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이 모두 볼거리, 빈(Wien) 박물관들
오스트리아의 수도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어로 Wien[빈]인데,
프랑스어로 Wien이 [비엥]이 되기 때문에,
좀 더 비슷한 발음으로 만들려고,
n 하나와 어미 e를 더 첨가하여,
프랑스어에선 Vienne[비엔]으로 표기한다.
-enne는 전형적인 프랑스어 여성명사 어미라,
이탈리아어에서는 여성명사 어미-a가 붙어
Vienna[비엔나]가 되었고,
이런 이탈리아어식 표기를 그대로 가져간
영어에서는 Vienna[비에너]로 발음된다.
러시아어로는 Вена[비예나],
체코어 Vídeň[비덴], 폴란드어 Wiedeń[비에덴],
불가리아어 Беч[베치],
세르보-크로아티아어 Beč[베치]로,
빈(Wien)은 언어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사실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 혹은
영어 Vienna의 이탈리아어식 발음
“비엔나”를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가보지 못했어도, 어려서부터 우리는
"비엔나소시지", "비엔나커피" 등과 만난다)
마치 태곳적부터 있었을 것 같은 익숙한 이름
빈과 오스트리아가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겨우 AD 10세기 이후부터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11-12세기부터 합스부르그 왕국과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크게 성장하고,
17-18세기엔 제국이 되어,
오스만제국과 더불어,
유럽 동부의 양강을 형성하며,
이슬람 오스만 터키의 서진을 견제하는
유럽중부 그리스도교 국가의 동남쪽 경계가 되었다.
이후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유럽에서 물러난 오스만제국을 대신해
남쪽의 슬라브국가들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을 통치하고,
러시아, 프로이센과 더불어
북쪽의 폴란드를 분할 지배하는가 하면,
동쪽의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일부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한다.
14세기부터 오스트리아의 중심이 된
도시 빈(Wien)도
국가 오스트리아와 함께 성장했는데,
지금 우리가 빈에서 만나는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구시가는
대대적인 재정비를 한 19세기 초반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단다.
그렇게 계획적으로,
다른 서유럽 도시에 비해 비교적 늦게 형성되어서,
빈은 길도 매우 넓고 반듯반듯하고,
비슷하게 생긴 19세기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건축적, 미학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최전성기에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되어,
“대제국의 위엄을 드러내는”
매우 거대한 건축들이 넘쳐난다.
그렇게 창조된 제국의 심장 빈은 19세기-20세기 초
철학, 음악, 미술, 건축 및 문화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유럽 도시 중 하나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말러, 클림트 등이 빈에 거주했었다.
1차세계대전 전엔,
향후 20세기 세계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오스트리아 출신 빈 미술아카데미 대학생 히틀러,
유고슬라비아 출신 20대 청년 노동자 티토,
공산 혁명을 꿈꾸던 30대 조지아 혁명가 스탈린이
모두 같은 시기에 빈에 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내적, 외적으로 확장해나가던 오스트리아는
1차세계대전 패전과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축소됐다.
약 20년 후 오스트리아 출신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지도자가 되면서 일으킨 2차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병합하여,
나치 독일의 일부가 되었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결국 2차세계대전도 패전했다.
전후 냉전시대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 되었고,
공산주의 국가가 된 주변 여러 나라들과 달리,
체제 전환 없이 20세기 후반 경제 발전을 계속했다.
오스트리아의 지리적 위치 자체가
당시 이념적 동과 서의 경계라,
냉전의 최전방에 있기보다는
중립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영토는
남한의 80% 정도 크기고,
그나마 국토의 60% 이상이 산이지만,
1인당 GDP 약 5만 불인 유럽의 경제 선진국으로,
그리고 유럽 대표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GDP의 약 10%가 관광업에서 나온단다.
유럽에 가보면,
한국이 땅덩어리가 좁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라서
전후 경제성장이 어려웠단,
예전에 학교에서 진리처럼 배운 주장이
참 근거가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1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구시가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빈(Wien)은 이렇게 생겼다.
남북으로 흐르는 다뉴브 강 서쪽에
구시가가 형성되어 있고,
지도 중간 붉은 원 안이 구시가지만,
그 원밖에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빈은 구시가도 꽤 크고,
구시가 밖에도 볼 것이 많아서,
걸어 다니면서 구석구석 다 둘러보긴 힘들다.
