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 강 동쪽 건축학적 하이브리드, 그라츠 구시가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지난 포스트에선
무어 강 서쪽 좀 더 현대적인 그라츠를 둘러봤고,
이번 포스트에선
무어 강 동쪽의 “좀 더 오래된” 구시가를 둘러보며,
본격적인 그라츠 "관광"을 시작하겠다.
그라츠 구시가,
독일어로 “내부 도시"라는 의미의
"이너레 슈타트(Innere Stadt)”는
다양한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양식의 건축들의 조화로운 공존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9년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그라츠 Use-it에서
지도만 잘라내어 보면 다음과 같다.
(번호에 따른 설명이 있는 원본은 아래 링크 참고)
무어 강 동쪽에 구시가가 형성된 후
그라츠가 확장됐기 때문에,
관광객이 구경할만한 꺼리는
거의 다 무어 강 동쪽에 몰려 있다.
무어 강 동쪽 그라츠 구시가는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언덕 아래 평지의 구시가가 있고,
언덕 위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가 있다.
이번 포스트에선 우선
무어강 건너 가장 먼저 만나는
언덕 아래 구시가부터 돌아 보겠다.
쿤스트하우스 [지도 07번]에서
무어 강 건너 곧장 걸어가거나
프란치스코 성당 [지도 24번] 옆길로 가면
주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구시가 중심의 하웁트플라츠(Hauptplatz)는
[위 지도 A]
“주 광장(Main Square)”이라는 의미로,
그라츠가 상업과 무역의 중심이 된 중세에
그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광장에서 가장 먼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17세기 말 바로크 양식의
루에크 저택(Luegghäuser)이다.
같은 색 톤의 스투코(Stucco)라는
오돌토돌한 벽면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무늬가 예쁘고,
반입체적인 기하학적 무늬의 질감이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이 독특하다.
이 근처엔 루에그 건물 말고도
이렇게 독특한 모양의 지붕도 보이고,
건물 벽면을 캔버스 삼아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을 묘사한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 넣은 건축도 있어,
한눈에 “예쁘다”는 느낌이다.
광장 남쪽에 있는,
둥글고 뾰족한 회색 지붕의
거대한 시청(Rathaus, City hall)은
19세기에 빈(Wien) 건축가에 의해
지금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건축가가 같은 건 아닌데도,
당시 유럽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 중 하나였던
제국의 수도 빈의 건축이 영향을 미쳤는지,
둥근 쿠폴과 전반적 색조가
빈의 자연사 박물관, 미술사 박물관을 닮았다.
좀 다른 모습이긴 했어도,
지금 시청 자리엔 16세기부터 시청이 있었고,
그 앞에는 수백 년간 시장이 섰던,
그라츠에서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그래서 중세시대엔
광장 가운데 세워 수치심 유발하는 형벌부터
사형까지
갖가지 형벌을 집행하는 공공장소였단다.
지금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음식 가판대가 서 있고
사람들이 많아 떠들썩한 분위기다.
광장 가운데에는
18-19세기 그라츠가 속한 오스트리아 남부
스티리아(Styria) 지역 대공후였던 요한
(Erzherzog-Johann-Brunnen, Archduke Johann)
의 동상과 분수가 서 있다.
하웁트플라츠 남쪽으로 걸어가면,
수시로 트램이 지나는 길 양 옆으로
알록달록한 예쁜 건물들이 가득한
헤렌 가세(Herrengasse)라는 길이 이어진다.
13세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매우 오래된 길인데,
원래는 뷔르거 슈트라세(Bürgerstraße),
즉 "시민(평민) 길"이라는 이름이었다가,
이곳에 귀족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15세기에 헤렌(Herren), 즉 "귀족 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건물들 외관이 기품 있다.
그 길에서 발견한 어느 어두운 아치 안에서 보는
고풍스러운 전등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유리 진열대가 예뻐서
카메라를 들었는데,
사진에 계속 트램이 찍혔을 정도로
이 길엔 트램이 자주 다닌다.
그 길 남쪽 끝에는
초록 지붕의 높은 첨탑이 보인다.
