게 되었다. 지방에 사는 내가 서울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는 티켓값 외에도 왕복 교통비와 식사비 등이 추가로 들지만, 6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를 다녀온 이후로는 그동안 콘서트에 가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며 앞으로는 장소가 어디든 무조건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그의 콘서트를 기다리는 동안의 설레는 마음과, 티켓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 그리고 콘서트를 다녀와서 한동안 구름 위에 붕 떠있는 것만 같던 감정들이 나를 너무나 들뜨게 했고 기분 좋게 만들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활력소가 되었고,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왜 더 일찍부터 그의 콘서트를 가지 않았을까 아쉬울 따름이었다.


2년 전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콘서트 때는 남편과 나란히 초록색 후드티를 맞춰 입고 가기도 했었다. 률님이 좋아하는 색깔이 초록색이라 그의 팬들 역시 초록색을 좋아하고 ‘률그린’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온갖 초록색 물건들을 모으기도 한다. 나도 원래부터 초록색을 좋아하긴 했지만 언제부턴가 나의 최애 색깔 역시 초록색이 되었다.


작년에는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천안의 ‘오래된 노래’라는 카페도 다녀왔다. 률님의 오랜 팬이 운영하는 카페로, 모든 것이 률님으로 꾸며져 있는 공간이다. 카페 이름부터가 그의 노래 제목 중 하나이니 정말로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곳이었다. 초록색 어닝과 률님의 케리커쳐가 새겨진 간판이 반겨주는 그곳. 하루 종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LP와 CD, 테이프들과 초록초록 소품들, 사진과 찻잔까지 모든 게 률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거의 성지순례를 하는 것과 같이 여겨진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깝다면 매일 가서 앉아있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차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라 작년에 큰 맘을 먹고 다녀왔다. 그곳에서 률님의 노래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동안 얼마나 울컥했는지...

남들이 보면 주책바가지라고 놀릴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팬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아줌마이면서 아직까지도 그가 좋으냐고, 왜 그렇게 그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으니까 좋은 거 아닌가요? 일단 그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그의 목소리뿐 아니라 풍부한 악기들의 선율과 가사도 음미하면서 말이죠! 그럼 누구라도 그의 팬이 되고야 말 거예요.”


그의 노래 가사처럼 그의 음악은 나를 살아가게 해 줬고,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해 주었으며, 눈물로 얼룩진 맘을 다독여 주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고 완벽해지는 그의 음악을 나는 언제까지나 애정하며 소중히 들을 것이다. 오래도록 그의 팬으로 남아 덕질의 즐거움을 누리며 이 행복한 취미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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