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oga Jan 01. 2017

"유럽 여기서 시작되다", 그단스크 조선소

"자유로 향하는 길" 끝에서 만나는 연대(Solidarity)의 감동


2016년 8월 바르샤바에서 그단스크로 가기 전,

그 전주에 그단스크에 다녀온다며

폴란드어 수업을 빠졌던,

노르웨이 친구 아드리안에게

그단스크에 대한 정보 좀 달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그런 질문을 할 거라 생각을 못했는지,

아님 뭔가 이야기할 게 마땅히 없었던지

살짝 당황해하더니,

"연대(Solidarność) 박물관"에 갔다왔다는

얘기를 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서 그랬는지

아님 정말 거기만 다녀온건지

딱 그 얘기만 했다.


근데 그의 그런 대답이 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단스크 다녀온 한국인이라면

어김 없이 "예쁜" 구시가 이야기를 할텐데,

유럽 애라,

더군다나 북유럽 애라

자기나라에도 비슷한 거 있는 구시가나 바다보다는

"연대(Solidarność)"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어

좀 신기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 그런 박물관이 있었나?'


싶었다.


2013년 8월에 그단스크 갔을 때

바웽사의 조선소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여행안내책자에 따로 표시가 안 되어 있길래

'저기쯤이 조선소가 아닐까?'

마음 속으로 추정만 하고,

그냥 급하게 사진을 찍으며

도시고속철도 SKM을 타고 그 옆을 지나쳐갔는데,

조선소뿐 아니라

그런 박물관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2013년 8월, Gdynia에서 Gdańsk 가던 SKM안, Poland, 저 뒤에 하얀색 STOCZNIA가 '조선소'라는 뜻의 단어다.)
(2013년 8월, Gdynia에서 Gdańsk 가던 SKM안에서 보인 그단스크 조선소, Poland)


그래서 2016년 여름에 그단스크 갈 때는

무엇보다도

2013년에 놓친 그 박물관에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박물관

2014년에 개관한거다.


그래서 2013년에는

여행안내책자에 나오지 않은거다.


근데

그단스크 구시가가 덜 흥미로울 유럽인들뿐 아니라

그단스크가 초행이 아닌 나같은 여행자뿐 아니라

그단스크 방문객이라면

한번 꼭 들러야할 곳이 이 박물관이다.


"자유 도시" 그단스크의

가장 선명한,

손에 잡히는 상징이자

1990년대부터 현재의 "자유" 폴란드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설명하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연대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유럽 연대 센터

(Europejskie Centrum Solidarności, European Center of Solidarity)"이며

그단스크 북부,

그 유명한 조선소 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단스크 "유럽연대센터" 위치, 초록색 부분이 대략적 구시가다)


구시가 Centrum(센터)역에서

트램으로 3정거장 거리인데,

트램 정거장 Plac Solidarności(연대 광장)에서

내리면 바로 그 앞에 있다.


버스정거장 Wały Piastowskie에서

내려도 된다고 하는데,

버스정거장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조선소와 멀지 않을거다.


지도를 보아하니 걸어갈 수 있겠길래,

난 걸어갔다.


여행안내책자에는 따로 표시 안 된

관광지 밖 현지인의 공간인

그단스크 구시가 바깥 풍경도 궁금하고,

날씨도 좋았기 때문이다.


워낙 난 걷는 걸 좋아해서

특히 여행가면

급하지 않는 한,

웬만한 거리는 그냥 걸어가는 편이고,

한국에선 걸으며 매일 듣고다니던 음악도

잘 안 듣는데,


그건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돌아다닐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안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각뿐 아니라 청각과 다른 감각들도

모두 열고 걸으면서

온몸으로

낯선 공간을 체험하며,

그렇게 그 공간을 알아가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알아가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이걸 누리려면

조금 일찍 나와서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


여느 때처럼

그렇게 조선소를 향해 걸어가다 보니

어떤 건물 위로

눈에 익은,

하얀색 바탕에 붉은 글씨가 쓰인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 깃발도 보이고

길 위에서 뭔가 특별한 게 등장한다.


어딘지 모르게 쌩뚱맞아 보이는,

서로 다르게 생긴 두 벽의 일부가 세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레흐 바웽사가 올라갔던 조선소의 벽이고,

다른 하나는 베를린 장벽이란다.