그 첨탑의 주인공인
성혈 성당(Rom. Cath. Parish Church of the Holy Blood, Röm. kath. Stadtpfarrkirche zum Heiligen Blut)[지도 37번]은
15세기 건설된 고딕 가톨릭 성당인데,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명하다.
고딕 성당에 의례 있는 흔한 스테인드 글라스지만,
2차세계대전 중 파괴된 걸
1950년대에 다시 복원하면서,
예수의 박해자들 중에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얼굴을 넣어,
오스트리아와 유럽의 현대사를
우화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그 스테인드 글라스는
이렇게 예배당 입구 복도에도 따로 전시했는데,
아래 그림의 오른쪽 상단
갈색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바로 히틀러와 무솔리니다.
그 길 남쪽 끝엔 철문 광장(The Square at the Iron Gate, Das Platz Am Eisernen Tor)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중세엔 구시가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이 자리에 성을 드나들던 "철문"이 있었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광장 중심엔 분수와
금빛 마리엔조일레(Mariensäule, Mary's Column),
즉, 마리아 기둥이 있는데,
17세기 중반 오스트리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걸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철문 광장에서 서쪽으로 가면 무어 강이 나오고,
동쪽으로 걸어가면
19세기 말 지은 신바로크 양식의 작은 건물인,
오페라극장(Graz Opera, Oper Graz)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거대한 철조 구조물
빛검(Statue Lichtschwert, Light Sword)이 있다.
19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그라츠 출신 예술가가 설치한 구조물로,
"자유의 여신상"을 닮은 이 작품은
높이도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똑같지만,
횃불 대신 검을 들고 있다.
1992년 당시 그라츠 오페라하우스에서
"America”라는 오페라를 상연해서
이 앞에 자리 잡게 되었단다.
다시 구시가 중심부로 돌아와보면,
헤렌 가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그라츠 란트하우스(Grazer Landhaus)[지도 35번]다.
현재 스티리아 주 의회(Landtag Steiermark)로
사용되는 란트하우스는
중부 유럽에선 흔치 않은,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가 건설한
베네치아식 초기 르네상스 건물로,
그 건축학적 의미가 크다고 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관광객이 보기에도 아름다워서,
미학적 가치도 큰 것 같다.
안뜰의 여러 층의 개방형 복도와 둥근 아치는
역시나 초기 르네상스 건축인
그라츠 에겐베르크 궁,
그리고 폴란드 크라쿠프의
바벨성의 건축과 유사하다.
지붕의 용머리 가고일도
크라쿠프 바벨 성에 있는 용머리를 연상시킨다.
지붕의 창문도 곡선으로 한껏 멋을 냈다.
공공 건물이라 건물 안으로 올라가는 길은
일반인들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지만,
란트하우스 호프(Landhaushof),
즉 그 안뜰까지는 관광객의 입장이 가능한데,
안뜰의 건축뿐 아니라 설치물들도 볼거리여서,
화려한 마니에리즘 걸작이라는 분수도
비록 이제 물이 나오는 입구는 폐쇄된 상태이지만,
디테일 하나하나가 섬세한 예술 작품이고,
켄타우로스를 형상화한 듯한,
구석에 있는 현대적 조각 작품도
이곳과 매우 잘 어울린다.
큰 안뜰 옆 작은 안뜰에도
장식이 많은 우아한 분수가 있고,
그 뒤에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식 궁정 안뜰을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스티리아 주 의회로 사용되는 건물이니,
작은 궁정 한쪽 벽에는 스티리아 문장인
흰색 표범이 특유의 자태를 뽐내고 있고,
작은 지붕 위에도 표범이 하늘을 날고 있다.
(동영상: 그라츠 란트하우스)
다른 오스트리아 도시들에 비해
일조량이 많은 날씨와 온화한 기후 때문에
그라츠는
"오스트리아 속 작은 이탈리아"라고 불린다는데,
난 "오스트리아 속 작은 이탈리아"인 그라츠가
시각적으로 가장 잘 구현된 곳이
바로 란트하우스인 것 같다.
란트하우스 바로 남쪽 노란색 윤곽의 흰색 건물은
무기고 (Landeszeughaus, Styrian Armoury)다.
