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이퍼 대로”, 작고 고요한 강, 전망 좋은 언덕
"모스타르"도 그렇고,
"메주고리예"도 그렇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가기 전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떤 분명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사라예보"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어렴풋이
'수도니까 대도시겠지' 싶기만 했지,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사라예보 다녀오고 나서도 그렇다.
물론 사라예보 가기 전과 후,
그 이유가 다르다.
사라예보 가기 전에
그 도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이미지가 없던 거고,
사라예보를 보고 난 지금은
그 도시가 가진 이미지가 너무 많아서,
그 중 어느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 포스트의 프로필 사진 고르는데도
한참 고민했는데,
뭘 넣어봐도 사진 하나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지난 포스트에서 살펴봤던
사라예보 구시가의 서쪽 끝에서
티토 거리(ulice Maršala Tita)를 따라 걸으면,
또 다른 사라예보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아래 지도 [28번]에서 [8번] 사이
사라예보 구시가는 지난 포스트에서 둘러 봤으니,
이번에는 구시가 지도 밖 서쪽 방향으로
직선 도로를 따라 걸어가보자.
그 루트에서 첫 등장하는
[지도 33번]에 표시된 명소는
16세기 건설된 알리 파샤 모스크(Alipašina džamija, Ali Pasha Mosque)다
그 모스크 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그 길 북쪽에
하스타하나(Hastahana) 공원이 있다.
잔디밭과 나무가 있는 흔한 아담한 도심공원인데,
내가 갔을 땐 비가 와서 사람들이 없었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도시 사라예보는
대륙성 기후라 여름 날씨가 서울이랑 비슷했다.
한국보다 습도는 훨씬 낮았지만,
낮 기온이 높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또 좀 시원해지고 그랬다)
보통 여름엔 야외 영화를 상영하거나,
월드컵 같은 중요 스포츠 경기를
대형화면에 보여주는 등의 공공행사를 하고,
겨울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문화적 공간이다.
이 공원에선 2005년 독일 예술가가 설치한
펑크한 조형물도 볼거리다.
쇠파이프로 거대한 관악기를 만들어 놓은
아방가르드한 현대적 구조물이
이곳이 젊은이들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녀노소 모두 즐겨 찾는 휴식처란다.
그 서쪽에 있는 성 요셉 성당(Saint Joseph's Church, Crkva svetog Josipa)은 가톨릭 성당으로,
1936년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 체코 건축가가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고전적인데,
가까이서 보면 새 건물 같다.
대부분의 사라예보 건축들과 마찬가지로,
1992-95 보스니아 전쟁 중 크게 파손되었다가
비교적 최근에 재건되어서
더 새 건물 같아 보이는 것 같다.
성당 앞에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남쪽으로는,
강 건너까지 연결되는 큰 길이 보인다.
여기서 밀랴츠카 강 쪽으로 꺾어지면,
강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건축들과 함께
19세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 시작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
20세기 말의 역사와 조우한다.
갈림길 서쪽으로 우뚝 솟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 청사(Council of Ministers of Bosnia and Herzegovina, Vijeće ministara Bosne i Hercegovine)는
1992년 세르비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었다가,
2006년 재건되었다.
보스니아 전쟁 사진 찾아보면 자주 등장하는,
폭격 맞아 불타는 고층 건물이 이거다.
이제 말끔히 복원된 그 건물 앞엔 즈고시차의 스테차크(Zgosca's Stecak, Zgošćanski stećak) 카피본이 서 있다.
스테차크(Stećak)는 오스만제국 지배 이전 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전통 묘비로,
보스니아뿐 아니라
인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에서도 발견되지만,
보스니아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보스니아식 키릴문자인
보산치차(Bosančica)로 쓰여있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몇 년 전 UNESCO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바로
”즈고시차의 스테차크”이며,
다른 스테차크와 달리
글이 없이 그림만 그려진 게 특징이다.
그래서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도 있는 이 스테차크는
찬찬히 보며 "그림을 읽는" 재미가 있다.
정부 청사의 입구 앞의 바닥엔
심상치 않은 붉은 선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건 1992-95년 보스니아 전쟁 중
이곳에서 숨진 사람의 핏자국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 청사 북쪽 길은
공식명칭이
즈마야 오드 보스네(Ulica Zmaja od Bosne Street),
즉 “보스니아의 용”이라는 뜻의 길이지만,
흔히 사람들은 스나이퍼 대로(Snajperska aleja)
라고 부른다.
