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존중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북유럽 도시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사람도 그렇고 도시도 그렇고,
별 거 아닌 거에 괜히 싫어지고,
또 별 거 아닌 거에 괜히 좋아진다.
오슬로는 사실 “노르웨이 수도”라는
별 이유도 아닌 이유 때문에
베르겐과 피오르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거라,
그리고 여행 전 검색한 블로그에서
오슬로 관련된 특별한 찬사나 멋진 사진을 못 봐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오슬로 공항에 내려서 시내에 들어갈 때도
심드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짐을 풀고 시내로 나오는데,
공기도 좋고,
도시 곳곳에 있는 녹지도 마음에 들고,
마트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좀 안심했고,
카드로 다 결제돼서
노르웨이 통화로 환전할 필요 없는 것도 너무 좋고,
분위기가 매우 밝고, 생기 있고,
자유롭고, 열려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결정적으로
젊은 현지인들이 만든 도시 지도인
USE-IT 지도에 적힌 Act like a local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완전 반해버렸다.
DO THE JAYWALK
무단횡단을 하라.
Both green and red light means walk in Oslo. The easiest way to spot a tourist is when they wait at the red light in a pedestrian crossing even though there are no cars. Us locals? We throw ourselves into the street as soon as we have the opportunity.
오슬로에서는 녹색불과 빨간불 둘 다 걸으라는 의미다. 관광객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동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횡단보도 빨간불에 기다리고 서 있을 때다. 우리 현지인은 어떠냐고?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길 위로 뛰어든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그리고 심지어 러시아도
한국보다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배려하는 문화라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무조건 차가 횡단보도 앞에 서고,
어떤 때는 보행자가 빨간불 앞에 서 있을 때도
차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웃으면서 어서 건너라는 손짓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일 때도
거의 항상 실체 없는 무언가에 쫓기듯 달리다가,
유럽 가면 그런 작은 배려를 받는 게 참 좋다.
사실 좀 생각해보면 기계인 자동차보다
생명체인 사람이 우선인 게 맞는 건데,
그리고 자동차보다 사람이 물리적 약자니까
더 보호받아야 하는 게 맞는 건데,
우리는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고,
개인과 부분보다 집단과 전체를 우선하다 보니,
한낱 "무식한" 보행자가
감히 교통의 큰 흐름을 방해하는 걸 죄악시하고,
원활한 차량 흐름이라는 “대세”의 방해물인
보행자의 권리는
법적으로도 그리고 실제 생활적으로도
단지 신호등에 의해서만 보장받는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보행자는
당연히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차가 사람을 조심하기보다,
사람이 차를 조심하라고 교육받는다.
자발적 “전업 보행자"이자
꽤 경력이 오래된 “프로 보행자”인 나는
오슬로 운전자가 다른 유럽 도시보다 더 많이
보행자에게 양보한다는 걸,
시내를 걸으면서 이미 좀 느끼고 있었지만,
현지인처럼 되는 법이
그 쉬운,
아니 오히려 우리에게는 어려운
“무단횡단”이라는 구절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아, 여기 진짜 좋은 데구나!
Use-it 지도가 제안하는
다른 오슬로 현지인 팁도 별로 어렵지 않다.
(1) Don't touch us
우리도 보통 낯선 사람한테 가까이 가지 않고,
신체 접촉하지 않으니 쉽고,
(3) Embrace the sun
햇볕 귀한 오슬로 가면
자연스럽게 햇볕을 찾게 되니까,
이것도 쉽고,
(4) Feel those environmental contradictions
우리도 환경이 중요 이슈니까,
이것도 쉽다.
환경 때문에 자전거를 자주 이용하면서도,
국내 여행에서도 비행기를 선호한다는 그들처럼
우리도 분리수거에 누구보다 열심이지만,
일상에서 너무 쉽게 일회용품을 쓰니까,
그 모순과 죄책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5) Born with skis on
이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여름에 갔으니까 패스.
(6) Drink like a local
물가가 비싸서
생수 대신 수돗물 마시고,
맥주는 슈퍼에서 사서 마시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난 오슬로에서 맥주는 안 마셨고,
물은 습관대로 처음에 생수를 샀는데,
나중엔 노르웨이 여행 내내
현지인처럼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그렇게 Use-it이 알려준
오슬로 현지인처럼 행동하는 항목들이
대부분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거다.
오히려 몸에 익지 않은 무단횡단이 더 어려워서,
처음엔 횡단보도에 차가 다가오는 게 보이면
몸이 자동적으로 멈추곤 했다.
5박 6일 노르웨이 머물면서 나중엔 현지인처럼
다가오는 차에 별로 신경 안 쓰고
그냥 건너고 싶을 때 길을 건널 수 있게 됐는데,
그게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8-10세기 바이킹으로
유럽 여기저기를 휩쓸고 다니던 노르만족이
이제 좀 정착하고 도시를 발전시켜가던
11세기에 오슬로(Oslo)는 처음 세워져,
13세기 말 노르웨이 수도가 되었다.