아주 좁고 높은 건물의 입구 위에는
그라츠 문장인 흰 표범이 있고,
문 양옆으로는
전쟁의 남신 아레스(로마식으로 마르스)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로마식으로 미네르바)가 있다.
15세기에서 19세기 사이 남동유럽에서 맹위를 떨친
오스만제국과 가까운
오스트리아 남부 최전방에 자리 잡은 그라츠는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에 침입에 대비하면서
군사력을 키워갔고,
17세기에 이 무기고를 세웠다.
그 위협이 수그러든 후 마리아 테레사 여제는
무기고를 없애려고 했지만,
국민들, 특히 스티리아 주민들의 반대로
그대로 남겨두었고,
현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옛 무기 전시공간이다.
그라츠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인데,
난 별로 무기에 관심이 없어서 건너뛰었다.
(그라츠 무기고 개장 시간과 입장료)
https://www.museum-joanneum.at/en/styrian-armoury/your-visit/opening-hours
구시가 중심부가 화려하다면,
구시가 뒷길은 아기자기하다.
루에그 저택 왼쪽에 남북으로 뻗은
스포르 가세(Sporgasse)는
그라츠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 하나로
말의 박차(Spor)에서 나온 이름이다.
스포르 가세(Sporgasse)에 들어서면
화려한 금빛 장식 간판 “seit 1688(1688년부터)”가
눈에 띈다.
간판이 예쁘기도 예쁘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1688년이라는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단번에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는데,
나중에 보니 조거(Sorger) 빵집은 여기뿐 아니라,
그라츠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체인점이다.
체인점이어도 규모가 작고,
빵 종류도 많지 않아 동네빵집 같은 분위기고,
300년 넘은 전통이 괜한 건 아니어서,
빵도 전반적으로 맛있고,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거 같다.
그 금빛 간판 건너편 심상치 않은 초록색의
유겐트슈틸 저택(Jugendstil-Haus)은
16세기부터 있던 거지만,
20세기 초에 덧붙여진 외벽은 아르누보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에서는
아르누보 디테일을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슈티겐 성당(Stiegenkirche) 입구가 보인다.
14세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그라츠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서인지,
“계단(Stiege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기서 계속 걸어 올라가면 보이는
사우라우 저택(Palais Saurau mit Türkenfigur)은
언뜻 보기에 건물 자체는 매우 평범한데,
고개를 들면 보이는 장식 때문에 특별하다.
흰색 터번을 두르고 칼을 든 터키인의
상반신 장식이 그것인데,
전설에 따르면,
그라츠 언덕의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 성을
포위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 군대의 대장이
이 저택에서 식사를 하던 중,
성에서 대포가 날아와서
대장이 먹던 고기를 날려버렸고,
화가 난 대장은 그라츠에서 철수했단다.
전설답게 이야기의 인과관계가 엉성하지만,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고
고기 한 조각이라는 최소한의 손해를 입은 채로,
전쟁이 끝났다는 플롯이
아이가 만들어낸 악의 없는 거짓말처럼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라츠 슐로스베르크는 한 번도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18세기에 오스트리아가
오스만제국에 대승한 걸 기리며
터키 병사를 새겨 넣었을 거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나는 이걸 보면서
터키 병사가 벽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감금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렇게 터키를 가두겠다는 의도로
이런 걸 건물에 새겨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계속 올라가면
오른쪽에 카멜리터플라츠(Karmeliterplatz)라는
커다란 광장이 나오는데,
2018년 6월 말엔 한참 월드컵 중이어서,
저녁에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대형 화면으로 축구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언덕 위에서 그냥 환호 소리만 들었는데,
나중에 날짜를 보니,
아쉬운 함성이 가득했던 그 경기는
한국-독일전이었던 것 같다.
이 근처에 슐로스베르크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그 광장에서 좀 더 아래로 내려와서
호프 가세(Hofgasse),
즉 “안뜰 길”이란 의미의 좁은 길 쪽으로 꺾어지면,
튜턴 기사의 집(Deutschritterordenshaus, Teutonic Knights' House)이 보인다.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건물의 안뜰이
후기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점의
혼합된 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개방형 층계와 원주가 달린 복도가 그것이라고
여행안내문이 설명하고 있었는데,
워낙 건축을 잘 모르니,
한참을 서서 봐도 난 잘 모르겠다.
