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녹색 수도(European Green Capital) 후보의 진수
2013년 폴란드에 갔을 때,
폴란드어 선생 에바(Ewa)한테서
"바르샤바가 유럽 수도 중에서 가장 녹색인 곳
(Warszawa jest najbardziej zieloną stolicą w Europie)"
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걸
"바르샤바가 유럽 수도 중 가장 녹지가 많은 도시"
라고 이해했고,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 다음 2016년 여름에 바르샤바 갔을 때
폴란드 사람들한테,
'난 바르샤바에 녹지가 많고, 공기가 좋아서 좋다.
바르샤바가 유럽에서 "가장 녹색인 곳"이라고 들었다'
라고 말하면,
그걸 들은 바르샤바 사람들이
"난 그런 말 처음 듣는데, 정말이냐?"
며 놀라 나한테 되물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거지?'
싶어 폴란드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더니,
"European Green Capital Award"라고
2010년부터 주는 상을
바르샤바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즉,
공인된 "유럽 녹색 수도"인 적은 아직 없었던 거다.
하지만 매년 실패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매번 입후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고,
결국 2018년에는 후보에 올랐다고 하니,
내년에는 공식 타이틀을 거머쥘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European Green Capital Award는
반드시
진짜 행정적인 수도(Capital)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녹색(Green)"을 기준으로 수도급인 도시면
수도가 아니어도 수상이 가능하다.
그러니, 폴란드 도시 중에서 유독 바르샤바가
계속 여기에 도전하는 것이
바르샤바가 수도여서만은 아닌거다.
이것과 관련된 폴란드 뉴스 기사를 찾아보니,
바르샤바는
숲이 도시 전체 면적의 약 15%를 차지해서
녹지 자체의 비중만 보면 나쁘지 않은 편이란다.
유럽 수도 중에
녹지가 이 정도 비중인 데가 거의 없단다.
어쩌면 에바가 그 때 얘기했던 그건
그 공인 받은 명칭이 아니라
그 때 내가 그 말을 들었던 바로 그 순간에
그렇게 이해했던 것처럼,
그냥 "녹지가 가장 많은 유럽 수도"라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녹지 비율 말고도
친환경적 정책,
친환경적 교통 수단,
친환경적 쓰레기 처리,
공기의 질,
수돗물과 화장실 정화시설,
강의 오염도 등이 심사에 들어가는데,
이 부분에서는
바르샤바가 최고 점수를 받지 못하나 보다.
아무튼 European Green Capital Award
수상 여부와 상관 없이
바르샤바엔 녹지가 많다.
이건 "녹색 도시" 바르샤바 홍보 영상인데,
첫번째는 폴란드어 버전, 두번째는 영어 버전이다.
(동영상 1: 바르샤바의 숲과 만나세요: Poznaj leśną stronę Warszawy - YouTube)
(동영상2:City with a green heart-Youtube)
그 때 에바가 해준 얘기에 따르면
바르샤바엔 숲이 큰 게 두 개 있단다.
그 때 그녀는
바르샤바 모양을 간략하게 둥그렇게 그리고,
위에 하나, 아래 하나
이렇게 두 개의 숲을 표시했는데,
내가 그 때 위쪽 동네에 살고 있어서
위에는 어딘지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아래는 어딘지 잘 모르겠다.
내가 2013년 바르샤바 남쪽에 있는
빌라누프(Wilanów)에 갔을 때
그 바깥에 있는 숲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숲이 꽤 크고, 사람 손이 덜 가서
꽤 야생의 상태였고, 나무도 울창했었다.
한 두 시간 정도 걸어서 겨우 밖으로 나왔었던,
그 숲을 말하는 건지,
아님 그 근처의 다른 숲을 말했던 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 때 이해를 못했으니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아무튼 2013년에도, 2016년에도
바르샤바 서북부에 머물렀던 나는,
그 때 에바가 이야기했던
바르샤바 북쪽의 숲을 잘 기억했다가
그곳에, 즉, 비엘라니 숲(Las Bielany)에 갔었다.
비엘라니(Bielany)는
바르샤바 서북부의 지역 이름이다.
아래 지도의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인데,
우리로 치면 "구" 정도의 행정단위인 듯하다.