붉은 벽돌벽에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 투쟁과,
독일 통일 및 유럽의 정치적 통합에 있어 폴란드가 기여한 공헌을 기리며

라고 쓰여있는 걸 보니,


그게 베를린 장벽이고,


옆에 있는 좀 더 높은 회색벽이

바웽사가 올랐던 그단스크 조선소 벽인가 보다.


(2016년 8월, 조선소 가는 길,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가는 길, Gdańsk, Poland)


뜬금 없이 등장한 그 무언가 쌩뚱맞아 보이는

열린 벽들 아래에는

의미 심장하고,

괜히 뭉클한

글귀가 쓰여 있었다.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글을

폴란드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체코어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유럽어로

바닥에 적어놓은거다.


그 다국어적으로 반복되는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글귀는

연대 광장(Plac Solidarności) 가까이까지

쭉 이어진다.


(2016년 8월, 조선소 가는 길,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가는 길,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가는 길, Gdańsk, Poland)


그렇게 "자유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

도착한

"연대 광장(Plac Solidarności)"에는

높다란 기념비가 서 있다.


그건 1970년 추락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

(Pomnik Poległych Stoczniowców 1970,

Monument to the Fallen Shipyard Workers 1970)인데,


1980년 그 유명한 폴란드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의 파업이 있기 10년전

1970년에 있었던 대규모 시민 봉기에서 사망한

4명의 조선소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타결 조건 중 하나로

노조측에서 요구한 게

이 기념비 건립이었고,

이에 따라 1980년 12월 완공된 것이라고 한다.


이 추모비는 43미터의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고,

윗부분엔 세 개의 십자가가

[이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지만

아마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아래쪽엔

조선소 노동자들의 생활 모습이 새겨져 있다.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1970년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 Gdańsk, Poland)
(2016년 8월, 1970년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 Gdańsk, Poland)
(2016년 8월, 1970년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 Gdańsk, Poland)(
(2016년 8월, 1970년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 Gdańsk, Poland)


추모비 뒤로 높지 않은 기다란 회색 담이 보이는데

거기엔 이런저런 기념 추모 푯말들이 있고,

그 뒤로 벽돌색 유럽연대센터 건물이 보인다.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그 긴 벽의 오른쪽 끝에는

시편 29장 11절을,

198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Czesław Miłosz)

폴란드어로 번역한 글이 적혀있다.


Pan da siłę swojemu ludowi.
Pan da swojemu ludowi błogosławieństwo pokoju.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권능을 주시리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로 강복하시리라.(가톨릭 성경 번역)      


그리고 그 오른쪽에

"그단스크 조선소(Stocznia Gdańska)"라는

커다란 흰색 글자가 보이는데

거기가

조선소와 "유럽연대센터"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이 정문 말고 뒤쪽으로,

그리고 회색담 왼쪽 끝에서도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정문에 선명하게 쓰인

"그단스크 조선소"라는 글자에 끌려

계속 그쪽으로 걸어갔다.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아마도 예전엔 자동차가 드나드는 통로였을

대문은 단단하게 닫혀 있는 채로,

그 위에

폴란드 국기와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플래카드,

요한 바오로 2세 사진과

폴란드를 수호하는 "검은 성모상"이 달려 있고

바닥엔 꽃다발이 놓여 있다.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하지만 그렇다고

자동차가 이 조선소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폐쇄적인 문이 폐쇄된 대신,

문이 없는 열린 통로가 열려서,


현재 자동차가 조선소를 드나드는 통로는

좀 더 왼쪽과 오른쪽, 블록 끝에 따로 있으며,

특별한 담이나 철조망이나

그밖의 다른 경계가 없는 자연스러운 찻길로

특별한 검문 없이 오고 갈 수 있다.


아무튼 이 폐쇄된 하늘색 철조 대문 앞 바닥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작은,

한 변이 10센티 내외 정도인 동판이 박혀 있는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추락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 밑의 흙을 이 장소에서 채취했다.