14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노르웨이가 덴마크와 동맹을 맺으면서,
덴마크 왕이 노르웨이를 통치하게 되었고,
새 연방 왕국의 수도 코펜하겐에 비해
이제 변방이 된 오슬로는 발전이 정체됐다.
거기다가 17세기까지 여러 번 큰 화재가 나서,
목조 건축이 대부분 소실되기도 했다.
폴란드가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겪은 것과
비슷한 역사를 중국과 일본 사이 한국도 겪었고,
한국은 30여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내 말에,
폴란드에서 만난 노르웨이 친구 아드리안이
한국에게 그런 역사가 있는지 몰랐다며,
(외국인들은 사실 이런 역사 잘 모른다)
노르웨이도 400년인가 500년간
덴마크의 식민지였다고 했었는데,
아마 그게 이때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그들 역사를 참 모른다.)
하지만 노르웨이와 덴마크 사이엔
우리 같은 역사적 앙금은 별로 없는 것 같고,
언어도 매우 비슷해서,
특히 노르웨이 표준어인 Bokmål(보크몰)은
덴마크어랑 매우 유사해서,
"노르웨이식 덴마크어"라 하기도 한다.
이런 유사성은 오랜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비롯된
덴마크어의 영향 때문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런 역사가 없는 나라에서도
영어를 제외한 게르만어는 서로 많이 비슷하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서로 많이 알아듣는다고 하고,
특히 북유럽의 언어들이 비슷해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말을 하면서
통역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언어적 특징만 놓고 보면 방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유사성 때문에 더 가깝게 느껴서인지,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 노르웨이는
또다시 이웃 나라와 동맹을 맺고,
이제 스웨덴과 연방이 되는데,
이번에는 두 나라가 동등한 위치였고,
이 연방국가의 공동 수도 중 하나였던 오슬로도
다시 발전하기 시작해서
현재 오슬로의 중요 건축들이
19세기에 건설되었다.
그 이전 건축들은 대화재로 소실되어,
서울보다 더 일찍 세워진 도시임에도,
오슬로엔 고풍스러운 건축이 별로 없고,
유럽 도시치곤 특이하게
구시가도 마땅히 없다.
그래서 오래된 유럽 도시보다는
현대적인 미국 도시 같은 느낌도 좀 있다.
20세기 두 개의 세계대전에서
노르웨이는 명목상 중립국이었지만,
실제적으로
1차세계대전에선 해상에서 영국을 도왔고,
2차세계대전에선 독일의 침공을 받기도 했다.
전후 미국 마셜 플랜에 따라 원조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경제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했고,
지금도 자유 시장경제와
높은 비중의 국가 소유 자산이 공존하는
가장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다.
1970년대 석유를 시추하며 국가의 부를 축적했고,
지금도 석유와 천연가스가
노르웨이 전체 수출의 50% 이상이다.
1980-1990년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사회보장제도도 강화되어,
계층 간 소득격차가 낮아,
다른 북유럽 국가와 더불어
지니 계수가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노르웨이는 2018년 1인당 GDP가 85,000달러로
세계 8위이고,
노르웨이 총 GDP의 20%가 오슬로에서 나온다.
오슬로(Oslo)라는 이름은
"산기슭의 초원" 또는
"신들에게 바친 초원"이라는 의미란다.
처음 오슬로는
지금 오슬로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17세기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치하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가
대화재로 재가 된 오슬로를 재건하지 않고,
지금의 오슬로가 자리 잡은 서쪽에
새로 시가지를 만들게 하고,
새로 생긴 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 자체를
"크리스티안이 건설한 도시"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Kristiania)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3세기 동안 “오슬로"라는 이름은
이제는 변두리가 된 동쪽 구도시를 의미했는데,
20세기 초 독립국가가 되었을 때,
노르웨이의 수도 이름을
덴마크 왕의 이름에서 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크리스티아니아"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시 "오슬로"라고 부르게 된 것이란다.
그 의미로 봤을 때도 당연히 그게 맞는 것 같고,
형식으로 봤을 때도
“오슬로"란 이름이 음성, 형태적으로 훨씬 단순해서
수도 이름으로 더 좋은 것 같다.
노르웨이 면적은 한국의 3배, 인구는 1/10로,
현재 노르웨이 전체 인구가 5백만 명인데,
그중 오슬로 인구가 백만 명이다.
한국처럼
노르웨이 총인구의 1/5이 수도에 거주하는 거다.
그중 노르웨이인의 비중은 70%로
오슬로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최근에는 외국에서 온 이민자들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출신 노르웨이인들도 증가하고 있고
계속 증가 추세라서,
오슬로는 대도시치곤 확장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오슬로에는
노르웨이 제2도시 베르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기와 에너지,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이 감지된다.
