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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Sep 16. 2017

바르샤바 도심 속 "숨은" 과거 그리고 현재 찾기

사스키 정원, 자헹타 미술관 그리고 크고 작은 광장


5년전쯤

6주 예정으로 체코 프라하에 떠나기 전

만난 친구가

나의 프라하 체류 계획을 듣더니,

"여행 블로그를 하나 해보라"

는 제안을 했었다.


"좋은 생각이다. 한 번 해보겠다"

대답하고서는,


그 때부터 계속 외국 갈 때마다

언젠가 블로그를 열어야지 생각하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그 상상의 공간에

담고 싶은 풍경이 있는 곳,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곳을

사진에 담았었다.


그렇게 몇년간 상상만 하다가

결국 작년 가을에 시작한 브런치에서

폴란드 관련 글과 사진을 주제별, 지역별로 올리고,


이제 남은 사진들을 훑어보니,


바르샤바 도심에 있긴 한데,

크게 눈에 띄거나 "포토제닉한" 장소가 아니라,

바르샤바에 짧게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잘 안가는 곳들이 보인다.


물론 나의 브런치는 다른 포스트에서도 대체로

그런 "숨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이번 포스트와 다음 포스트에선

특히나

다른 바르샤바의 주요관광지와 함께

여행안내책자에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크게 볼 게 없어" 한국인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는

바르샤바 도심의 작은 역사적 명소들


그리고


그 밖의 관광객들은 잘 모르고,

알아도 별로 안 좋아할 수 있는,

사진발도 별로고, 그 역사도 비교적 짧지만,

나름 이야기와 활기가 있는

그런 장소들을 둘러볼까한다.


우선 이번 포스트에서는

마르샤우콥스카 거리 근처의 작은,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역사적 배경과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장소들부터 쭉 살펴보겠다.

 



마르샤우콥스카 거리(Ulica Marszałkowska)

바르샤바 중심부에 남북으로 길게 난 길이다.


나는 처음에 이게

영어의 martial law(계엄령)의 martial인 줄 알고,

1980년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 이후

1981년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이 길에서 무슨 중요한 사건이 있어서

마르샤우콥스카 거리(Ulica Marszałkowska)가 됐나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폴란드어로 marszał[마르샤우]는

영어의 marshal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 때문에,


바르샤바 사람들은 흔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마샬",

국가원수 자리에 있던

유제프 피우수드스키(Józef Piłsudski)

기리는 명칭이라 여긴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이전 왕정 치하

왕 아래 가장 높은 관직이었던,

현대적 의미의 국가 원수와는 좀 다른,

왕실고관 marshal의 직책에서

나온 명칭이라고 한다.


왕정 치하 17-18세기에 살았던,

비엘린스키(Franciszek Bieliński)라는 사람이

"마샬(marshal)"의 지위에 있을 때

바르샤바가 크게 확장했으며,

이 길도 바로 그 때 그가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직책명이 길 이름이 된 것이다.


아래 지도에서 주황색선이 그 길의 일부고,

(마르샤우콥스카 거리는

이 지도 남쪽으로도 한참 계속된다.)

주황색 네모로 표시한 부분이

이번 포스트에서 우리가 둘러볼 곳,

초록색 네모로 표시한 부분은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둘러본 곳들이다.


(출처: 구글, 위의 "마우샤우콥스키 글자"의 링크를 누르면 지도로 연결됨)


인터넷에서 찾은 조망적 관점의 아래 사진 속에서,

아래쪽에 좌우로 난 큰 길이 바로 그것이다.


By Tiia Monto - Praca własna,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8349028


아마도 이 사진은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

전망대에서 찍은 것 같다.


나는 사실

거기 올라 바르샤바를 둘러본 적은 없지만,

마르샤우콥스카 거리(Ulica Marszałkowska)가

"문화과학궁전" 바로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위치상 거기서 보면

딱 이런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멀리 뒤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붉은색 혹은 주황색 지붕 건물들은

노비 시비아트(Nowy Świat) 즉, 신세계 거리다.



즉, 여기는 관광객들,

특히 유럽 바깥에서 온 관광객들의 이목을 끄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한

바르샤바의 주요 관광지에서도 멀지 않은

진정한 바르샤바의 중심부다.





1. 은행 광장(Plac Bankowy, Bank Square)



은행 광장(Plac Bankowy)

지하철, 트램, 버스 등 갖가지 교통 수단이 모이는

바르샤바 교통의 요지다.