그래서 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비엔나 카드(Vienna City Card)나
교통수단뿐 아니라 박물관까지 입장 가능한
비엔나 패스(Vienna Pass)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애초에 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머물던 중,
특별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도 아니면서,
그냥 빈필 한번 "구경 좀 해볼려는” 문화적 허세로
”가까운” 빈에 간 거였고,
그 속물스런 방문 목적을
우여곡절 끝에 달성하고 나서,
예쁜 빈 시내나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다 가본 박물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딱히 특별히 다른 계획이 없기도 해서,
"또다시 속물스럽게"
뒤늦게 몰아서 빈 박물관 순례를 했다.
첫날, 둘째 날
빈 오페라하우스와 빈 필하모니 공연 보느라,
박물관, 미술관은 생각보다 많이 못 갔지만,
그래도 내 취향에 맞게 가고 싶은 곳을 "엄선해서",
둘째 날과 셋째 날 박물관 3곳을 방문했고,
그 박물관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오래전에 유럽 배낭여행 중 빈에 들렀을 때도
벨베데레 정원은 갔었다.
벨베데레(Belvedere)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의미고,
이런 이름을 가진 장소가 세계 여러 곳에 있단다.
그러고 보니,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대통령 관저 이름도
벨베데르(Belweder)였다.
빈의 벨베데레는
말 그대로 “멋진 뷰”를 자랑하는데,
벨베데레 아래 궁전/벨베데레 하궁(Unteres Belvedere, Lower Belvedere)과
벨베데레 위 궁전/벨베데레 상궁 (Oberes Belvedere, Upper Belvedere) 중에서
좀 더 나중에 건설된
벨베데레 위 궁전의 전망이 훨씬 더 좋다.
18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에 거둔 승리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번성하던 시기,
왕자의 별장으로 아래 벨베데레 궁전을 먼저 짓고,
위 벨베데레 궁전을 나중에 지었는데,
둘 다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 건축이다.
건축 당시 이곳은 도시 밖 근교였다는데,
지금은 빈의 중심지역이지만,
그래도 구시가(Old town)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위 빈(Wien) 지도 파랑 5번]
벨베데레는 위 궁전과 아래 궁전 모두
규모가 크고 근사한 건축이고,
정원도 아름다워서,
그냥 쓰윽 구경만 해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한참을 머물게 된다.
예전에 배낭여행으로 빈에 방문했을 때도
그냥 그렇게 벨베데레 겉모습만 구경했었다.
그런데 벨베데레 위 궁전과 아래 궁전 모두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관람객이 되어 내부에 입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두 번째로 빈에 방문했을 땐
박물관에 들어가서 내부도 구경했는데,
그냥 겉만 봤을 때보다 그게 훨씬 좋았다.
빈의 벨베데레는 이렇게 생겼다.
아래 궁전과 위 궁전 사이에 프랑스식 정원이 있고,
위 궁전에서 나가 대로를 건너 한 블록 걸으면,
Belvedere 21이라는 현대미술관이 나온다.
2019년 현재,
위 궁전과 아래 궁전 모두 입장 가능한 티켓은
일반 22유로, 할인 19유로,
좀 더 유명한 전시물이 많은
위 궁전(Upper Palace) 박물관 입장 티켓은
일반 16유로, 할인 13.5 유로다.
궁전들 사이 프랑스식 정원은 무료입장이다.
[벨베데레 홈페이지]
구시가에서 좀 더 가까운
벨베데레 아래 궁전(Lower Palace)은
구시가 남쪽 Rennweg 길에서 들어간다.
이건 벨베데레 아래 궁전의 북쪽 입구.
아래 궁전(Lower Palace) 동쪽에
벨베데레 정원과 위 궁전(Upper Palace)으로 가는
작은 통로가 있다.
벨베데레 정원에 들어가서 만나는
아래 궁전의 남쪽 모습은 이렇다.
벨베데레 정원(Belvedere Schlossgarten, Belvedere Gardens)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 정원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제자가 설계한,
화려한 프랑스식 정원이다.
대칭적이고 정돈된 모습이
이국적이고 조화롭게 아름답긴 해도,
나무도 덜 우거지고,
사람의 손이 많이 가서 "덜 자연스러운"
프랑스식 정원은 난 사실 별로 안 좋아하지만,
벨베데레 정원의 장점이
바로 그 잘 관리된 인공적 아름다움인지라,
여기서는 바로 그걸 즐겨야 한다.