이런 작은 거 하나하나를 기록해 놓은 섬세함이

별거 아닌 데 괜히 찡하고,

그 사건의 경중에 맞춰

이렇게 크기를 작게 조절한

그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그단스크 조선소 보행자 통로는 이렇게 생겼고,

지키는 사람도 없이 열려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다.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보행자 통로 들어가기 전

출입구 바깥쪽 위에는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당시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21개의 항목이

나무판에 손글씨로 적혀 있다.


원본은 아니고,

나중에 다시 적은 것이라는 설명을

박물관에서 본 것 같다.


그리고 "유럽연대센터" 박물관 안에서도

이 비슷한 걸 볼 수 있다.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이 21개의 요구사항은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Memory of the World Register)에 등재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http://www.aforcemorepowerful.org/films/afmp/stories/poland.php)

                     

1. Acceptance of free trade unions independent of the Communist Party and of enterprises, in accordance with convention No. 87 of the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concerning the right to form free trade unions, which was ratified by the Communist Government of Poland.

2. A guarantee of the right to strike and of the security of strikers and those aiding them.

3. Compliance with the constitutional guarantee of freedom of speech, the press and publication, including freedom for independent publishers, and the availability of the mass media to representatives of all faiths.

4. A return of former rights to: 1) People dismissed from work after the 1970 and 1976 strikes, and 2) Students expelled from school because of their views. The release of all political prisoners, among them Edward Zadrozynski, Jan Kozlowski, and Marek Kozlowski. A halt in repression of the individual because of personal conviction.

5. Availability to the mass media of information about the formation of the Inter-factory Strike Committee and publication of its demands.

6. The undertaking of actions aimed at bringing the country out of its crisis situation by the following means: a) making public complete information about the social-economic situation, and b) enabling all sectors and social classes to take part in discussion of the reform programme.

7. Compensation of all workers taking part in the strike for the period of the strike, with vacation pay from the Central Council of Trade Unions.

8. An increase in the base pay of each worker by 2,000 złoty a month as compensation for the recent raise in prices.

9. Guaranteed automatic increases in pay on the basis of increases in prices and the decline in real income.

10. A full supply of food products for the domestic market, with exports limited to surpluses.

11. The abolition of 'commercial' prices and of other sales for hard currency in special shops.

12. The selection of management personnel on the basis of qualifications, not party membership. Privileges of the secret police, regular police and party apparatus are to be eliminated by equalizing family subsidies, abolishing special stores, etc.

13. The introduction of food coupons for meat and meat products (during the period in which control of the market situation is regained).

14. Reduction in the age for retirement for women to 50 and for men to 55, or after 30 years' employment in Poland for women and 35 years for men, regardless of age.

15. Conformity of old-age pensions and annuities with what has actually been paid in.

16. Improvements in the working conditions of the health service to insure full medical care for workers.

17. Assurances of a reasonable number of places in day-care centers and kindergartens for the children of working mothers.

18. Paid maternity leave for three years.

19. A decrease in the waiting period for apartments.

20. An increase in the commuter's allowance to 100 złoty from 40, with a supplemental benefit on separation.

21. A day of rest on Saturday. Workers in the brigade system or round-the-clock jobs are to be compensated for the loss of free Saturdays with an increased leave or other paid time off.


이 중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과만 관련된

요구 사항도 몇 개 있지만,

대부분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

그리고

폴란드인 전체의 복지와 관련되어 있는 거라서,

그리고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이

향후 폴란드 정치와 세계 정치에 끼친 영향 때문에

이 21개의 요구사항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21개의 요구 사항에서도 보듯이

당시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은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이 아니라

폴란드인 전체와 보편적인 인류의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었기에

당시 폴란드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내었고,

결국은 폴란드 공산 정권의 뿌리를 뒤흔들고,

궁극적으로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공산 정권의 붕괴를 야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단스크 조선소 보행자 통로

뒤편에서 보면

"그단스크 조선소(Stocznia Gdańska)" 라는

글자 뒷쪽에

좀 작은

하지만 그래도 매우 잘 읽히는 또렷한 글씨로


Dziękujemy za dobrą pracę.
좋은 작업 감사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글귀일 수도 있지만,

이걸 읽으면서 퇴근했을

조선소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2016년 8월, 조선소 앞, Gdańsk, Poland)


