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생활은 재미있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는데, 영어는 아무래도 공부에 가깝다 보니 어렵고 힘들고, 재미도 없다. 영어를 취미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를 취미로 한다.
그래서 잘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는 한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영어가 싫었다.
뭔가 ‘정답’이 없는 것 같아서. 나름의 규칙이 있다지만, 규칙만큼 많은 예외도 모조리 외워야 해서. 외워도 외워도 며칠 지나면 홀랑 다 까먹어 버려서. 한국어로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영어로 말하는 것은 몇 배 더 부끄럽고 틀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서 영어를 못했다.
못하니까 재미가 없고 점점 더 싫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영어와 완전히 이별했다.
남들은 좋은 직장을 위해 토익이나 토플 점수를 올리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외국어 점수가 필요 없는 회사만 골라 지원했다. 어학연수나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앞으로 영어는 평생 없을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다시 영어를 가까이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언젠가 엄마와 동생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다가 호텔 어딘가에서 혼자 길을 잃은 나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 원트 고우 투 룸”
하… 나는 단지 그 장소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직원은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방까지 안내해 줬지만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남들도 다 하는 걸 왜 나는 못 하지?'
'제대로 시도도 안 해보고 왜 미리 포기해 버렸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즈음, 지역 맘카페에서 영어 스터디 모집 글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올린 글에 나는 홀린 듯 댓글을 달았다.
“저 진짜 초보인데… 참석해도 될까요?”
리더는 잘 못해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성실한 사람을 찾는다고.
내가 또 한 성실하지.
나는 용기를 내어 그 모임에 참여했다.
첫날은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집에 돌아와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준비해 오라는 말에 밤새 끙끙대며 써간 글을 외우지도 못하고 힐끗힐끗 보면서 읽고 왔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스터디 멤버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엄마들이었는데, 나만 빼고 다들 영어를 잘했다.
나는 정말 초보 중의 초보였지만 성실하면 된다는 리더의 말을 희망 삼아 열심히 했다. 지각, 결석 없이 참여하려 노력했고, 외워야 할 것과 답해야 할 것들을 착실하게 준비해 갔다.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어떤 날은 핑계를 대고 빠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알 수 없는 의무감에 꾸역꾸역 참석했다.
어떤 날은 내가 아는 내용이 나와서 뿌듯했고, 또 어떤 날은 ‘아까 그렇게 말할걸…’ 하며 후회하기도 했다. 이제 조금 뭔가 아는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도로 하나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해서 속상해하고 있을 때,
리더의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노력의 대가는 분명히 있어요. 지금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다 쌓이는 거예요.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잘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당장의 결과를 바라지 말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해보자. 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하나의 취미로 삼아보자.
시간이 흐르며 멤버들이 바뀌고, 모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고, 코로나로 한동안 쉬기도 했지만, 스터디를 통해 만난 이들과 소중한 인연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다.
영어 공부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영어 스터디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아쉽게도 여전히 영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지금은 외국인이 말을 걸어도 쫄지 않는다.
맞든 틀리든 영어를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다 보니 영어가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여전히 하기 싫을 때도, 능숙하지 못한 내가 답답할 때도 있지만 취미처럼 즐기면서 해보자고 다짐한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도 더 나이를 먹은 뒤에 해외 곳곳을 여행하며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
Who kn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