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아침, 사당동으로 떠나자
햇살 좋은 아침, 아무 계획 없이 눈을 떴을 때. 날은 좋아 어디론가 나가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을 때. 그럴 때 가장 편한 운동화와 후드티 하나를 걸치고 지하철을 타보자. 사당역, 이수역, 남성역 어디든 좋다.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과 두 다리만 있다면.
가장 가까운 남성역을 출발점으로 삼아볼까.
1. 남성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선샤인 청과로 향한다. 하나씩 둘씩 차려지는 채소와 과일의 아름다운 빛깔에 취해본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먼저 계산하고 이따 찾으러 오겠다고 말씀드린다. 다정하고 성실한 선샤인 남매가 당신의 물건을 지켜줄 것이다. 채소와 과일의 이름표를 보며 누가 쓴 글씨인지 맞춰보는 것도 추천드린다.
2. 까치산으로 향한다. 1시간 이내 등산 코스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보자. 까치산을 내려갈 때, 사당솔밭도서관으로 경로 지정을 해두면 자연스럽게 산을 넘어갈 수 있다. [동네의 재발견]에서 본 까치산의 정경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당솔밭도서관은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필자가 자주 찾는 곳이다.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꺼내 여유 있게 읽다가 출출해지면 식사를 하러 가보자.
3. 차녕식당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의 특별함은 두툼한 연어에 있다. 어느 곳에서 먹어도 차녕식당보다 맛있는 연어 덮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대만 친구도 한국에서 연어는 차녕식당에서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연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깔끔한 돈가스 카레라이스와 냉우동도 추천한다. 맛있는 점심 식사는 당신의 하루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4. 점심도 먹었으니 좀 걸어볼까. 차녕식당에서 '자전거 공방, 륜'을 향해 걸어보자. 그 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시장 골목을 만나게 된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쉬시는 쉼터, 작은 가게들, 채소, 빵, 두부, 생선, 치킨, 튀김, 국수, 이불 등등 사당동이 사랑하는 시장길이다.
5. 서서히 걸어 한적한 길로 접어들면 '자전거 공방, 륜'이 보일 것이다. 자전거가 있다면 오랜만에 타이어와 브레이크, 기어 등 점검을 받아도 좋을 것이다. 자전거가 없다면 이곳에 들러 브런치 글을 보고 왔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린 후, 프레임 스틸을 구경해 보는 것도 추천드린다. 공방엔 판매용 자전거가 거의 없지만 사장님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자전거를 구경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사진 속 자전거 공방은 밤이지만 당신은 아마도 낮에 이곳을 들르게 되지 않을까.
5. 미안하다, 다시 또 책방이다. 이수역 방향으로 걸어보자. 이수역 지하, 알라딘 중고서점이 당신을 기다린다. 잠시 들러 오늘 하루를 기념하는 책 한 권을 구매해 볼까. 아니면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 구경도 좋다. 책 구경은 더 좋다.
6. 이제 간식을 먹을 시간이다. 오거리 할머니 떡볶이 가게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사실 오거리 할머니 떡볶이 가게는 간판이 없다. 간판도 없고 네이버 검색에 나오지도 않는다. 혹시라도 길에서 헤매게 되었다면 다시 한번 '자전거 공방, 륜'을 향해 걸어가자. 그곳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할머니 떡볶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푸르른 여름에 뵀던 할머니, 이제 가을이 되어 곱게 단풍이 들었을 떡볶이 가게. 정경은 달라져도 할머니의 떡볶이 맛은 그대로일 것이다.
7. 떡볶이와 함께 사당동 하루 여행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구멍가게봄봄에 들러 젤리를 하나 사 먹고 다시 선샤인 청과로 가서 오전에 맡긴 채소와 과일을 찾아가자. 그리고 여유 있게 남성역을 향해 걸어가자. 뭔가 아쉽다면 길 건너 모소리 고깃집에 가서 친구와 함께 소주와 양배추, 그리고 맛있는 특수부위 돼지고기를 먹어도 좋다. 어떤 맛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테니.
[에필로그]
이렇게 우리의 사당동 하루 여행이 끝났다. 이 간단한 글로 시작된 여행에서, 당신은 필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아울러 10화에 걸친 [동네의 재발견] 연재도 여기서 끝을 맺는다. [북적북적 독서산책]은 꾸준히 연재하고, 새로운 주제로 곧 찾아오려고 한다.
잊혀지기엔 너무도 눈물겨운 풍경들이 있다. 머릿속에서는 생생한 이미지를 현실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상실 속에서 끝 모를 아름다움을 찾는다. [동네의 재발견]에 잠시 붙들어둔 매 순간들이 내겐 모두 아름다웠다.
우리 동네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갖게 해 준 대만 친구 란, 부족하고 어설픈 인터뷰에 응해주신 오거리 떡볶이 할머니, 선샤인 청과 남매 사장님, 자전거바퀴 륜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동네를 떠올렸을 때, 난 늘 그분들이 떠오른다. 내가 사당동을 사랑한다면 그건 모두 이 분들 덕분이다. See U~
By 강 성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