오슬로 곳곳에서
시의 문장 혹은 인장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오슬로 인장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이는 오슬로의 수호성인인
11세기 노르웨이 그리스도교 성인
할바르(Hallvard)로,
그는 무고한 노예 여성을 돕다가
화살에 맞고 목에 맷돌을 매달아 수장되었다.
그 이야기로 그가 들고 있는 화살과 맷돌,
아래 누워있는 여성이 설명 가능하다.
따라서 이 오슬로 문장은
화살과 맷돌 같은 시련 속에서도,
여성으로 상징되는 오슬로(Oslo)가
할바르 성인의 보호를 받음을 보여준다.
문장을 둥글게 둘러싼
라틴어 Unanimiter et constanter는
"결합되고 한결같은"이라는 의미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나라의 수도에
적절한 모토인 것 같다.
이 도시의 모토와 달리,
날씨는 안정적이지 않고,
좀 기복이 심했다.
바다 옆에 있는 오슬로는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는 높은 위도에 비해 덜 춥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반대로 여름에 기온이 높은 것도 아니다.
2018년 6월에 갔을 땐,
한낮 햇볕이 날 때는 덥기도 하지만,
해가 진 저녁이나 비가 올 때는 좀 쌀쌀해졌다.
오슬로에 갈 때는
여름에도 좀 따뜻한 긴 팔 겉옷을 챙기는 게 좋다.
기후 말고,
이 “완벽해 보이는” 나라의 또 다른 단점은
물가인 것 같다.
소문대로 노르웨이의 체감 물가는 비싸다.
여행하면서 직접 지불하게 되는
교통요금, 숙박비, 박물관 요금은
한국보다 확실히 비싸다.
식당 물가는
빅맥지수도 2019년 5.86달러로 세계 2위,
그 밖에도 평범한 식당이 1인분에 2-3만원이니,
한국보다 많이 비싸지만,
마트 물가는 한국이랑 비슷하다.
그래서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한 끼, 두 끼는 샌드위치 같은 걸 만들어 먹으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GDP가 우리 두 배 되는 나라에도 지지 않는
한국의 마트 물가는 아무리 봐도 많이 이상하다.
그리고 오슬로엔 다양한 이민자들이 살아서,
식당의 먹거리도 다양하고,
그 가격대 또한 다양한 것 같다.
그래서 대체로 비싸지만,
찾아보면 좀 저렴한 곳도 있다.
그런데 체감 물가도 그렇고,
빅맥지수도 그렇고,
위에 링크한 사이트를 봐도 그렇고,
오슬로가 서울보다 여러모로 더 비싼데,
신기하게도 2019년 가장 비싼 도시에서
서울이 4위나 되고,
오슬로는 61위밖에 안 된다.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19-most-expensive-cities-for-expats/
노르웨이는 비싼 물가에 비해
부동산이 비싸지 않아,
부동산 가격이 포함되면 순위가 떨어진단다.
평균 월급은 7-8백만원 정도,
40-45% 높은 세금을 떼지만,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공공서비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니,
그렇다면 뭐 그런 "살인적" 물가에도
현지인은 생활이 빡빡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여행자도
뭐 약간은 더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오슬로 패스로 입장하는 박물관들을 둘러봤는데,
체감 생활 물가가 살인적인 오슬로에서
1일권이 6만원이나 하는 오슬로 패스 없이,
보통 15000-20000원은 내야 하는 입장권 없이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관광명소도 있다.
아래 지도의 빨간색 번호는
지난 포스트의 오슬로 박물관 소제목,
노란색 번호는 이 포스트에서 둘러볼
무료입장 관광지의 소제목 번호다.
오슬로 첫날 초저녁에 도착해서,
백야라 아직 해가 높이 떠 있길래,
시내로 갔다가
거기서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었는데,
바닷가 요새가 눈 앞에 나타났다.
아케르스후스 요새(Akershus Fortress, Akershus Festning)는
13세기 후반에 건축된 중세식 군사요새로,
어떤 공격에도 함락된 적 없는 철옹성이다.
서쪽, 남쪽, 북쪽으로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왕족이
나치를 피해 해외로 떠나면서 비게 된 곳을
독일군이 차지하고 사람들을 처형했고,
나중에 전쟁이 끝난 후,
나치에 부역한 노르웨이인들도 처형되었던,
고통스러운 현대사를 목격한 장소이다.
아직도 군사적 시설이긴 하지만,
매일 06:00 - 21:00 일반에게 무료 공개된다.
아케르스후스 요새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는데,
지도 위쪽이 서쪽 바다이고,
지도 오른쪽 위가 성이다.
여기가 요새 밖 서쪽 바다.
2018년 6월에는 공사중이었다.