그 동쪽의 에데거-탁스 제과점(Hofbäckerei Edegger-Tax)은
자그마치 1569년 시작된,
그라츠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다.
지금 위치로 이전한 건 19세기 말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목재로 만든 외관은
350살보다는 훨씬 더 젊어 보인다.
그 긴 역사만큼 놀라운 건,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실에
빵을 납품했다는 이력이다.
그래서 입구 중앙에
금빛의 쌍두 독수리 황실 문장이 붙어 있는데,
지금도 당시 황제가 즐겨먹던 그 빵들을 팔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빵과 쿠키 가격이 꽤 비쌌는데,
난 점심 먹고 들렀다 다음에 또 와야지 하고는
결국 그 맛은 못 보고 왔다.
일본 도쿄에 이 제과점의 분점이 있다고 하는데,
어차피 거기도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길을 계속 가다 보면,
프라이하이츠 플라츠(Freiheitsplatz),
즉 "자유 광장"이 나온다.
원래는 오스트리아 황제의 이름이 붙은
프란츠 플라츠(Franzplatz)였고,
그래서 지금도 그의 동상이 서 있기도 한데,
1918년 1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왕정 대신 공화정이 시작되었을 때,
바로 이 광장에서 선포되어,
“자유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래 사진은 그 광장 동쪽 벽에 붙어 있는 건데,
왕관을 보아하니 오스트리아 왕가의 문장인가보다.
그 동쪽 그라츠 부르크(Burg Graz, Graz Castle),
즉 예전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왕궁이었고,
지금은 스티리아 주 행정부 관청인 건물 안에 있는
이중나선 계단이 또 그라츠의 중요 명소다.
아래 사진 가운데 볼록한 각진 기둥 안에 있다.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15세기 말 만들었다는
이중나선 계단(double spiral stairs, Doppelwendeltreppe)은
양쪽으로 갈라져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그게 양쪽으로 나눠졌다가 만나고,
또 나눠졌다가는 또 만난다.
결국은 만나기 때문에 그라츠 현지인들은
"화해의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 건물 입구 근처에 있는 히브리어는
14세기 유대인 랍비의 묘석인데,
이 벽 동쪽이 유대인 묘지임을 드러낸다.
왕국인 부르크 동쪽에 있는
부르크 토어(Burgtor, Castle Gate)는
현재 그라츠에 남아 있는 유일한 중세 성문으로
그라츠 구시가의 동쪽 경계다.
이 경계를 넘어가면,
그라츠 도시공원(Grazer Stadtpark, Graz city park)이라는 거대한 녹지가 나타난다.
위 그라츠 지도 중앙에
위 아래로 긴 오른쪽 초록색이 바로 거긴데,
그라츠 중심부 녹지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크고,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도,
아니 오히려 그런 게 없어서,
그냥 앉아서 쉬거나 산책하기 좋은 공간으로,
도시 속 그냥 편안한 자연이다.
그라츠 부르크 건너편에 자리 잡은
그라츠 대성당(Graz Cathedral, Domkirche zum Heiligen Ägydius in Graz)은 [지도 F]
왕궁인 부르크를 짓게 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릭 3세 때인 15세기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원래는 황제의 가족을 위한 성당이었는데,
18세기 말 그라츠 교구를 대표하는
대성당(Cathedral)으로 승격해서 지금에 이른다.
황제가 지은 데다가,
또 유럽 그리스도교 극성기 말 고딕 건축이라,
규모가 매우 크고,
또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그 긴 세월 동안 덧붙여진 디테일도 많다.
이 대성당은 에디지오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라,
장애인과 걸인의 가톨릭 수호성인인
그의 동상도 있다.
물론 이 동상엔 이름이 쓰여 있기도 하지만,
사슴에게 활을 쏘고 가서 보니,
그가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더라는 전설이 있어서
가톨릭 성인 그림이나 조각 옆에 사슴이 있으면
그가 바로 에디지오 성인이다.
아래 사진의 부조는 북쪽 벽이었던 것 같은데,
1914와 1918이라는 숫자를 보니,
1차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건가 보다.