1992-1995년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나고,
사라예보가 봉쇄되었을 때,
이 길에 있는 고층 빌딩에 스나이퍼들이 숨어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총을 쐈다.
그래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는데,
1000여명이 부상을 당하고,
2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 “스나이퍼 길” 위엔
그 때를 기억하기 위해 일부러 표시해 둔
붉은 핏자국이 여기저기,
아는 사람만 알아 볼 수 있게,
아무 설명도 없이 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무지 소름 끼치는 장소인 건데,
20여년 간 이곳을 지나다닌 사라예보 시민들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밟고들 지나다닌다.
그 밖에도 사라예보 곳곳에서
당시 전쟁의 흔적과 추모비를 찾아볼 수 있다.
이건 "스나이퍼 대로"의 추모비.
밀랴츠카 강변엔 그 때 맞은 총구멍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도 있다.
창문과 에어컨은 멀쩡한 걸 보면,
일부러 총구멍 자국을 남겨둔 것 같다.
구시가엔
0년0월0칠 이 장소에서 세르비아 악당들에게 사라예보 시민 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죽은 자들에게 연민과 안식과 고요를.
코란을 익히고, 기도하고, 기억하고 상기하십시오.
사라예보 시민들
라고 쓰인 흰색 석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사망년도로 보아,
보스니아 전쟁 때 사망한 것이 틀림 없는
사람들의 명패가 벽에 붙어있기도 하다.
티토 거리의 벨키 공원(Velki park)엔
1992-95 사라예보 봉쇄 때 사망한 어린이 추모비(Spomen-obilježje ubijenoj djeci opkoljenog Sarajeva 1992–1995)가 서 있다.
이 추모비 뒤쪽엔
500여명의 어린이 이름이 적혀 있다.
정부 청사 서쪽에는
19C 말 체코 건축가가 건축한,
신 르네상스 양식의 익숙한 외관과 거대한 규모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Bosnia and Herzegovina, Zemaljski muzej Bosne i Hercegovine)이 있다.
입장료는
성인 6마르카(약 4천원), 미성년 3마르카,
입장시간은
화-금:아침 10시-저녁 7시,
토,일:아침 10시-낮2시.
https://www.zemaljskimuzej.ba/en
이 길의 벤치는 신기하게도
앉을 때 받침을 내리는 접이식 벤치다.
그런데 이런 게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 서쪽으로는 역사 박물관(Historical Museum of Bosnia and Herzegovina, Historijski muzej Bosne i Hercegovine)이 있다.
입장시간은 매일 아침 9시-저녁 7시,
입장료는 성인 5마르카다.
국립박물관과 역사박물관 사이엔
이 돌 아래에는 전쟁과 냉전의 희생자들의 추모비가 있다.
라고 쓰인 크고 하얀 돌이 서 있다.
스나이퍼 대로 건너편 북쪽엔
19세기 말 세워진,
현대적이면서 또 고풍스러운 디테일의
기술고등학교(Srednja Tehnička škola)
건물도 보이고,
예쁜 색과 디자인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확 띠는
Hotel Europe Group 건물도 보인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최근 건축 같아 보이지만,
1980년대 유고슬라비아 시절 건축되어
보스니아 전쟁 당시 언론사들의 본부로 사용됐던,
사라예보 현대사의 증인이다.
1986년 건설된 그 동쪽의 쌍둥이 빌딩은
“모모-우제이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모모와 우제이르(Momo i Uzeir)는
인기 유고슬라비아 라디오 코믹극의 등장 인물로,
한 명은 세르비아인, 한 명은 보스니아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이 좋게 마주 서 있던
세르비아인, 보스니아인 건물은
1992-1995년 사라예보에서
보스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이 전쟁을 벌일 때,
크게 파괴되었었다.
이 쌍둥이 건물도
보스니아 전쟁 자료 사진으로 자주 등장한다.
사라예보를 동서로 관통하는
밀랴츠카(Miljaсka)강은
"보스니아"란 이름의 기원이 된
"보스나"강의 지류인 작고 좁은 강이다.
적어도 밀랴츠카 강 상류는
강보다는 시냇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 그 작은 강가를 따라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건설된,
아름다운 19세기 유럽 건축들이 즐비해서,
사라예보에서 가장 포토제닉하고,
걷기에도 가장 좋은 곳인 것 같다.
이건 밀랴츠카 강 서쪽의 수아다, 올가 다리(Suada and Olga bridge, Most Suade i Olge).
1992-95년 보스니아 전쟁의
첫 희생자 이름이 붙은 다리다.