비엘라니(Bielany)라는 말은
'흰색'을 의미하는 형용사 biały[비아위]에서
나온 거란다.
예전에 크라쿠프에 세워진
"카말돌리 수도원(Klasztor kamedułów)"이
흰색이어서
그 인근 지역을 "비엘라니"라고 불렀는데,
그 수도원이 나중에
바르샤바에도 세워지면서,
그 "비엘라니"라는 지역명도 함께 왔다.
바르샤바의 비엘라니 숲(Las Bielany)은
그 비엘라니 지역 중에서도
비스와 강변에 가까운 넓은 녹지를 얘기한다.
바르샤바의 숲 "라스 비엘라니"에 가기 위해선,
트램 6번이나 17번을 타고 가서
Las Bielański(비엘라니 숲) 역에서 내리면 된다.
여기는 트램 레일이 숲을 따라,
숲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트램만 타도 벌써 숲에 들어선 것 같다.
내가 트램 한 정거장 정도를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비엘라니 숲(Las Bielany) 전체가
이런 정거장 3-5개 정도의 길이다.
(동영상3: Las Bielany 가는 트램 안)
어릴 적 동화책 읽을 때에
"숲속에 --가 살았다"는 부분에서
나는 항상 머릿속에 산을 그렸었다.
상상이라는 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밖에 할 수 없는 건데,
아마 내가 어릴 적 본,
나무가 가장 많은 공간이 산이었을 거고,
어쩜 동화책이나 만화책 속,
한국인이 그린 삽화 속
공간도 아마 산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유럽에는 산이 아닌 숲이 많다.
평지가 많은 폴란드도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숲은 의례 평지다.
비엘라니 숲(Las Bielany)도 마찬가지다.
평지에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중간에 길이 나 있어
그 길을 따라 숲 속을 걸어다닐 수 있다.
중간에 길이 없는 숲도 나오고
거기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평지다 보니
숲 속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고,
대부분은 괜히 길 없는 데를
괜한 모험심에 불타
굳이 꾸역꾸역 헤치고 들어가기 보다는
그냥 길이 난 곳을 걷는 편이다.
사실 그게 오랜 시간동안 조성된
아름다운 숲을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인 것 같다.
비엘라니 숲은 넓어서
중간에 동서로 자동차가 다니는 통로도 만들어놨다.
아래 사진에서 계단 뒤 울타리 쳐진 곳이 찻길이다.
예전에 에바가 바르샤바 숲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
거기에 있는 학교와 수도원에 대해서도 알려줬는데,
2013년 때는 거기는 못 봤고,
2016년 때는 거기까지 가봤다.
이 곳의 수도원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카말돌리 수도원"이라 불리고,
크라쿠프 근처에도 같은 이름의 수도원이 있다.
크라쿠프의 수도원은
직접 가보진 못하고 그냥 사진만 봤는데,
숲 속의 성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진을 그렇게 찍어서 그런지,
수도원 치고 너무 으리으리해보이기까지 한다.
바르샤바의 카말돌리 수도원은
그것에 비하면 그냥 소박한 수준이다.
17-18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후기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UKSW 대학교(Uniwersytet Kardynała Stefana Wyszyńskiego, Cardinal Stefan Wyszynski University)가 있다.
수도원엔 특별한 경계가 없어서,
그냥 자유롭게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이 오두막 옆 한 구석에는 양과 당나귀가 있었다.
여기 이런 게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폴란드 아이들 옆에 서서 한참을 쳐다봤다.
이 수도원 말고도
비엘라니 숲의 한 구석은
체육 교육 대학 (Akademia Wychowania Fizycznego)과 맞닿아 있다.
여기는
비엘라니 숲에서 통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찻길로 나와 따로 입구를 찾아 들어가야 하지만,
그래도 생태적으로 숲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대학 캠퍼스에도 커다란 나무가 많다.
그리고 여기엔
"자연 기념비(Pomnik Przyrody)"의 차원에서
바르샤바 시에서 특별 관리한다는
안내문이 쓰인
크고 오래된 특별한 나무도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고,
바람에 사각사각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리고 이 커다랗고 기품있는 나무와
이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려는 시의 노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동영상도 찍었다.