이제 여기서 뒤를 돌면

 "유럽 연대 센터

(Europejskie Centrum Solidarności, European Center of Solidarity)"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엔

뭔가 칙칙한 색깔의 투박한 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칙칙함은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배 선체의

녹이 슨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연출된 것이라고 하니,

또 그런 칙칙함이 특별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녹슨 쇠 느낌의 벽과 철조 전면 장식 등 덕분에

2014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것 같은,

패션으로 따지면 빈티지 느낌이 나고,

이 조선소 동네에서

불편하게 두드러지지 않아

매우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건물 서쪽 옆에는

현대적 느낌의 사각 분수도 있는데,

카메라 앵글에 다 들어가지 않고

더운 날이라 사람도 많아서 그건 찍지 않았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다음은 유튜브의 올라와 있는 "유럽 연대 센터" 동영상인데,

이 영상에서 약간 과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실제로도 멋진 곳이긴 하다.


(Gdansk "유럽 연대 센터" 유튜브 동상)


그래서 이제

유럽 연대 센터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내 앞에 가던  

어떤 십대 남자애가

뒤를 돌아보더니,

내 뒤에 있던 일행에게 [아마도 부모였던 것 같다]

독일어로

"이거 봐!

Europe Starts Here! 이래."

하면서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독일인을 비롯한 서유럽인들은

보다 동쪽에 있는 유럽국가들을

"서(The West)" 취급 거의 안 한다.


우리 눈에는 서양(The West)인 그 나라들이

서유럽인들에게는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The East)"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서양의 가장 중심이 되는 지역인 유럽 대륙이

비교적 가장 최근에야 EU에 편입된

동쪽의 폴란드라는 나라에서 시작된다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고,

"유럽이 여기에서 시작된다!"라는

문구를 읽고 그렇게 삐죽거리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솔직한 반응인지 모른다.


그 다음에 그의 부모가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는

매우 짧은 내 독일어 실력으론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난 그 독일 소년 덕분에 다시 보게 된

그 문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그 1980년에 시작된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운동으로

폴란드 공산 정권이 붕괴되고,

다른 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연쇄적으로 붕괴되면서,

지금의 EU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EU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연대(Solidarity)"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가

가장 목놓아 외쳤던 가치가 바로 "자유"인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지금의 유럽을 있게 한 여러 혁명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Europe Starts Here!


라는 문구는

나에게 너무나 적절한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문구에서

나는 벌써 반쯤 이 박물관에 넘어간 채

이 건물에 입장했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유럽 연대 센터" 건물 안에 들어가면,

그냥 건물만 구경하거나,

혹은 한시적인 소규모의 무료 전시를 관람하거나,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와 관련된

상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지 갔다면

당연히 상시전을 관람해야 한다.


상시전 입장 시간은

5-8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9-4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이고,

휴관 요일은 없다.


입장료는 2016년 현재

일반 17즈워티(약 5000원),

할인 13즈워티(약 4000원)로

오디오가이드가 포함된 가격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유럽 연대 센터"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다.



상시전 입장권을 사면

오디오가이드를 받아 입장할 수 있는데,

전시는 2층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아래 그림에서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전시실은 A-G홀로 구성되어 있고,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받게 되는,

옛날전화 같이 생긴 오디오가이드를 들고 다니면서

터치스크린으로 특정 알파벳을 누르면

그 이름을 가진 홀의 전시물 설명이 시작되는데,

그걸 들으면서 감상하면 된다.


올라갈 때 직원에게 물어보니,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난 2시간 30분 걸렸다.


아마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서 그냥 쭉 걸으면

1시간 30분이 걸리고,

나처럼 오디오가이드 듣고,

그거 없이 한번 둘러보고

뭐 이러면서 걸어다니면 좀 오래 걸리나보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오디오 가이드 , Gdańsk, Poland)


나는 사실 박물관에서 가이드 따라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가이드를 통해 생생한 정보를 얻는 건

정말 고맙고 유익한 일이긴 한데,

그리고

작은 박물관에서는 그렇게 가이드를 받고나서

내 나름대로

한번 더 돌면서 구경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큰 박물관에서는

그냥 전시물만 보기에도 관람 시간이 부족한데,

그 중에서 가이드가 알려주는 것만 보고

그걸 찬찬히 훑어볼 여유도 없이

또 바삐 움직이다가

나머지 전시물들은 못보고,

다른 사람들이 흔히 보는 것만 똑같이 보고,

혹은

그것 중에서도 가이드가 선택한 것만 보고,

바삐 박물관을 빠져나가야 하는 게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다.