19세기 말 건설된 그 동쪽의 철교는
파리 에펠탑을 만든 에펠이 설계했단 설이 있어
에펠 다리(Eiffelov most),
여기가 스켄데리야 동네라
스켄데리야 다리(Skenderija most)라고도 불린다.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면 매단 열쇠가 달려있는
사랑의 다리고,
"Sarajevo with love"라는 커다란 하트도 있는데,
이 다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투박한 매력을 반감시키는,
안 어울리는 구조물 같다.
그 동쪽으론
사라예보 미술 아카데미 학생들의 디자인으로
2012년 건설된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다리가 보인다.
Festina lente는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의미의 라틴어인데,
이 다리부터 이제 동쪽으로
다리도 훨씬 근사해지고,
강변의 건축들도 근사해지기 시작해서,
그 말이 무색하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관광객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페스티나 렌테 다리 바로 남쪽엔
이 다리를 만든 건축가들의 모교인
사라예보 미술 아카데미(The Academy of Fine Arts, Akademija likovnih umjetnosti) [지도 26번]가 있다.
비엔나, 부다페스트에서 많이 본 건물 같다 했더니,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건설된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 건축이란다.
당시에는 복음주의 성당이었는데,
1980년대부터 미술 아카데미 건물이 되었다.
이 근처엔 미술 아카데미뿐 아니라,
사라예보 대학도 있어서,
페스티나 렌테 다리를 건너서
북쪽으로 가면 학술서점과 펑키한 카페들이 있다.
난 거기서 프리슈티나에서도 봤던
스위스 예술가의 국제적 프로젝트,
"무슈 샤(Monsieur Chat)"도 만났는데,
이 동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좋았다.
사라예보 미술 아카데미 건너편에
눈에 띄는 노란색 건축은 사라예보 대학(University of Sarajevo, Univerzitet u Sarajevu) 법학부이다.
그 동쪽으로 1888년 건설된 철교
초바니야 다리(Čobanija most)를 지나,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Narodno pozorište) [지도 26번]이 보인다.
국립극장 입구는 강변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 북쪽에 있는데,
국립극장 입구가 있는
브라닐라치 사라예보(Branilaca Sarajeva)길에도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건설된
흔한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이 서 있다.
난 이 근처에 있는 보스니아 문화센터(Bosnian Cultural Center, Bosanski kulturni centar)에서 콘서트도 봤다.[지도 25번]
강변을 산책하다가
바슈차르시야의 밤(Baščaršijske noći)이라는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를 보고,
밤에 그걸 보러 간 거다.
2007년부터 매년 하는 무료 콘서트인데,
http://www.bascarsijskenoci.bkc.ba/
7월 1일부터 31일까지
매일매일 다른 레퍼토리로 진행되며,
내가 갔을 땐 보스니아 대중 가수의 콘서트를 했다.
밤 9시에 시작했고,
2시간 정도 하는 것 같은데,
난 11시 넘으면 너무 늦을 것 같아,
중간에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보스니아 음악도 듣고 아주 좋았다.
"국립극장"과 "보스니아 문화센터" 동쪽으로
무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지나,
1886년 건설된 또 다른 철교 추무리야 다리(Ćumurija most)를 지나면,
사라예보 여행의 핵심 중 하나인
16세기 오스만제국 시절 건설된 터키식 돌다리,
라틴 다리(Latin Bridge, Latinska ćuprija)가
눈 앞에 등장한다.[지도 18번]
바로 이 다리에서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실제적 지배 하에 있던
20세기 초,
“남슬라브인의 통일 국가”를 꿈꾸던
세르비아계 청년들,
즉 동방정교도 보스니아 청년들은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 계획을 세우게 된다.
황태자가 탄 차가 지나갈 루트가 너무 뻔해서,
당시 여섯 명의 청년 암살자들이
그 길목마다 지키고 서 있었는데,
열의만 있고 군사적 훈련 경험은 부족했던
10대 후반-20대초반 청년들은
타이밍을 놓치고 제대로 시도도 못했다.
그렇게 황태자의 차를 그냥 지나 보내고 있던 중,
강가에 있던 암살단 한 명이 수류탄을 던졌는데,
빗나가 다른 사람들이 부상당하고,
황태자 암살 시도는 실패했다.