이국적이고 특이한 시각적 아름다움에
불나방처럼 돌진하는 다른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세워진 조각이며, 분수며,
아름다운 장식에 감탄하며,
나도 무언가에 홀린 듯 사진을 계속 찍었다.
벨베데레 정원은 연중무휴고,
문을 여는 시간은 아침 6시 반-7시 반,
문을 닫는 시간은 저녁 5시 반 - 9시까지로,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벨베데레 정원 개장 시간)
https://www.belvedere.at/bel_en/belvedere/garden_and_parks
벨베데레 정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군데군데 동상이 서 있고,
자로 잰 듯, 같은 높이의 나무들이 서 있는,
아래 궁전(Lower Palace) 바로 남쪽의,
비교적 수수한 공간이
벨베데레 정원 가장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남쪽으로 계속 걸어 올라가면,
멀리 위 궁전(Upper Palace)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아름다운 분수가 눈에 들어온다.
이 분수의 조각이
그리스 신화의 지하세계를 형상화해서,
하데스(혹은 플루토)와 페르세포네도 있다는 걸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아무리봐도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조각들의 표정과 포즈는 매우 어두워서
지하세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동영상:벨베데레 정원 분수)
이 화려한 분수 뒤로 걸어 올라오면,
벨베데레 정원의 두 번째 부분의
좀 더 화려한 풍경이 펼쳐진다.
(동영상)
화려한 분수가 있는 공간 양 옆에는
벤치와 산책로가 있는데,
그 산책로마다 그리스 신화 속 스핑크스,
즉,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 얼굴이 달린 꼬리,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가진
하얀 동상이 앉아 있다.
그런데 이 그리스식 스핑크스는
신기하게도 얼굴이 다 다르다.
그 화려한 정원 끝에
벨베데레 위 궁전(Upper Palace)이 서 있다.
거기서 뒤돌아 북쪽을 내려다보면,
이런 풍경이다.
이건 동쪽의 출입구.
벨베데레 위 궁전(Upper Palace)의 박물관은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한
유명한 미술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있어,
여기서 그냥 나가기는 좀 아쉽다.
그 박물관 입장권은 위 궁전 남서쪽에 있는
작은 매표소 건물에서 구매한다.
벨베데레 위 궁전을 돌아가면,
북쪽면과 같은 듯 다른,
궁전의 남쪽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궁전의 남쪽면 남쪽으로
벨베데레 정원의 세 번째 부분이 자리 잡고 있다.
벨베데레 궁전 바로 남쪽엔 커다란 연못이 있고,
관광객이 덜 붐벼서 비교적 조용하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영어 블로그엔
여기가 마치 무슨 비밀장소인 양 써 놨던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 북쪽에 비하면 수백 배는 한산하다.
겨울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기도 한단다.
난 보다 다양한 걸 보려고 선택과 집중을 하느라,
벨베데레에서는
위 궁전(Upper Palace) 박물관만 들어갔다.
한국의 1층에 해당하는
0층엔 벨베데레 역사에 대한 전시와 특별전,
그리고 그리스도교 관련 그림이 있었는데,
비교적 한산했다.
1층과 2층에 볼 게 워낙 많아서 그렇다.
1층엔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의 그림들도 있었는데,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 앞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서 있어서,
거의 줄 서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는 수준이었고,
그렇게 줄을 서서 찍어도
다른 사람들이 안 나오게 찍긴 불가능해 보였다.
특히 "키스" 앞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그 그림 왼쪽에 있는 빈 공간엔,
키스 그림에 얼굴을 뚫어놓고
기념사진 찍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등신대 비슷한 것까지 있어
관광지를 넘어 놀이공원 느낌까지 났다.
난 예전에 러시아 박물관들에서
사진 촬영 금지를 많이 당해서,
(요새는 러시아 박물관도 사진 다 찍게 한다.)
그리고 분명히 인터넷에 훨씬 더 잘 찍은
전문가의 사진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의 전시작품은 잘 안 찍는다.