이곳 지하의 ZTM에서는

한달 이상 여러 시내 교통수단을 모두 사용가능한

교통카드도 만들 수 있다.


(2008년 7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광장은

크기가 매우 크고,

고풍스러운 그리고 현대적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로는

겹겹의 버스와 트램 정류장이 지난다.


건설 당시 삼각형 모양이었다는 이 광장엔

재정재무부 궁(pałac Komisji Rządowej Przychodów i Skarbu, Palace of the Ministry of Revenues and Treasury),

재무장관 관저 (pałac Ministra Skarbu)

폴란드 은행 (Bank Polski, Bank of Poland),

주식거래소(Gełda, Stock Exchange)

주요 경제관련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래서

이 광장의 이름이 "은행 광장"이 되었나보다.


지금은 3각 모양도 아니고,

폴란드은행이나 주식거래소도

더 이상 여기에 없고,

예전에 3각을 이루었던 건물 중엔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만 남은 것 같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그 중 사진 오른쪽에 있는 기다란 건물

재정재무부 궁 자리엔

이제

바르샤바 시청(Ratusz),

바르샤바 시장실 등

바르샤바시의 행정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건물 끝쪽엔 카페랑 레스토랑도 있어서,

특별한 민원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이 기다란 건물 안에 들어가 보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나도 이 건물 한 귀퉁이에 있는

소박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한편,

시청 북쪽의 사거리를 대각선 방면으로 건너면

무기고(Arsenał)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2차세계대전 당시

중요한 작전이 수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광장 지하에 있는 1호선 지하철역 이름이

이 근방에 있는 현재와 과거의 중요 시설을 합친

"시청 무기고"라는 뜻의

Ratusz Arsenał[라투슈 아르세나우]가 되었다.


시청 건물 앞 남쪽에는

스워바츠키 동상(pomnik Juliusza Słowackiego)이 서 있는데,


그는 19세기 폴란드 낭만주의 시인으로

재정재무부 궁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어

이곳에 그의 동상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19세기부터 이 자리에 그의 동상이 있던 건 아니고,

원래는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1951년 공산당 주요 인물의 동상이 세워졌다가,

1989년 공산정권이 붕괴되고

그 공산주의 잔재도 함께 무너졌을 때 그 자리에

19세기 낭만주의 시인의 동상이 들어선거다.


근데

난 사실 여기에 동상이 없어도 좋았을 것 같다.


흔한 동상들의

꼿꼿한 자세, 위압적 크기와 무표정한 검은 얼굴을

워낙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주차장 한가운데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혼자 멀끔하게 서 있는 이 거대한 동상이

아무리봐도 난 좀 이상하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고풍스러운 시청 건너편으로는

현대적 건물들만 보이는데,

그 밋밋한 20세기 건축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늘색 마천루(Błękitny Wieżowiec, Blue Skyscraper)"다.


주변에 눈에 띄는 높은 이정표가 없는

나즈막한 스카이라인 위에 우뚝 솟은

이 유리벽 건물이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교통의 요지인 이 광장을

나는 꽤 자주 지나다녔는데,


보통 그냥 무심하게 다니다가,


마침 어느 아주 맑은 날

여유있게 이 근처를 지나다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보게 된 이 건물이 새삼 근사해 보이길래,

카메라를 꺼내

그 이름에 걸맞는 "하늘색 마천루"를

얼른 사진으로 남겼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우리나라에도 유리 외벽으로 된 건물들이 많은데,

왜 한국에선 이런 근사한 하늘을 담은

"하늘 마천루"를 볼 수 없을까 생각해봤는데,


우선은

한국 고층건물은 외벽의 유리가 재질이 달라서

대부분

이렇게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지 않는 것 같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고층건물들은 한국사람들을 닮아

서로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서,

거울처럼 주변을 담는 외벽을 가졌다 하더라도

경쟁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서로서로를 비추느라

하늘을 담을 빈 공간을 갖지 못해서인 것 같다.


'이상하게 유럽에 가면

이렇게 하늘이 변화무쌍하고 멋있는데,

왜 서울에서는 이런 하늘을 못볼까'


라는,

내가 오랫동안 품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도 비슷할 것 같다.