암살 실패자는 자기 조직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러 강물에 뛰어들었는데,
독약은 듣지 않고, 강물의 수위가 너무 낮아서,
그 자살도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사라예보를 흐르는 강은 딱 봐도
폭도 좁고, 수위도 낮고, 물살도 빠르지 않은
작고 고요한 강이던데,
거기에 빠져 죽을 생각을 하다니,
여러모로 미숙한 암살단이었던 거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상황이 종료된 줄 알았고,
시청[지도 7번]에 무사히 도착한 황태자 부처는
자신들이 건재함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부상자를 위로하러 병원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온다.
역시나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하고,
아직 그 근처를 맴돌며
그 옆 카페에 앉아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암살단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황태자 부부에게 총을 발사하고,
그 병약하고 미숙한 사수가 발사한 총탄에
비운의 황태자 부부가 사망하게 된다.
워낙 왜소하고 병약해서
그 암살단의 핵심요원이 못되고,
보충병처럼 가장 마지막에 서 있었다가
우연히 암살자가 되어 체포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투옥 중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그 이후 거짓말처럼 만들어진,
“남쪽의 슬라브인의 나라”, 유고슬라비아 시절
그는 국가적 영웅이었고,
암살이 벌어졌던 그 장소엔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발자국을 박아두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발을 대보곤 했다고 한다.
80년대생인 역사투어 현지인 가이드가
어렸을 때까진 있었다는데,
1990년대 초반 전쟁 이후,
그 발자국도 제거해서 지금은 없다.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 전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영웅이었지만,
그 이후에 그는 테러리스트로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평가가
첨예하게 갈린다고 한다.
그 역사적 다리 동쪽에는
사라예보의 상징과도 같은
구 시청(City Hall, Gradska vijećnica) [지도 7번]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인 1896년 건설된,
알록달록한 줄무늬가 특징적인
신 무어 양식의 건물인데,
원래 용도는 시청사였지만,
1946년 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는
국립도서관(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of Bosnia and Herzegovina, Nacionalna i univerzitetska biblioteka Bosne i Hercegovine)으로 사용중이다.
사라예보의 다른 주요 건물과 마찬가지로,
1992-95년 전쟁에서 폭격을 당해,
오랜 복원 작업을 거친 후
2014년 다시 문을 열었고,
건물 앞 기둥에는
이 장소에서 1992년 8월 25-26일 밤 세르비아 악당들이 국립도서관에 불을 질렀습니다.
2백만권 이상의 책, 잡지, 문서가 불길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고, 경고하십시오!
라고 쓰인 석판이 있다.
사라예보 자료 사진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라예보의 건축적 얼굴인 도서관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입장료 일반 5마르카(약 4천원),
할인 3마르카,
개관시간 아침 9시- 오후 5시까지다.
구시청 혹은 국립도서관에서 북쪽으로 가면,
지난 포스트에 둘러봤던,
터키식 구시가가 나오고,
남쪽에 있는 17세기 터키식 돌다리
세헤르-체하이나 다리(Šeher-Ćehajina ćuprija)
를 건너면,
또 다른 구경거리가 나타난다.
세헤르-체하이나 다리 남쪽의 작은 집
이나트 쿠차(Inat kuća)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그 집은 원래 강 건너 구시청 자리에 있었는데,
그 집주인은 시청을 짓기 위해 그 집을 사려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료들에게
그 집을 절대 팔지 않겠다고 했다.
회유에 회유를 거듭한 끝에 결국 타협을 본 게,
그가 살던 집을 그대로 강 건너에 옮겨주는 거였다.
결국 그의 요청대로
그 집을 그대로 강 건너로 옮긴 후
지금의 그 시청을 지었고,
그 고집센 사내의 집은 이나트 쿠차(Inat kuća),
"악의에 찬 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보스니아 전통음식점이다.
이나트 쿠차 서쪽에는 작은 공원이 있고,
남쪽에는 황제 모스크(Emperor's Mosque, Careva Džamija)[지도 3번]가 있다.
15세기 사라예보 최초의 모스크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보스니아의 중요한 랜드마크다.
황제 모스크 옆길로 좀 더 걸어내려가면,
파두아의 성 안토니오 성당(Church of Saint Anthony of Padua, Crkva svetog Ante Padovanskog)[지도 2번]이 나타나는데,
20세기 초에 건축된 가톨릭 성당으로,
사라예보 내 이슬람교도나 정교신자들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중요 가톨릭 축일에
방문하는 탈 종교적 지역 명소다.
성당 동쪽엔 성당 건물과 비슷한 색의
사라예보 맥주공장(Sarajevska pivara)이 있다.