그냥 평소보다 몇 배는 집중해서,
그림 자체를 열심히 보고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창문 너머 풍경이 너무 예뻐서
나도 결국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난 에곤 실레 그림들도 좋았는데,
몇 년 전 상연된 오스트리아 영화
"에곤 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에서
원제와 연관된 가장 중요한 작품이었던,
"죽음과 소녀"를 볼 수 있었던 게 특히 좋았다.
여기저기서 매우 자주 봤던,
프랑스 화가 David가 그린,
말 타고 알프스를 건너는 나폴레옹 그림도 있었다.
그런 유명한 화가가 작품뿐 아니라,
잘 모르는 다른 화가의 그림도 다 좋았다.
2층엔 프랑스 인상파 화가
마네, 모네, 르누아르도 있었는데,
그 작품들도 물론 좋았다.
그리고 건물 자체도
마치 예술 전시품처럼 매우 아름답다.
1층은 좀 시간을 가지고,
2층이랑 0층은 빨리 봤는데,
박물관만 가면 거북이가 되는 난
다 보는데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아마 보통은 1시간 반 - 2시간이면 다 볼 것 같다.
벨베데레 위 궁전을 나와 남쪽으로 걸어가면,
좀 더 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있고,
그 공원을 걸어 나가면
보다 현대적인 모습의 빈과 만나게 된다.
길 건너에 바로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동상도 있고,
뭔가 다른 역사 유물 전시도 있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더 걸어가면
Belvedere 21이라는 현대미술관이 나오는데,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현대 미술 전시 야외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Museum of Art History)은
구시가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빈 시내 지도 동그라미 속 11번]
빈 미술사 박물관 건물은
189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빈 자연사 박물관(The Natural History Museum, Naturhistorisches Museum)
[빈 시내 지도 동그라미 속 12번]
과 같은 시기에
거의 똑같은 크기와 디자인으로 건설되었다.
당시 빈을 재정비하던 건축가와 행정가들이
“과학”과 “예술”의 중요성을
이렇게 건축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단다.
두 건물은 쌍둥이 같이 닮았을 뿐 아니라,
마리아 테레사 광장(Maria-Theresien-Platz)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마리아 테레사 광장” 가운데엔
마리아 테레사 여제의 동상이 서 있다.
어딘지 모르게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의
알렉산드린스키 광장에 서 있는
“예카테리나 여제” 동상과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마침 내가 방문했던 2018년 6월 초엔,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러시아 에르미타쥬 박물관 특별전을 하는 중이었고,
그중 한 구석엔
예카테리나 여제와 마리아 테레사 여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외모며, 업적이며,
두 여제가 여러모로 많이 비슷하다.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는 독일계이기도 하다.
신 르네상스 양식이라는 빈 미술사 박물관은
건물 자체에 섬세한 장식이 많고 화려하고,
당시 제국의 강력한 권력을 반영하듯,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또 건물 자체의 완벽한 대칭과
차분한 컬러 때문인지
절제미와 기품이 있어,
엄청난 크기와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에
거부감이나 위압감이 느껴지기보다는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친근한 건축이다.
그리고 박물관 안에 들어가 보니,
그 내부도 고상하고 웅장한데,
난 내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 속 박물관 앞의 거대 조각은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조형예술작품의 모형인데,
실제로는 훨씬 작고 정교하다.
실물은 이렇다.
손바닥 정도의 크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사 박물관의
입장료는 일반 16유로, 할인 12유로.
입장 시간은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
(목욜은 밤 9시까지, 월욜은 휴관)인데,
관광시즌인 6월부터 8월까진
매일 문을 연다.
나는 2시쯤 들어갔는데,
전시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6시에 문 닫을 시간까지 약 4시간 있다 나왔다.
아마 보통은 2시간이면 다 볼 거다.
미술사 박물관의 내부도 매우 고전적인데,
바닥의 무늬, 기둥과 벽의 색깔은
매우 현대적인 아르누보(Art Neuveau) 느낌,
19세기 말, 20세기 초
박물관 건설 시기의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티켓을 사고,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면,
눈 앞에 중앙계단이 나타나는데,
그 중앙계단을 통해
0.5층, 1층, 2층의 전시실 등에 도달한다.
박물관 계단의 첫 층계참에는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가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 있다.
난 본격적인 박물관 관람에 앞서,
계단 끝까지 올라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지붕 밑 다리에 다다랐다.