(동영상 4:AWF의 오래된 나무, a.k.a. 자연 기념비)
이 두 학교를 뺀 나머지 부분은
그냥 다 나무고 숲이다.
나뭇잎이 울창한
키 큰 나무가 빼곡히 서 있는 그런 숲.
그 숲을 걷는 건 정말 좋은데,
그 좋은 걸 말로도 묘사를 하기 어렵고,
2차원적 사진으로 보여주기도 어렵다.
그냥 가서 직접 걸어봐야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동시에 느끼는
그 만족감을 제대로 알 수 있다.
화창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 앞에 펼쳐지는 짙은 초록의 향연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의 지저귐도,
콧 속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도,
옷깃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발 밑에 느껴지는 흙과 작은 돌멩이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2016년엔 동영상도 찍었다.
1년 만에 다시 보는데, 영상만 봐도 참 좋다.
(동영상 5: Bielany 숲 어딘가)
난 여름에만 가서 초록만 봤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사이트엔 4계절의 사진이 있다.
다른 계절에 가도 좋을 것 같다.
[LAS BIELAŃSKI ZDJĘCIA]
http://www.bielanski.republika.pl/las_bielanski_zdjecia/index.html
2013년에 비엘라니 숲의 존재를
늦게 알게 되어서
거의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에 갔었는데
그 때 너무 좋아서,
2016년엔 바르샤바 도착하자마자
거의 여기부터 갔었다.
더구나 2016년 봄에는 워낙
미세먼지로 한국의 공기 질이 말이 아니었어서
치유적 자연이,
그리고
맑은 공기가 매우 궁했더랬었다.
물론 그래서 비엘라니 숲을 걷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그래서 매일 갈 것 같았는데,
결국 거의 두 번 정도 갔나보다.
굳이
비엘라니 숲(Las Bielany)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사실
바르샤바는 곳곳에 녹지가 많아서
도시 곳곳에서 자연을 만나기 때문이다.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바르샤바에서 지내면
자연에 대한 목마름이 별로 없어진다.
특별히 어딘가를 가지 않고
그냥 트램을 타고 가다가도
창문에 나뭇잎이 쓸리는 경험을
심심치 않게 할 수 있다.
(동영상: 바르샤바 시 어딘가)
도시 곳곳에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가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포진해 있고,
내가 바르샤바 간 게 항상 여름 휴가철인데다가
바르샤바에 워낙 인구밀도 자체가
그리 높지 않으니,
벤치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빈 자리가 항상 있다.
쉴려고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는 햇볕이 내리쬐는 자리를,
누군가를 햇볕을 막을 수 있는 자리를 좋아해,
각자 취향에 맞는 곳에 앉으니,
딱히 하나의 좋은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자리 맡으려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다니다가 앉고 싶을 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
커다란 나무의 풍성한 그늘에 앉아서
혹은 햇볕이 드는 좀 더 따뜻한 자리에 앉아
나뭇잎 소리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나뭇잎 흔들리는 걸 눈으로 보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혹은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앉아 있을 수 있다.
내가 여름의 바르샤바를 좋아하고
폴란드에 가면
굳이 "관광객들이 볼 게 많지 않은"
바르샤바에 짐을 푸는 이유 중 하나도 이거다.
여기 가면
나뭇잎 무성한 커다란 나무 사이를 걸으면서
혹은 그 밑에 앉아서
기분 좋게
편안하게
제대로
쉴 수 있다.
근데
내가 2016년 폴란드어 수업에서
"난 바르샤바가 좋은데,
녹지가 많고 나무가 많아서 공기가 맑기 때문이다."
라고 했더니,
노르웨이에서 온 아드리안이 그랬다.
"그거 재밌다. 나랑 완전 반대다.
난 여기서 부족한 게 자연이다."
라고.
그 때는 깜짝 놀라서
"정말?"
이냐고 되묻고,
그냥 신기해하며,
그냥 난 바르샤바 정도의 녹지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 구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충분할 뿐 아니라
넘치게 만족스러운
그 바르샤바의 녹지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그들의 "호사로운" 생활환경이 어떤 건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다음엔 돈을 좀 많이 모아서
"바르샤바의 숲"
말고
"노르웨이의 숲"에 한번 가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