성 남쪽에는 넓은 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놀이동산에서 많이 본 듯한 성도 있는데,
무슨 공공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광장의 동쪽은 시내에서 들어오는 출입구다.
그 광장 북쪽, 성 아래엔
1940-1945년 전쟁 희생자 국가 기념비(Nasjonalmonumentet for krigens ofre 1940-45, National Monument to Victims of War 1940-45)가 서 있다.
오슬로에는 이렇게
벌거벗은 남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많은데,
다른 오슬로 조형물에서
남녀의 크기가 같은 것과 달리,
여긴 여자를 남자보다 훨씬 크게 만들었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느낌은 이게 노르웨이 여성의
높은 사회적 지위구나 싶었다.
그리고 서유럽, 남유럽의 동상과 달리,
남녀의 신체가 이상화된 비현실적 몸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덜 관능적인 몸이고,
증명사진이라도 찍듯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그 기념비 뒤에 아케르스후스 성이 서 있다.
성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 안에 들어가면 서쪽 바다 쪽으로
꽤 넓은 풀밭이 있다.
군사요새라 대포가 세워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커다란 나무와 너른 풀밭이 있어
전쟁보단 평화에 가까운 공간이다.
그 옆의 성은
또 다른 높은 벽과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요새 안의 아케르스후스 성(Akershus Castle, Akershus slott)은
현재 박물관으로,
예전 노르웨이 왕가에서 쓰던 공간을 전시한다.
시즌마다 입장 시간이 다른데,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대체로 입장 가능하고,
2019년 현재 입장료는
일반 100 크로네(약 13,000원),
할인 60 크로네,
오슬로 패스는 무료다.
나는 너무 늦게 가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또 벽이 이렇게 있다.
왜 이 요새가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는지 알만하다.
그리고 성의 동쪽으로 가는 언덕길이 나온다.
성 북쪽에 근위병이 서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는 걸 보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사진 찍지 말라고 옆에 써놓거나,
험한 표정으로 소리 질렀을 것 같은데,
사진 찍는 사람의 권리도 인정하면서
사진 찍히는 사람의 프라이버시도 중시하는
노르웨이인들의 단적인 모습 같았다.
그렇게 동쪽으로 언덕을 올라가다 보니,
바다가 다시 잘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도 바다지만,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리고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수채화 같아서 그저 감탄했다.
(동영상)
그렇게 요새 동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그 동북쪽 모서리에서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멀리 오슬로 시청도 보이고,
가까이엔 대형 스크린도 보였는데,
2018년 6월 월드컵이 한참이라,
이 대형 스크린 앞에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이 성채 동북쪽 절벽 위에서도
사람들이 열심히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동영상:월드컵 축구)
그거 좀 보다가 동남쪽 길로 내려왔다.
무슨 야외무대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날은 텅 비어 있었지만,
여기에서 콘서트 같은 이벤트도 자주 한다고 한다.
요새에서 나와 비겔란 공원으로 갔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오슬로 밖에서는
그 많은 뭉크 작품을 만날 수 없으니,
오슬로에서 꼭 가야 할 가장 중요한 박물관이
뭉크 박물관이고,
넓고 나무가 무성한 공원을 즐기면서,
오슬로 또는 노르웨이인들을 잘 드러내는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오슬로에서 꼭 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공원이
비겔란 공원인 것 같다.
Use-it OSLO 지도 디자인도
비겔란드의 조각 작품을 모티브로 했던데,
나도 그의 작품이 매우 노르웨이적인 것 같다.
공원은 연중무휴, 24시간 무료 개방이다.
비겔란 공원(Vigeland Sculpture Park, Frognerparken)은
오슬로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트램 12번을 타고
Vigelandsparken에서 내리면 되고,
시내에서 트램으로 약 15분 걸린다.
원래 18세기 어떤 무관의 개인 영지였던 것을
19세기 말 시에서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고,
20세기 초 비겔란의 작품을 공원에 설치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공원에는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있다고 한다.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은
19세기 말 노르웨이 남부 도시에서 태어난,
노르웨이의 가장 중요한 조각가이다.
[노르웨이어에서 마지막 d는 발음하지 않아,
"비겔란드"가 아니라 "비겔란"이란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오슬로에는
조각공원뿐 아니라,
박물관도 있다.
비겔란 공원과 박물관을 검색해보니,
2019년은 비겔란 탄생 150주년이라
올해 오슬로에서 여러 행사를 하는 것 같다.
공원 입구에서 걸어가면
다리, 분수, 탑이 차례대로 나오는데,
거기에 서 있는 조각이 다 비겔란의 작품이다.
처음엔 벌거벗은 남녀의 형상에
역시 성적으로 개방적인 북유럽이구나 했는데,
보아하니,
조각이 단지 남녀의 에로틱한 모습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표현한다.
흔히 유럽에서 만나는 고전적 조각들이
그리스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비겔란 공원의 조각들은
그냥 “사람”이 모티브다.
