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취미생활에는 돈이 든다. 무엇을 하든 처음 배울 때, 장비를 구입할 때, 또는 꾸준히 취미를 유지하기 위해 많든 적든 지출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돈이 들지 않는 취미가 하나 있으니, 바로 산책이다.
국어사전에 산책의 뜻을 찾아보니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나와있다. 말 그대로 걷는 것,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요즘은 동네마다 크고 작은 공원이나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다.
나는 대부분의 취미를 혼자 즐기는 편이지만, 산책만큼은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 바로 남편이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둘이 함께 걷는 것은 훨씬 더 좋다. 내향적이고 평소 말수가 적은 나도 남편과 걸을 때면 수다쟁이가 된다.
남편은 회사일로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아 집안의 자잘한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나 또한 남편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 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보내는 동안 공유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산책길에서 하나씩 풀어놓는다.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의미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삶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우리가 가장 자주 걷는 길은 강을 따라 조성된 숲 산책길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길 양옆을 감싸고 있어 공기도 맑고 풍경도 아름답다. 자전거 도로와 맨발 걷기 길도 함께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고, 계절마다 피는 꽃과 변해가는 나무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 언제나 걷기 좋은 곳이다. 내 핸드폰 사진첩에는 이 산책길의 사계절 풍경이 가득할 정도로, 우리는 이 길을 무척 좋아한다.
예전에는 걷기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볍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도 많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활기차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걷다 보면 나도 덩달아 좋은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호수 공원을 걷거나, 동네 골목 사이를 산책할 때도 많다. 이 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손바닥 보듯 훤하다. 골목골목을 걸으며 동네를 구경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인데, 공터에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고, 새로운 가게가 오픈했다가 또 문을 닫고 하는 것들을 보면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걷다가 좋아보이는 식당이 새로 문을 연 것을 발견하면 다음에 꼭 와보자며 기억해 두고, 자주 가던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을 보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장사가 잘 되어 확장 이전하는 가게를 보면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동네 상권과 자영업자들을 걱정하고 응원하는 것을 저분들은 아실지 모르겠다. 자주 동네를 둘러보며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애국심’, ‘애사심’처럼 동네를 사랑하는 ‘애동심’이 생겨난 듯하다.
산책길에서 간혹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도 저렇게 다정하게 나이 들면 좋겠다고, 둘 중 누구 하나 먼저 떠나지 않고, 비슷하게 살다 비슷한 시기에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리는 그렇게 사시사철 걷는다.
동네 여기저기에서 발자국을 남기며 산책하는 우리의 취미생활은 다리에 큰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쭉 지속될 것 같다. 혹시나 동네 어딘가에서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는 키 큰 여자와 그보다 조금 작은 남자를 본다면, 그게 바로 우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 취미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의 일상이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