미술사 박물관 중앙의 천장 밑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벽화가 있는데,
거기에 계단을 설치해서
일반인들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는 그 클림트의 벽화가
너무 강렬해서,
또 무엇에 홀린 듯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난 이게 상시전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2018년이 클림트 사망 100주기라
그 기념으로 하는 전시라고 나온다.
앞으로 계속 볼 수 있는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다.
(Stairway to Klimt 유튜브 동영상)
미술사 박물관의 0.5층은 서양 고대 예술,
1층은 중세-근대 유럽 회화,
2층엔 동전과 금은 세공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난 1층 전시가 가장 좋았는데,
책에서만 봤던,
바벨탑 그림도 있었고,
다른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도 좋았다.
평소 회화와 조각은 좋아하지만,
동전이나 금은 세공품은 별로 내 취향이 아닌데도,
2층에 한참을 서 있었다.
2층 중앙에 있는 공간이
전시실 밖 또 다른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 특별한 곳을 구경하라고 만든 것 같은
둥그런 열린 공간의 난간에서,
아르누보적인 기하학적 무늬가 펼쳐져
20세기 초 빈으로 시간여행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1층의 Kuppelhalle에 있는 커피숍 바닥이 보이고,
위로는 정교회 성당의 쿠폴 같이 생긴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천장의 유리창에서 햇볕이 쏟아지고,
그 두 공간을 연결하는
1층과 2층의 벽 장식도
입이 떡 벌어지게 화려하고 아름답다.
(동영상: 미술사 박물관)
그래서 한참 동안 거기 그렇게 서서,
박물관을 "구경"했다.
1층의 카페도 가보고 싶었는데,
그냥 거기서 커피 마실 시간에
박물관 전시물을 한번 더 둘러보는 걸 선택했다.
훈데르트바써(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몇 년 전 한국에서 기획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TV에서 광고하는 것 보고
보러 가고 싶었는데 결국 못 가고,
이번에 빈에 갔을 때 훈데르트바써 박물관에 갔다.
훈데르트바써의 원래 성은
Stowasser[슈토바서]인데,
슬라브어로 sto[스토]가 100이란 의미라서,
그걸 독일어 Hundert[훈더트]로 바꿔
Hundertwasser[훈더트바써]가 되었다.
독일어로 “100개의 물”이라는 뜻인데,
그의 친환경적 행보에 딱인 이름이다.
근데 그럼 “훈더트바써”가 돼야 하는데,
왜 한국어로 “훈데르트바써”라고 표기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표기를 따르겠다.
훈데르트바써 박물관(Museum Hundertwasser)은 예전에 그가 살던 동네인 빈 동쪽,
다뉴브 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동그라미 안 30번]
난 그쪽 동네는 어떻게 생겼나 좀 보려고
걸어서 갔는데,
중간중간에 러시아어, 폴란드어 간판이 보였다.
원래 이 동네에 슬라브인이 많이 살아서,
"슈토"바써를 "훈데르트"바써로 바꿀 정도의
슬라브어에 대한 인지도가 있었나 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 건설되었다는
천문관측대 우라니아(Urania)도 강변에 서 있고,
강에서 멀리 떨어진 구시가에선 보지 못했던,
다리도 보인다.
신기하게도 2층 철교다.
그렇게 구시가 바깥쪽 빈을 구경하며
20-30분 정도 걸으면,
훈데르트바써 박물관에 도착한다.
어딘지 훈데르트바써 “스러운” 외관의 이 곳은
뭐하는 곳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회사 사무실이었고,
박물관은 그 옆에
건물 전체가 훈데르트바써인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2019년 현재 입장료는
일반 12유로, 할인 5유로.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한국식 1층인 0층은 매표소와 카페,
1층과 2층은 훈데르트바써 작품 전시,
3층은 다른 작가의 사진 전시였다.
각 층은 역시나 훈데르트바써스러운
이런 계단으로 연결된다.
훈데르트바써 박물관 내부엔
그의 그림, 우표, 국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강렬한 색과 독특한 구도, 선명한 윤곽선이
매우 아름답고 세련된 작품들이었고,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의 건축에선 가우디가 조금 보이고,
그의 회화에선
야수파, 아르누보, 일본 미술도 보이는데,
그래도 그것과 똑같지 않고
뭔가 매우 독특하다.