그리고 남자는 근육이 있고,
여자는 최상의 비율을 가진
이상화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신체를 묘사한다.
그리스도교적 엄숙주의 속에서 만들어진
유럽의 고전적 조각들이
나풀거리는 옷을 좀 입거나,
나뭇잎이나 포즈로 음부를 가리는 것과 달리
비겔란 동상들에선
약간의 가림도 없는 그냥 전라의 모습이다.
고전미술에서처럼 어떤 옷이나 장신구나 상징으로
그 지위나 정체를 드러내며,
잘 알려진 특정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아무런 장식 없는 알몸을 통해
익명의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관계와 보통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게 처음엔 이상하더니,
계속 보니 또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 공원이 20세기 초에 조성된 거니,
오슬로 곳곳에 있는,
자연스러운 몸을 한 전라의 "사람” 조각들도
비겔란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그 다리를 지나면, 이제 분수가 보인다.
이 분수는 원래 오슬로 시내 의회 건물 앞 광장에
설치할 계획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란다.
그런 목적 때문에
좀 더 고전적으로 설계를 했는지,
다리 위의 조각들과 달리,
분수 조각들의 육체는 덜 노출적이다.
그리고 “사람" 각각보다는
분수와 나무, 그리고 군중이 더 두드러진다.
분수의 조각은 매우 조화롭고 아름답지만,
그래서 좀 더 흔한 현대 조각 같고,
비겔란의 특별함이 덜 느껴진다.
(동영상)
거기서 계속 걸어가면,
멀리 입구에서부터 보였던 높은 기둥이
눈 바로 앞에 나타난다.
이 거대한 모놀리스(Monolith, Monolitten)는
"하나의 돌"이라는 어원에 걸맞게
정말 하나(mono)의 돌로 만든 거란다.
이 기둥에는 121명의 사람이 새겨져 있고,
높이는 약 14미터다.
나는 조각의 인간들이 너무 절망적으로 보여서,
무언가를 피해서
곧 떨어질 듯이 위태위태하게 올라가는
아비규환의 탈출로 받아들였는데,
작가의 의도는
신성함과 구원을 향하는 인간의 열망이란다.
모노리스 가장 바깥에는
역시나 알몸의 남녀가 조각된 문이 있고,
그 안쪽에는 인생의 순환을 표현한 조각들이
모노리스를 둘러싸고 있다.
그 조각들 안의 인간은
홀로 있지 않고,
타인과의 어떤 관계 속에 있다.
거기서 계속 더 올라가면,
별자리가 새겨진 해시계가 있고,
그 뒤에
인생의 바퀴(Wheel of life, Livshjulet)가 서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남자, 여자, 아이들의 육체가 고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영원을 상징하고,
인생의 여러 단계, 인간의 다양한 감정 등
이 공원 조각들의 주제를 최종 정리하는 작품이다.
그 인생의 바퀴 뒤로는 그냥 주택가가 있고,
그 양 옆으로는
이제 나무와 풀밭만 있는 공원이 펼쳐지는데,
매우 강렬하고 자극적인 비겔란 조각들과 달리,
그 주변 공원은
풀밭도 매우 넓고
나무도 크고 나뭇잎도 무성하고
목가적이고 편안하다.
조각을 보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이
여기에서는 그냥 무상으로 바뀐다.
그렇게 비겔란 공원에서는
문화와 자연을 모두 즐길 수 있다.
공원 입구 쪽에는
오슬로 시 박물관(Oslo City Museum, Oslo Bymuseum)도 있다.
백야라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산책하다가,
밤 11시 다 될 때까지 있다가 떠났다.
보통 여행할 때 시청은 밖에서만 봤는데,
오슬로 시청(Oslo City Hall, Oslo rådhus)은
관광객이 즐겨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다.
9:00-16:00 무료입장 가능하고,
여름에는 무료투어도 할 수 있다.
지금 보니,
그 투어 없이 방문할 수 없다고 쓰여 있는데,
내가 갔던 2018년 6월에는 그런 안내문도 못 봤고,
투어에 끼지 않고
그냥 혼자 들어가도 제지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투어를 하면서 봤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특정한 주제의 전문적인 투어를 하려면,
30명 인원으로 45분 정도 진행되는
2000-2500크로네(30만원 내외)의 유료 투어를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옛 시청 건물이 너무 작아 옮겨서 새로 지은
현재 오슬로 시청 건물은
1950년에 건설되었고,
그래서 매우 20세기적인,
각지고 투박한 빨강 벽돌 건물이다.
전반적으로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건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20세기 초에 건설된 스톡홀름 시청도
붉은 벽돌 건물이다.
단 스톡홀름 시청은 탑이 하나인데,
오슬로 시청은 동쪽과 서쪽에 탑이 두 개다.
