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의 변화, 조직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변화
6개월째 제시간에 퇴근을 못 하고 있다. 내 다리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 물귀신이 있어서다. 바로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면 대표는 퇴근을 제때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직원들은 칼퇴다, 물론) .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업의 구성원은 권한과 의무의 선이 명확하고 유기적인 협업이 용이하게 되어 일하기 편하다. 적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문제는 시스템을 만들고 수리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쉬지를 못한다. 시스템이 작동하는 기업일수록 시스템의 수호자들은 밤잠을 설치며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그 시스템이 굴러간다.
시스템은 ‘자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돌이 날아오면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은 그 반응이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집중에 호소하고 있다면 시스템이 아니다. ‘속도를 줄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다면 시스템 일 수 없다. 턱을 설치해서 자동으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어야 시스템이다. 그래서 시스템은 잔소리가 아니라 연구다. 설교가 아니라 장치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의 수혜자들이 받는 축복은 ‘자동‘이라는 결과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세상의 모든 자동은 그 자동을 가능케 했던 딱 그만큼의 ‘노가다‘를 수반한다. 공짜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소기업 대표의 한숨이 시작된다. 직원이 한두 명이면 잔소리 정도로 회사가 돌아간다. 5명 이상이 되면 벌써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시스템을 창작하고, 수정하고, 개선할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뭐 그 정도 인재는 대기업엔 쌨다. 하지만 알바 급여도 겨우 주는 소기업에선 그림의 떡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 조금이라도 회사 같은 포맷을 만들어서 미래에 대비하고 싶은 이 땅의 ‘대표‘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선다. 발칸포와 맞먹는 잔소리와 끝없는 호통을 장착하던지, 아니면 직원들이 퇴근한 야심한 밤에 혼자 남아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던 지다.
평균 40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한다는 침팬지 그룹에 외부에서 한 마리가 구성원으로 들어오면 40마리 모두가 끝없는 접촉을 통해 서열을 다시 재구성한다고 한다. 40마리 무리와 41마리 무리의 차이는 단지 1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모두의, 모두에 대한 관계가 변한다는 뜻이다.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흔히 하는 착각 중에 ‘시스템을 딱 잡아 놓으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가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직원이 하나 늘 때마다. 직원 중 하나가 승진할 때마다. 주문이 늘거나 줄 때마다 시스템은 젖 보채는 아이처럼 AS를 요구한다. 끝없는 ‘노가다‘를 부르는 것이 시스템인 것이다. 게다가 시스템은 DX(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로의 이행)이면서 OX(Organizational Transformation: 조직 문화의 변화)이고, 궁극적으로는 HX(Human Transformation: 직원 개개인의 인식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소기업에선 이걸 대표가 다 끌고 가야 한다. 한 마디로 개고생이다.
그래도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이것 없인 장사가 ‘사업‘이 되지 않으며, 사업이 ‘기업‘으로 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거상을 꿈꾼다. 적어도 시작할 땐 그렇다. ‘먹고 살 만큼만 사업이 되면 된다‘는 먹고 살 수 없을 때만 하는 말이다. 발가벗고 태어나서 처음 입은 옷을 1살이 입을 수없고, 4살 때 입은 옷을 열다섯 중학생이 어찌 입겠는가. 시스템은 미세한 성장에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운명 같은 동반자이다. 시스템을 키우지 않으면 이 견고한 존재의 틈바구니로 살과 뼈가 삐져나와 고통을 당하던지, 아예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하던지 뿐이다. 시스템은 ‘비즈니스 성장’의 숙명이다. 시스템을 졸업할 사업은 없다. 우리가 코로나를 졸업할 수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