무언가 관람이 자유롭지 않은 느낌이고,

내 시간, 내 템포가 없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박물관에 가면 가이드 없이,

오디오가이드도 없이

그냥 움직이는 편인데,


"유럽 연대 센터"에서는

오디오가이드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으니

주는대로 그걸 받아가지고 입장했고,

막상 손 안에 최신 기계가 있으니 신기해서

그걸 작동하며 관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오디오가이드가

설명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나같이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가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레흐 바웽사가 그걸 이끌었다는 것 이외의

다른 건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좋은 가이드였다.


왜 이 박물관에서

그 오디오가이드를 입장료에 포함시켜

모든 입장객이 활용하게 했는지

그걸 써보면 알 수 있다.


덕분에 가이드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깨졌고,

다음에 다른 박물관에 가면

오디오가이드를 좀 활용해볼까 싶다.


이 박물관의

2층 (폴란드식, 즉 유럽식으로는 level 1) 전시는

다음과 같다.


A홀 : NARODZINY SOLIDARNOŚCI / THE BIRTH OF SOLIDARNOŚĆ (연대의 탄생)

B홀: SIŁA BEZSILNYCH /THE POWER OF THE POWERLESS (힘 없는 자들의 힘)

C홀: SOLIDARNOŚĆ I NADZIEJA/ SOLIDARNOŚĆ AND HOPE (연대와 희망)


즉, 그단스크 조선소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가 1980년 어떻게 결성되었는지,


그 이전에는 어떤 정부 저항 움직임이 있었고

어떤 사건들이 1980년 파업을 가능하게 했는지,


1980년 이후에 어떻게 폴란드 내에서

"연대(Solidarność)"운동이 발전되었는지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당시 36세였던 파업 주동자 바웽사(Wałęsa)가

표지에 등장한 외국 잡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레흐 바웽사(Lech Wałęsa)

1980년 이후에 국내외에서

활발한 반 공산정부 활동 및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1983년 노벨평화상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주는 갖가지 상을 수상했고,

공산 정권이 붕괴된 폴란드의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단스크 조선소 출신 노동자였기 때문에

정확한 폴란드 표준어를 구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단스크 사람들이 쓰는 방언은

바르샤바나 크라쿠프 사람들이랑

또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어 수업할 때

문법 틀리는 친구에게

선생님이

"바웽사처럼 말한다"며 농담을 했다.


그리고는 개인적으로는

바웽사를 존경한다고 덧붙였는데,

그건 외부나 내부 검열의 산물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았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대부분의 폴란드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그의 업적을 인정하고

그를 존경하는 듯 하다.


몇 년 전 폴란드 TV에서

skype로 연결한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냥 손주들과 즐겁게 살고 있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2층에서 A, B, C홀을 다 본 뒤에는

3층(Level 2)으로 올라가는데,

움직임에 불편이 없는 사람은

이런 계단을 이용한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3층의 D, E, F홀은 다음과 같은 이름이 붙어 있으며,


D홀: WOJNA ZE SPOŁECZEŃSTWEM/AT WAR WITH SOCIETY (사회와의 전쟁)

E홀: DROGA DO DEMOKRACJI/ THE ROAD TO DEMOCRACY (민주주의로 가는 길)

F홀: TRIUMF WOLNOŚCI/THE TRIUMPH OF FREEDOM (자유의 승리)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이듬해인 1981년 계엄령이 선포되어,

사람들이 체포되고,

자유가 억압되고,

연대(Solidarność)운동은 불법 행위로 간주되어,

지하 조직이 되며

역사가 후퇴하게 된 이야기가 D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Solidarność) 정신이 사라지지 않아

국내외적으로 사회 저항 운동이 계속되고,

미국,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지지와 원조를 받게 됨을 보여주는 자료가

E홀에 전시되어 있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F홀에서는 드디어 해피앤딩이 기다리고 있어,

연대(Solidarność)라는 무혈혁명으로

폴란드 공산정권이 전복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른 공산 정권들도 차례차례 무너지고

새로운 유럽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유럽의 공산정권들이

다 무너진 건 기억하고 있는데,

그 처음이 폴란드였는지는 몰랐다.