19세기 말 근대화 시기 만들어진 맥주공장은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맥주회사였고,
1992-95년 사라예보 봉쇄 기간에는
사라예보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하면 일반인도 방문이 가능하다.
http://sarajevska-pivara.com/muzej/?lang=en
사라예보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많은 주택가가 언덕에 형성되어 있어,
그 골목길에 서면,
그냥 평범한 동네에서도 사라예보 시내가 보인다.
그렇게 주변 산에서도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에,
보스니아 전쟁 기간에
스나이퍼들이 시내의 고층건물뿐 아니라,
도시를 둘러싼 산에 숨어서,
적들에게 총을 겨누었다고 한다.
스나이퍼가 사라진 지금,
그런 지형은 관광지로서 큰 장점이다.
여긴 내가 머물던 호텔 근처 동네인데,
그냥 그 동네에서 중심가 가는 길에도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아마 저 멀리 보이는 주택가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사라예보 구시가의 전경을 좀 더 잘 볼려면,
구시가 동쪽 "황색 요새(Yellow Bastion, Žuta Tabija)"에 올라가는 게 좋다.
황색 요새는 터키식 구시가 동쪽
바슈차르시야(Baščaršija)[지도 8번 근처]에서
동북쪽의 언덕으로 올라가면 나온다.
중간중간에 이정표도 보이고,
어느 정도 오르면 요새 자체도 보여서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구시가로 이어진 좁은 골목이 끝나는 큰 길에 서면,
흰색 묘비가 가득한 공동묘지와
"황색 요새"가 보이는데,
보기엔 가까워 보여도,
공동묘지 우측으로 한참 돌아가야 해서,
거기서 또 10-15분이 더 걸린다.
아래 사진에서 멀리 언덕 위로 보이는 게,
바로 황색 요새다.
이건 요새 가는 길에 있는 전통 가옥이고,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무덤은
코바치 공동묘지(Memorijal Kovači)로,
보스니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이 묻혀 있다.
아래 사진처럼 생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올라오면 입구가 보인다.
입장은 무료다.
예코바츠(Jekovac) 지역에 자리잡은 황색 요새는
"예코바츠 요새(Jekovačka tabija)"로도 불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두려움을 느낀
오스만 제국이 18세기에 지은 군사요새라서,
방어될 도시 전체를 향해 시야가 확 트여서
전망이 아주 좋다.
요새 안에 카페도 있는데,
난 친구 키아라와 멜렉을 만나러 가야 해서,
그냥 풍경만 보고 내려갔지만,
시간이 되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
멀리 다른 공동묘지도 보인다.
강물이 맑진 않다.
그래도 풍경 전체는 근사하다.
'사라예보가 이렇게 크고 예쁜 도시였구나'
싶다.
바람도 많이 불어 시원하고,
눈과 허파뿐 아니라,
마음과 머리도 확 트인다.
(동영상1: 황색 요새에서 본 사라예보 전경1)
(동영상 2: 황색 요새에서 본 사라예보 전경2)
그렇게 5-10분 황색 요새에 서 있다 내려가서,
이탈리아 친구 키아라와
터키 친구 멜렉을 만났는데,
내 얘길 듣고 나중에 여길 다녀온
키아라와 멜렉도 여기가 참 좋았다고 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2018년 7월초 여행한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국가,
즉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중에서
어느 나라가 젤 좋았냐고 물으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도시를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사라예보"를 추천할거다.
내가 방문했던 도시 각각이 다 매력이 있어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긴 어렵지만,
"추천 여행지"라면 그건 쉽다.
누군가 일부러 멀리서 방문한다면,
며칠 동안 머물러야 할 거고,
그 나라 언어를 몰라도,
그 역사를 잘 몰라도,
딱 보기에 재미있는 게 많고,
다른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잘 경험하지 못하는
그런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런 면에서
사라예보가 딱이다.
도시 자체가 커서,
볼 것도, 할 것도, 갈 데도 많은데,
그 볼거리가 다양하고 재미있고,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고,
또 역사적 의미도 크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물가도 싸다.
그리고 사실 사라예보는
나 자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기도 하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밤 늦게 떠난 꽉 찬 1박 2일 머물며,
하루 종일 열심히 다니긴 했어도,
"가진 게 많은" 사라예보를 다 둘러보기에
이틀은 너무 짧아서,
박물관도 거의 못 가고,
그냥 다 겉만 쓰윽 훑어보고 왔다.
그런데다가 사라예보는
그렇게 내가 대충 훑어본 곳 말고도
갈 만한 곳이 많다.
나중에 다시 보스니아에 여행 가게 되면
사라예보에만 4박 5일 정도 지내고,
만약에 기회가 되면
몇 주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