안타깝게도 1939년부터 1945년,
역시나 오스트리아, 독일의 주도로 시작된
2차세계대전에서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건 또 어떻게 용서받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성당 서쪽에는
신의 역병(Gottesplagenbild, "God's Plagues")이라는 프레스코가 있다.
이게 카피본인지 원본인지는 모르겠지만,
15세기 말 그라츠에서
페스트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걸 인간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해석했고,
신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런 프레스코를 그린 것이다.
페스트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메뚜기떼,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오스만투르크의 칩입이
프레스코에 묘사되어 있다.
대성당 바로 남쪽엔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묘(Mausoleum of Emperor Ferdinand II, Mausoleum von Kaiser Ferdinand II)가 있다.
난 처음에 성당인 줄 알았다가
무덤이어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여긴 무덤이면서 또 성당이었다.
성당은 학문의 가톨릭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카타리나 성당(Katharinenkirche)인데,
그 서쪽에 그라츠 대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 그라츠 대학은 그라츠 동북부에 있다)
17세기 초반 황제 페르디난트는
자신이 죽기 전 미리 이탈리아 건축가에게
이 특별한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황제가 살아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바로크 무덤은
그의 아들이 결국 완성시켰다.
황제는 이렇게 자기 무덤을 성당 옆에 만들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던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개혁을 탄압했고,
결국 신구교 간 전쟁인
30년 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입장료는 일반 4유로,
입장 시간은 10:30-12:30, 13:30-16:00이라는데,
난 늦게 가서 들어가지 못했다.
이 성당의 동쪽 길로 걸어 내려가면
구시가 외곽의 오페라하우스가 나오고,
서쪽 길로 내려가면
다시 구시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성당에서 서쪽 길로 내려가다
오른쪽 첫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광장이 있고,
거기에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이 있다.[지도 E]
글로켄슈필은 독일 타악기다.
19세기 후반 한 양조장 주인이
이 광장에 저택을 구입하고,
지붕에 24개의 종으로 된 자명종을 달았다.
나중에 그는 그걸 그라츠 시에 기증했지만,
2차세계대전 중 무기 만드는 데 종을 사용해서,
한동안 연주가 중단되었다가
전후에 복원되었다.
11시, 3시, 6시에 인형이 나와서 춤춘다는
그 시계탑을 구경하러
저녁 6시 5분 전에 갔는데,
이런!
대형 시계의 시간 자체가 5분이 느리다.
지금까지 이렇게 퍼포먼스하는 시계탑 구경 가서
시간이 늦은 시계를 만난 건 처음이다.
시간이 정확하지 않을 거면,
도대체 공공장소에 왜 시계를 다는 거지?
빈에서 느낀 것처럼
역시 오스트리아는 독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계가 빠른 것보다는 낫다고
애써 합리화하며,
그 시계에 맞춰 5분을 더 기다리니,
그 5분 늦은 시계로 정각(?) 6시에 시작해서
스티리아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 인형이
3번 나와서 춤추다 들어간다.
한 5분 계속 그러는 것 같다.
(동영상: 그라츠 춤추는 시계)
사실 “정각”이 정확하지 않은 데서
이미 “시계”에 좀 실망을 했고,
춤추는 인형의 수나 춤사위(?)나 좀 단조로우면서
괜히 길기만 해서,
“쇼”에는 좀 실망을 했는데,
“무대”, 즉 건물과
그 동네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그 춤추는 시계 건물은
19세기 말 아르누보 스타일로,
디테일이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고,
이 주변 동네는 건물은 매우 고전적이지만,
숨어 있는 디테일은 현대적이고,
때때로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와 역사를 가진 관광지 말고,
그냥 구시가 곳곳 좁은 골목을 걸으면서,
그라츠 시내를 탐험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 "안전한 탐험"을 하기에
그라츠 구시가는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너무 크지도 않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그 탐험의 경계를
구시가 위와 바깥으로 넓혀,
자타공인 그라츠의 얼굴,
구시가 위쪽 슐로스베르크,
그리고 그라츠 외곽의 궁전인 에겐베르크,
이렇게 두 "베르크"를 둘러보겠다.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