이 박물관에 가기 전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그보다 먼저인 줄 알았다.


폴란드 어디를 가나 보이는,

폴란드 국기와 마찬가지로

빨강색과 흰색으로 된

연대(Solidarność) 깃발이

왜 폴란드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지,

왜 폴란드인이 그걸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이 박물관 전시를 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정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선이 결국은 악을 물리치고

새 세상을 여는,


간만에 경험하는

현실의 해피엔딩실제화된 교과서적인 교훈

그렇게 감동적일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건데!

우리도 이게 필요한데!

지금 한국도 "연대(Solidarity)"가 필요한데!'


하지만 1980년대의 폴란드처럼 그렇게

순수한 기본 가치를 향해서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2010년대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서로 너무나 다른 가치로 뿔뿔이 흩어진

한국인들을

연대하게 할

기본 가치가 이제 없는 것 같아 답답했다.


3층의 전시는 F홀 한 귀퉁이에

유엔 인권 선언

여러 나라말로 적힌 벽으로 끝난다.


그 중에서

그냥 쓰-윽 한번 스치고 지나가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국어 글귀도 발견했다.


뭔가 뭉클했다.


(2016년 8월, 유럽 연대 센터, Gdańsk, Poland)


이 설치물 벽 옆에 있는 진짜 건물 벽에는

사람들이 이 박물관에 대한 관람 소감을 적는

명함만한 크기의 쪽지가

벽 하나에 빼곡히 꽂혀 있었고,

그 맞은 편 탁자 위에는

빈 쪽지와 연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어디 가서 이런 거 안 쓰는데,

오프라인에서 방명록 같은 것도 거의 안 쓰고,

온라인에서 상품평도 안 남기는데,


폴란드 연대(Solidarność) 운동에 감동해서,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게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벅찬 마음에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연필을 손에 잡고 썼다.


Not only Europe but also the world we dream of start here, from SOLIDARNOŚĆ!


그리고 내 이름이랑 S.Korea를 썼다


연필을 놓자마자 괜한 짓을 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이름을 지우개로 지웠는데,

너무 꾹꾹 눌러 썼는지

지워도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버릴까 하다가 그냥 벽에 걸었다.

어차피 누군가의 소감으로 가려질 테니까...


아마 지금쯤은

누군가가 쓴 다른 소감 밑에 들어갔을거다.


G홀은                                                                                                                                                            

G홀: IM. JANA PAWŁA II/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

라는 제목인데,


F홀보다 한층 밑, 2층에 있는 방으로

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그냥 거기 앉아서

명상의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폴란드인들은 90%이상이 가톨릭 신자인데다가

교황이 되어 1979년 폴란드를 방문한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존재와 그의 언행이

다음해인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을,

그리고

9년 후 공산 정권 붕괴를 가능하게 했다고

폴란드인들은 평가한다.


즉, 연대(Solidarność) 운동은 폴란드인에게

정치-사회적인 사건임 동시에

종교적 사건, 일종의 기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박물관에 교황의 이름을 딴 명상의 방이 있고,

조선소 정문 앞에도 그의 사진이 붙어 있고,

"검은 성모상"도 있고,

"연대 광장"의 추모비에는

3개의 십자가도 달려 있는거다.


그렇게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뭔가 벅찬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서서

1층에서 기념품을 산 후,

건물 밖으로 나왔다.




뭔가 그냥 가긴 좀 허전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멀리 조선소의 일부인 듯 보이는 기중기가 있길래

그걸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아래 지도에서 빨강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유럽 연대 센터"인데,

그 건물을 뒤로 하고

그 옆에 나 있는 작은 길을 따라 북쪽,

즉 바다쪽으로 걸어올라갔다.


(그단스크 "유럽 연대 센터" 주변 지도, 센터 바로 아래 초록색이 "1070 추락 조선소 노동자 추모비"다)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멀리서 보이던 기중기 쪽으로,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갔는데,


진짜 조선소가 시작되는 경계부터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게

철조망으로 벽이 둘러있고

출입구가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 그냥 기웃기웃거리면서 사진만 찍었는데,

이상하게 기중기가 움직이지 않고,

큰 배가 보이긴 한데,

배도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이 조선소 망했나?