박물관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천천히 관람하는 나는 2-3시간 걸렸는데,
보통은 다 보는데 1-2시간 걸릴 것 같다.
1층 카페는 야외에도 자리가 있고,
바깥으론 강변인지 천변인지 어떤 물가로 연결된다.
여기도 사실 너무 근사했는데,
카페나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박물관이랑 빈 시내를 구경하고 싶어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나와
훈데르트바써 하우스(Hundertwasserhaus)에 갔다.
난 처음에 훈데르트바써 박물관이
훈데르트바써 하우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박물관에서 작은 블록 3-4개를 걸으면
훈데르트바써 하우스가 나오는데,
걸어서 5-10분 걸리는 것 같다.
훈데르트바써 박물관이
주로 그의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관람 공간이라면,
훈데르트바써 하우스는
그의 설계에 기반한 1980년대 건축으로,
실제로 빈 사람들이
집으로, 사무실로 사용하는 생활공간이다.
그래서 입장료는 없다.
훈데르트바써 하우스는
직선에 벗어난 울퉁불퉁한 선과
알록달록한 예쁜 색깔로
빈 관광객들의 중요한 포토존이 되었다.
박물관보다 관광객이 더 많았고,
여기저기에서 기념사진 찍기 전쟁이었다.
나도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 전쟁에 기꺼이 참전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2차원적 사진은
3차원적 실물을,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머무는
4차원적 그 순간을 담아내지 못한다.
예전에 유럽 배낭여행하면서 빈에 들렀을 땐,
그 좋은 빈필도, 박물관도
가 볼 생각을 못 했었다.
아마 그때 빈에 1박 2일 머물렀던 것 같은데,
도대체 그때 난 빈에서 뭘 했나 생각해보니,
그냥 구시가 예쁜 건물들 구경하면서,
비엔나커피 아닌 비엔나커피도 마시고
뭐 그랬던 거 같다.
특별한 목적도 없었고,
특별한 난관도,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1박 2일 일정이라면,
빈은 그렇게 그냥 보내도 괜찮은 거 같다.
하지만 그렇게 겉만 쓱 구경해서 그런지,
여행 후 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없었다.
그냥 유럽의 흔한 예쁜 도시일 뿐이었다.
이번에 빈필도 가보고,
박물관도 몇 군데 가보니,
조금 더 빈을 알게 되고,
빈이 좀 더 좋아진다.
빈 박물관들은 겉의 건물도 그렇고,
안의 내용물도 그렇고,
모두 매우 우아하고 또 적당하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메타쥬 박물관”처럼
며칠을 봐야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전시물이 많지도 않고,
(난 에르미타쥬는 10번 넘게 간 것 같은데,
처음엔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보려고 했다가
결국 3층의 인상파, 야수파 작품 등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나왔었다.
물론 그다음부터는 무조건 3층부터 올라간다.)
체코 프라하의 “알폰스 무하” 박물관이나
체스키 크룸루프의 “에곤 쉴레” 박물관처럼
전시물이 적어서
마음이 헛헛하지도 않다.
(다른 체코 박물관들은 아주 괜찮았는데,
여기는 전시가 좀 부실한 느낌이었다.)
빈의 박물관들은
나처럼 오래 보는 사람은 2-4시간,
빨리 보는 사람은 1-2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을 정도의,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에,
엄선한 듯한 전시물들도 매우 알차고,
클림트나 훈데르트바써 같은 경우는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매우 특별한 작품들이었다.
내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있으면서,
영화나 클래식 공연은 자주 갔는데,
박물관, 미술관은 많이 안 가봐서,
그런 조형예술에 대한 갈증이
빈에서 많이 해소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빈에서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박물관 가는 일인 것 같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하고 있는 그걸,
난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 이런 문화적 여행인데,
빈이 그런 여행에 가장 적합한 도시라는 것도
그렇게 첫 방문 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았다.
이제 이 좋은 것들을 알았으니,
혹시나 다음에 빈을 가게 되면,
빈필도 가고, 박물관들도 가고,
또 예쁜 도시도 구석구석 구경해야 하니까,
1박 2일이나 2박 3일로는 어림도 없겠다.
물론 통장 잔고도 그렇고,
고용 불안도 그렇고,
당분간은 거기 가는 것 자체가 어림도 없다.
그리고 당분간 불가능해서 그런지,
자꾸 더 열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