두 탑 모두 중간에 사람 형상처럼 보이는 게 있고,
동쪽 탑 위에는 49 개의 종이 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투박해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건물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장식이 많다.
정면 오른쪽에는 금빛 천문학 시계가,
그리고 가운데 부분 가장 위에는
정면을 향해 서 있는 벌거벗은 인간이 있다.
"오슬로 소녀(Oslopike, Oslo girl)"라는 작품인데,
성별이 명확하지 않은,
그냥 하나의 "인간"을 형상화한 것 같아 보인다.
정문 위에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금빛 부조가 있고,
정문 앞에는 두 마리 백조가 조각된 분수가,
멀리 오슬로 시청 앞의 다른 건물 위에는
커다란 사람 조각이 서 있다.
분수 양 옆 통로에는 노르웨이 신화나 전설의
모티브인 듯한 부조들이 있고,
그 가운데는 정면을 향해 선
남자와 여자의 부조가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고전건축에서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 설치한
마스카론(mascaron) 같이 보이는 용도 있다.
1910년대 처음 설계되고,
1933년부터 1950년까지 건설되었다는
오슬로 시청의 외관은
그 오랜 기획기간의 미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용이나 천문학 시계, 종 같은 고전 건축의 디테일과
각진 실루엣과 붉은 벽돌, 현대적 부조 같은
현대 건축의 디테일이 혼합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오슬로 시청의 미학적 가치는
뭐니 뭐니 해도 인테리어에 있는 것 같다.
두꺼운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면
시야에 나타나는 거대한 홀(Radhushallen)과
그 홀 안의 예술적 디테일이 정말 아름답다.
시청의 외관과 마찬가지로
홀의 인테리어도 이것저것 좋은 걸 다 모아놔서
좀 too much인 감이 없지 않지만,
그것들 각각이 아름답고,
나름 일관성이 있고,
또 서로 그런대로 잘 어울려서
난 마음에 들었다.
남쪽에는 있는 거대 벽화에는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구체적 형상으로 그려져 있고,
북쪽에 있는 거대 벽화에는
주로 노동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모티브가 같아도,
계급 이데올로기가 너무 노골적인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별로 아름답지 않은데,
여기 그림은 그런 게 없어서
작위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색채가 밝아서 그런지,
그림이 밝고 노동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동쪽 벽의 아래쪽 벽엔 또 다른 구상화가,
위쪽 벽엔 회색조의 기하학적 무늬가 있다.
마치 앉아서 그림을 감상하라는 듯이,
의자도 놓여 있다.
2층으로 오르는 서쪽 벽에도
기하학적 무늬와
구체적 그림이 공존하는데,
그 구체적 그림은 오슬로 문장에 나와 있는
수호성인 할바르다.
홀 동쪽에는 또 작은 방이 있고,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테마와 화려한 색조의
그림이 붙어 있다.
창문 밖으로는 두 아이를 양손에 잡은
여자의 동상이 보인다.
잘 보이진 않지만,
오슬로 동상들의 관습상,
아마 여자 등 뒤에는 남자가 서 있는 것 같다.
1층 동쪽 의자에 앉아서,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천장 무늬도 예쁘다.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은
이 종 옆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더 멋진 공간들이 나타난다.
오슬로 시청 2층에서 가장 중요한 방은
아마 도시 운영 회의실(Bystyresalen)일 것이다.
인테리어에 목재가 많이 사용되어 따뜻하고,
매우 작고 아늑한 공간이다.
회의실 정면엔 할바르 성인과
7개의 미덕을 그린 테피스트리가 있고,
그 아래엔 나무로 만든 할바르 성인 부조가 있다.
그 방을 나가면 높은 천장에
노르웨이 전설이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운 방들이 나온다.
어떤 방은 천장까지 빼곡히 그림이 있고,
한쪽 벽은 기하학적 노르딕 문양이 채우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데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아름답다.
그렇게 계속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 보면,
다양한 노르딕 문양으로 가득한,
좀 더 고급스러운 방들이 나타난다.
금빛, 은빛 장식 없이도
그냥 그 문양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다시 시청 밖으로 나오면,
동쪽 벽에 알버틴(Albertine) 부조가 있다.
노동자 계급으로 보이는 남자와
귀족 남자 사이의 귀족처럼 보이는 여자가
노동자 남자와 손을 잡고 있는 걸 보고,
난 무슨 계층을 넘어선 사랑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전 이 동네에서 성매매가 많이 행해졌고,
당시 가난 때문에 성매매하게 된
이 지역 여성을 그리고 있는
19세기 소설 "알버틴(Albertine)"을
모티브로 하고 있단다.
현재 노르웨이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라고 들었고,
그렇다면 이들에게도
그게 대수롭지 않은 일은 아닐 텐데도,
그런 어두운 과거를 이렇게 작품으로 승화해서
공공장소에 전시하다니,
이 동네 사람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그 남쪽에는 어부 분수가 있다.