그해 봄,여름 한국 조선업이 위기라는,

그리고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조선소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뉴스를 접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고


남의 나라 일이지만,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연대를 상징하는 곳이라 걱정스러웠다.


철조망 안 쪽에서

수위 아저씨처럼 보이는 분이 나타나

'쟤는 뭔가?'하는 표정으로 나를 흘끗 쳐다보길래,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폴란드어로 물었다.


"죄송한데, 저 혹시 여기 문 닫았나요

(Przepraszam, ale czy tutaj jest zamknięte)?"


대답이 없길래

내가 질문을 잘못했나 싶어

재빨리

"기계들이 작동하지 않아서요(Bo maszyny nie działają)."

라고 덧붙이며,

기중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에 아저씨가

"일 끝나서 다들 집에 갔어요

(정확하게 기억 안나는데,

Kończyli pracę. Wrócili do domu라 했던 것 같다)"

라고 대답했다.


그말에 웃으며


"네, 그래요? 감사합니다(Tak? Dziękuję bardzo)."


라고 말하고, 조선소 구경을 계속했다.


그 때가 오후 4-5시였는데,

조선소 사람들은 이렇게 일찍도 퇴근하는구나

신기해하며,

이렇게 근무여건이 좋다니

폴란드 이제 정말 제대로 유럽국가구나 감탄하며,


이런 "역사적이고", "뜻깊은",

지금의 유럽을 만든,

그런 조선소가 망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그렇게 조선소 철조망 담을 따라 걷다보니,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온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 나오는 건물이

 그 미술 전시회장인데,

예전에 공장으로 쓰던 걸

지금은 현대미술 전시 시설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날도 무언가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관람객도 없고

뭔가 휑한 느낌이어서

들어갔다 그냥 나와서 정확하겐 모르겠는데,

뭔가 매우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인 것 같긴 했다.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2016년 8월, 조선소, Gdańsk, Poland)


그렇게 2016년 여름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를

벅찬 마음으로 다녀오고 나서

9월에 우연히 오랫만에 한국을 방문한

예전에 알던 폴란드 선생님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선생님이

요즘 폴란드 젊은이들은 역사를 모른다고 하시길래,


내가

폴란드 여기저기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도 많고,

어디 가나 "연대(Solidarność)" 깃발도 있고,

폴란드인은

역사를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 연세가 좀 있으시고 매우 지적이신 선생님께서,

그 정도는 성에 안 차시는지,

"그냥 기념비만 있을 뿐 기억하지 않는다"

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그러셨다.

"그단스크 조선소가 망해서 참 안타깝다"고.


깜짝 놀란 내가

그 조선소에서 나눈 대화를 말씀드렸다.


근데

"아마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이제 다시는 안 온다"

는 의미였을 거라고 농담하시며,

아니라고,

망한 거 맞다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4-5시에 벌써 다 퇴근한 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그래도 인적이 없는 게 이상하고,

조선소가 활발히 돌아가는 그런 동네에서

조선소 관련 공장이 아닌,

그걸 대신해서 아방가르드한 미술전시공간이

들어선 것도 이상하긴 하다.


아마 떠듬떠듬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그 아저씨는

슬픈 진실을 알리고 싶지 않으셨나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단스크 조선소가 망했다는 소식에

무언가 연대(Solidarity)에 대한 희망마저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2016년 11월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시작은 "국정 농단"이라는 단어였지만,

내 생각에 그보다 더 중요한 단어는

그걸 통해 촉발된 "연대"인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외치는 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 보였던

그 추상적인 가치인 "정의"였다.


아, 우리도 이게 가능했구나!


21세기에도 이게 가능하구나!


싶은 마음에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아직 이 연대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 지

어떻게 끝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시작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더더욱

지금의 "유럽이 시작된" 그단스크 조선소에 대해서,

레흐 바웽사가 올라갔다는

그 회색 담벼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거기

그 담벼락 위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가운 발트해의 치열한 자유도시 그단스크(Gdańs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