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예중 입시 시작 전, 엄마의 기나긴 밤
(이야기의 주인공인 슈퍼 꼬맹이 막둥이를 꼬마 그리미라고 부른다.)
예중 입시를 시작하기 전, 엄마의 밤은 길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예중·예고 입시가 마무리되는 시기다. 그리고 동시에, 5학년 예비 입시반 아이들이 본격적인 입시반으로 올라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예중 입시 전문 미술학원이 있다.
예전에 상담을 받았던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은 5학년 1학기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어요. 꼬마그리미는 언제 오나요? 내일 실기 테스트 보러 오세요.”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고민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 그림을 그려야 할 아이의 시간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었다.
시작하는 순간, 아이가 감당해야 할 무게와 포기해야 할 시간들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걱정 반, 설렘 반 그날 밤 아이는 담담하게 잠이 들었다.
많이 안다는 것이, 내 아이 앞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나는 3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아이들의 입시를 지켜보았다. 대입의 결과가 이미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되고 중등 시기에 상당 부분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경험과 지식은 내 아이의 입시 앞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심이 들어가니 오히려 판단이 더 복잡해졌다.
입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은 있었지만 내 아이를 그 치열한 구조 속으로 너무 이르게 밀어 넣을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언니의 예고 입시를 직접 겪어보았기에 그 세계가 얼마나 냉정하고 치열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로서, 미술 진로 전문가로서, 그리고 30년 교육자로서의 시선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취미 미술인가, 입시 미술인가?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아이에게 미술은 즐거운 취미로 남아야 할까, 아니면 진로로 이어질 발판이 되어야 할까.
미술이 입시와 연결되는 순간 미술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입시 미술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세계다.
그래서 첫 번째 기준은 단순했다. 이 아이가 입시라는 구조 안에서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엄마로서의 판단이었다. 미술 진로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면, 예중–최상위 예고–서울대·홍대까지 이어지는 루트는
분명 엘리트 코스다.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스킬 위주의 입시 미술이 아이의 창의성과 창작성을 해치지는 않을지.
나는 아이의 순수한 그림을 사랑한다.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 부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창작에는 결국 기본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매 순간이 선택이었다.
답은 결국, 아이에게 있었다 나는 아이와 이 문제를 피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꼬마그리미와 함께 미술관에 들렀고 예중 탐방도 다녀왔다. 가는 길에 많은 대화를 나누며 아이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입시 미술을 하게 되면 포기해야 할 시간, 힘들어질 순간들, 실패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엄마보다 훨씬 단순했다.
“엄마, 미술 하는 중학교에서 재미있게 그림 그리고 싶어. 그리고 안 되면 친한 친구들 있는 일반 중학교 가면 되지.”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의 마음이 내가 수없이 쌓아온 경험과 두려움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것을.
세 아이의 엄마로서, 미술 진로 전문가로서, 30년 교육자로서 끝없이 흔들리던 고민은 결국 아이의 마음 앞에서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