바다에 면한 시청 남쪽에는
어김없이 수호성인 할바르가 보인다.
내 사진 중에는 없는데,
이 위의 벽에도 커다란 할바르 부조가 있다.
시청 남쪽에는 노동자들의 동상이 서 있다.
전투적으로 즐거이 노동을 하기 보다는,
조금은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어서,
소련식의 노동을 독려하는 선동 목적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함을 표현하려 세운 조각 같다.
오슬로 시청 서쪽 벽 위에는
11세기 노르웨이 왕
하랄 시구르손(Harald Sigurdsson) 부조가,
그 아래에는 건설노동자 부조의 분수가 있다.
오슬로 시청 서쪽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북쪽 입구 옆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시내에서 오슬로 오페라 쪽으로 걸어갔는데,
가는 길에 있는 크리스티안 프레데릭스 광장(Christian Frederiks plass),
"태양과 지구(Solen og Jorden)"라는 조각에
또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직립 자세로 서 있는 게 보인다.
오슬로엔 이런 스타일 조각이 진짜 많다.
위 사진 뒤 흰 건물이 오페라 하우스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Oslo Opera House, Operahuset)는
2008년 새로 문을 연,
빙하를 콘셉트로 디자인한 흰 건물과
바닷빛을 담은 파란 유리창이
색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현대 건축이다.
건물 자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상 1층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약간 경사가 진 지붕에 오르면서
천천히 산책하며,
바다와 오슬로 시내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은 목가적이기보다 현실적이지만,
그래도 바다라서,
시각뿐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다 그냥 좋다.
남쪽 바다 위 빙하의 한 조각처럼 생긴 조형물은
“She Lies (Hun ligger)”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이다.
조류와 바람에 따라 계속 모습을 변하며,
바다 위에 떠 있게 만들어져 있단다.
바다 건너 서쪽엔 시가지가 보이고,
북쪽엔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오페라 하우스 안에 들어가면,
높은 천장이 시원한 느낌을 주고,
한쪽의 나무 벽은 또 따뜻한 느낌이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공연을 보고 싶은 공간이다.
19세기 이전 건축이 거의 없는 오슬로는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도시인데,
"개성 없음"이 될 수도 있는 그 현대적임이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같은 건축에서
특별한 미래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 같다.
그리고 새 국립미술관도
지붕은 기울어지지 않은,
비슷한 느낌의 흰색 건축이던 걸 보면,
어쩌면 오페라 하우스가
미래 오슬로 건축 스타일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인지도 모르겠다.
오슬로 시 내외의 교통의 요지이자,
가장 붐비는 장소는 오슬로 중앙역인 것 같다.
밤낮으로 사람과 차들이 북적댄다.
그 오슬로 중앙역 근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은
오슬로 대성당(Oslo Cathedral, Oslo domkirke)이다.
오슬로의 중심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진 후
17세기 후반에 처음 세워진
노르웨이 복음주의 루터교 대성당인데,
2010년에 리모델링하여,
새로 막 지은 성당처럼 말끔하다.
개신교인데도 노르웨이 루터교는
대성당이 있는 걸 보면,
천주교처럼
교회, 성직자들 사이의 위계를 인정하나 보다.
노르웨이 인구의 50%가
루터교인 노르웨이 교회(Church of Norway, Den norske kirke) 소속이고,
약 30%가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슬로 대성당은
노르웨이 왕가의 결혼식 장소였을 정도로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대성당은 정말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성당 안의 인테리어는
다른 유럽에서는 보지 못한,
매우 노르웨이적인 느낌이다.
지금의 오슬로 시가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17세기 크리스티안 왕이
계획적으로 만든 곳이라,
길이 반듯반듯한 직각이고,
풍경도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그래도 걸어보면 조금씩 다른 디테일들이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역사적, 행정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건축들도 있다.
19세기 중반에 여러 양식을 혼합한 절충주의 건축
노르웨이 의회(Stortinget, The Parliament)도
그중 하나다.
여름엔 평일, 봄가을엔 토요일에
무료 투어도 제공한다.
찾아보니 2019년 가을 시즌엔
토요일 10시, 11시 30분에 투어가 있는데,
아마 다른 시즌에도 오전에 투어를 할 것 같다.
(2019년 봄가을 노르웨이 의회 무료 투어)
https://www.stortinget.no/en/In-English/About-the-Storting/Guided-Tours-of-the-Parliament-building/
나는 늦은 시간에 가서
투어는 못하고 그냥 겉만 봤는데,
의회 앞이 작은 공원이어서,
그 앞 발코니에 서면
시야도 확 트이고 기분도 좋다.
그 의회 앞 공원을 따라 걸어가면,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국립극장(Nationaltheatret, National Theatre)이 보인다.
