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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Apr 20. 2024

이제 안심이 된다

#1. 첫번째 출근

(2021년 □월)


선생님, 저 이번달부터 정규직원이 되었답니다~


○○이가 인턴기간을 끝내고 정규직원이 되었다고 한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내 카톡에 인사를 남겼다.


서비스직 일만 해왔던 ○○이가 사무직 취업을 위해 노력한지 2년만이다.
 ○○이를 알게된지 6년만에 너무 설레고 뿌듯한 소식이다.



그 시간동안 ○○이는 보통과는 다른 험난한 20대를 통과했다.
가족을 떠나 홀로 자립을 해야만했고,

검정고시를 보고 학력을 얻어야 했고

 경제적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쉼없이 알바를 해야했다.


혼자 힘으로 집도 구해야하고, 생활비도 벌어야하고, 빚도 갚아야하고, 마음건강도 지켜야하고, 기술과 자격증도 따야하고.


고된 시간들 사이에서 우울함을 많이 겪었고, 그 때문에 생활리듬이 깨지고, 은둔상태가 되기도 하고, 알바를 지속하지 못해 생계가 위태로운 적도 많았다.


그럴때마다, 어찌해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도 별다른 뾰족한 수를 찾을 수가 없어서.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그냥.. 함께 어울려 밥먹고 떠들며 대화하는것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가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 ○○이가 아무렇더라도 괜찮은 사람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는 조금씩 힘을 냈다.
은둔을 벗어나고 자격증을 따고 인턴십을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멈추고 중단하기도 했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달랐다.


○○이는 별다른 학력과 경력이 없었지만, 적극적이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면접을 치러내고 원하던 분야의 회사에 취업했다. 처음 해보는 회사생활이 낯설고 어려워도 수습기간을 잘 견뎌냈다.


본래 열정 많고 재능이 넘치는 ○○이.
몇 해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을 잘 견뎌낸 ○○이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막막한 상황을 견뎌내고 자기 직업을 찾아 자립해가는 과정은 누구도 쉽게 해내기 어려운 굉장한 일이다.


온 세상에 소문을 내주고 싶다.

그 성장과 자립과정에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어 좋았다. 뿌듯하다.


안타깝게도. 속상하게도. 이 세상은 이런 굉장한 노력과 성취의 과정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 같은 것을 해내더라도, 시작점이 다르고 장벽의 높이가 다르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보통보다 조금 늦었는지도 모를 ○○이의 시작점. 하지만 훨씬 더 깊고 단단한 삶을 만들어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단단하게 살아가겠지.
세상사람들이 잘 몰라주더라도, 응원해줘야지.




#2. 퇴원시켜 주세요.

(2022년 □월)


늦은밤, ○○이가 지방에 있는 어느 병원 정신과에 긴급 입원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호자 없고 병원비도 없으니 급히 가서 데리고 왔다. 어떻게 그 멀리있는 병원까지 간건지..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직장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혼자 극복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던가보다.


병원에서는 퇴원시키기를 조심스러워했지만, 퇴원을 하지 않으면 출근을 못하니까. 출근을 못하면 돈이 없어지고, 그러면 더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되니까. 그런 상황을 여러번 봐왔으니까.


그냥 퇴원을 시켜달라고, 그게 더 낫겠다고 의사를 설득했다.

성남으로 데리고 올라오는 차안에서 나와 대화하는 ○○이는 그렇게 건강하고 친절한데.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는걸까. 알 수가 없다.


다음날 ○○이는 아무일 없는듯이 다시 출근을 했고, 직장생활을 잘 이어갔다.

직장동료들은 밤사이 ○○이 삶에 몰아친 일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을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이가 말한다.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


그 순간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네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면 좋겠다고. 지금 나랑 이야기할때처럼 따뜻하고 사려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너의 그런 모습들을 다른 이들도 알 수 있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나중에 얘기해야지.




#3. ○○이의 삶에 '행복'이라는 말이 놓였다.

(2024년 □월)


긴 시간. 무척 외롭고 험난한 시간을 견디고 지나와야했던 ○○이.
이제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지내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노는 게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 혼자 있을 때에도 행복을 느껴요.
작년 이맘때까지는 혼자 있는 걸 너무너무 어려워했었는데, 이제는 혼자 있을 때에도 그간 좋아해왔던~ 앞으로 계속 좋아할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아요.
그네를 타며 눈에 들어온 하늘에 구름들도 너무 예뻐요.


이 청년의 삶에 '위기'라는 말 대신,  '행복'이라는 말이 놓일 수 있다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흐뭇해지고. 눈물이 날듯 감사하다.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환희를 느낀다.


이런 날들 때문에, 이 일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
아니.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청년들의 삶이, 미래가 변화되는 것을 보게되면.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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