19세기 말에 건설된 오슬로 국립극장은
오슬로 시내에서 보기 힘든
매우 고풍스러운 건축이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극장 중 하나라는데,
다른 유럽 대극장에 비해 좀 아담한 느낌이다.
극장이 처음 문을 여는 날에도 입센이 참석했고,
가장 많이 상연되는 작품도 "입센"이며,
극장 밖 왼쪽에도 "입센"의 동상이 서 있고,
극장 전면에도 "입센"의 이름이 붙어 있는,
"입센 극장"이다.
극장 앞 오른쪽에 있는 동상은
Bjørnstjerne Bjørnson라는
노르웨이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고 한다.
국립극장 뒤쪽엔 대학 광장(Universitetsplassen)이 있고,
Domus Bibliotheca,
Domus Media,
Domus Academica라는
19세기에 만들어진
3개의 비슷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서 있다.
그중 가운데의 Domus Media는
그리스식 이오니아 기둥을 가진
신 고전주의 건축이다.
처음 건축 당시엔 법학, 의학대학이 사용했던
Domus Media는 현재 법학대학으로만 사용되는데,
날씨 좋은 여름날
그 앞의 너른 광장과 그 앞 계단에 앉아,
앞의 작은 공원을 바라보며 광합성하면 참 좋았다.
그러고 보면,
아테네도 그렇고, 빈도 그렇고,
19세기에 건설된 많은 유럽 대학 건물들이,
그리스 건축을 차용한 신 고전주의 양식이다.
오슬로에는
또 다른 중요한 신고전주의 건축이 있는데,
바로 19세기 중반
대학 건물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왕궁(Det kongelige slott, The Royal Palace)이다.
노르웨이 왕궁은
오슬로 시내 서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나는 왕궁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너무 열린 공간에 있어서 좀 놀랐다.
왕궁 뒤로는
왕궁 공원(Palace Park, Slottsparken)이 있는데,
거기도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여름엔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유료 투어를 할 수 있으며,
티켓은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할 수 있다.
베르겐에만 가도 그렇지 않던데,
오슬로는 유독 자연스러운 육체의
벌거벗은 남녀의 형상으로 넘쳐난다.
비겔란 공원은 말할 것도 없고,
시청에도 남자와 여자 조각과 그림이 곳곳에 있고,
그냥 거리에 있는 조각도 그런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어떤 것을 상징하는 포즈를 하여,
어떤 특별한 행위나 이념에 대한 상징이기보다
그냥 태초의 남자와 여자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다.
여성의 경우
서유럽이나 남유럽의 고전 미술에서처럼
관능미를 살린 아름다운 육체가 아니라,
이상적이지 않은 매우 자연스러운 몸이다.
남성의 경우도,
고전미술에선 다비드 말고 그런 조각이 별로 없고,
현대 조형에서도 공공장소의 남자의 전라 조각은
유럽에서도 흔치 않은데,
(지금 기억나는 거는 사라예보의 조각과
베오그라드의 거대 동상인데,
둘 다 논쟁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슬로엔 여자뿐 아니라
벌거벗고 정면을 향해 그저 서 있는
힘과 근육이 강조되지 않은 남자의 조각도 많다.
예술이 묘사하는 인간의 신체가 꼭
이상화되고 아름다울 필요는 없는 거다.
처음에 난 상징 없는 "벌거벗음"에 집중하며,
오슬로 곳곳의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 동상이
좀 더 자유롭고 덜 보수적인
북유럽식 성의식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를 항상 함께 세우고,
여자의 몸을 남성의 시각에서 재단하지 않았기에
그 다음엔 그걸 북유럽식 페미니즘,
혹은 북유럽식 남녀평등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좀 더 자주 그런 공공 조형에 노출되니,
여자가 더 많은 권리를 누리니,
남자가 더 많은 권리를 누리니 하는 걸 따지는
한국식의 기계적 평등이 아니고,
남녀에 관계없이 인간임이 중요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어도 소중한,
그런 “인류애”적 관점의 평등을,
인간에 대한 존중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척박한 기후와 토양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녀와 인종에 상관없이 협력하고 상생해야 하고,
그럴려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야 했을 거다.
같은 맥락에서 이민자에게도 좀 더 너그럽고,
교통에서도 사람은 차보다 우선되었을 거다.
그러다가 또 계속 그런 공공 조형을 접하니,
이들이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느낌이 든다.
“무단횡단”보다 더 먼저 쓰여 있던
오슬로 현지인이 되는 법이
Do not touch us,
즉, “우리와 접촉을 피하라”는 거라,
단순히 오슬로인들 그리고 노르웨이인들은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프라이버시를 중시해서,
타인과의 물리적 접촉은 꺼리고,
물리적 거리는 유지해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래서,
정서적 접촉을 그리워하고,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싶은 숨은 열망이,
도시 곳곳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의 형상으로 구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슬로에 유난히 많은 인간의 조형들에서
자꾸만
사람의 온기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