물론 최근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서울의 하늘 빛깔이 예전 같지 않지만,


하늘이,

특히 가을 하늘이 "한 푸르름"하던 몇년 전에도,


오밀조밀 모여세워진 건물들이

시야를 많이 가려서,


애써 고개를 뒤로 젖혀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하늘이 어떤지, 구름이 어떤지

통 느낄 수 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비범하지만,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유리 외벽의 "하늘색 마천루"앞에는

동상치곤 아담하지만,

또 역사적 인물의 동상치곤 특이하게 추상적인

스타진스키 동상(pomnik Stefana Starzyńskiego)이 서 있다.


스타진스키(Starzyński)

1939년 독일군에 점령되었을 때

바르샤바 시장이었던 인물로,

비밀스럽게 폴란드 저항군을 지원했고,

결국 독일군에 체포되어 사망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시청과 시청실 맞은 편에 그의 동상이 세워진거다.


언뜻 보기에

동상 속의 그가 무도회 드레스마냥 두르고 있는 건

동쪽을 위로 가게 놓은 바르샤바 지도인 것 같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 극장 광장(Plac Teatralny)



은행 광장(Plac Bankowy)은 동쪽으로

세나토르 길(Ulica Senatorska)로 이어지는데,


이 길의 북쪽에는 주택가와 상가가,

남쪽에는

사스키 공원(Ogród Saski)이 자리잡고 있다.


주택가, 상가 쪽은 그냥 어느 도시에나 있을법한

그런 평범한 현대적 풍경인데,


그 길 중간에 서 있는

네포무크의 성 요한(św. Jan Nepomucen) 동상이

그나마 그 평범한 현대성을 조금 상쇄시켜준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세나토르 길을 조금 걷다보면 곧

커다란 극장 광장(Plac teatralny)

눈앞에 펼쳐진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이 광장은,

1863년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저항한

"1월 봉기"가 일어났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이 곳이 "극장 광장"이라는 이름은 얻은 건

바로 여기에 19세기에 건설된 고전주의 양식의

국립 오페라 대극장(Teatr Wielki—Opera Narodowa)이 있기 때문이다.


광장 한쪽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극장은

양옆으로 길어서

카메라 한 프레임안에 담기 어렵다.


나는 폴란드에는

매번 공연시즌이 아닌 여름에만 가서

이 극장에서 하는 공연은 보지 못했는데,


비록 "폴란드 국립 발레단"이나

"오페라단"의 명성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규모와 외관, 그 역사로 봐서는,

그리고

폴란드의 다른 공연문화의 수준으로 봐서는,

꽤나 좋은 공연을 선보일 것 같은

꽤나 좋은 극장처럼 보인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극장 건너편에는

국립오페라 대극장 만큼이나 기다란

야브워놉스키 궁(Pałac Jabłonowskich, Jabłonowski Palace)이 마주보고 있는데,


18세기에, 이 광장에 생기기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신르네상스 양식의 이 궁전은

현재는 관공서와 상업시설로 사용된다.


그런데다가 일부분은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로 리모델링 되어 있고,

고풍스러운 스타일을 그대로 살린 부분도

매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오래된 역사적 건물이라는 느낌보다는

놀이동산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그런 "유럽 느낌나는" 가짜 유럽 건물 같아 보인다.


이제 바르샤바에는 몇 개 없는 시티은행과

그 ATM기도 이 건물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현금 인출하러 가끔 안에 들어가곤 했다.


이 건물 뒤쪽에는 궁전 내부 인테리어의 일부가

전시된 조각처럼 돌 받침대 위에 서 있었는데,


난 사실 거기에 쓰여 있는 설명을 보고서야

이게 원래 궁전이었음을 알았다.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야브워놉스키 궁 바로 옆에는

성 알버트와 안드레아 사도 성당(Kościół św. Brata Alberta i św. Andrzeja Apostoła)이 있다.


17세기부터 예수회 성당이 있던 자리였는데,

그 이후 다른 세속적인 용도의 건물이 세워졌고,

수세기후 1999년에 그 자리에 새로 성당을 지어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성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별로 성당 같지 않은 외관에

커다란 건물 가운데 자리 잡은 이 성당은

내부가 흔한 유럽 성당 같지 않고

매우 현대적이다.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3. 사스키 정원(Ogród Saski, Saxon Garden)



"사스키(Saski)"

영어로는 "색슨(Saxon)"이라고 하는,

독일어 Sachsen[작센]의 폴란드식 표기다.


독일 작센 왕조의 혈통이었던

17-18C 폴란드 아우구스투스 2세와 3세 때

이곳에 왕궁을 지어서,

그게

사스키 궁(pałac Saski, Saxon Palace)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18C 그 궁에 딸린 정원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그건

사스키 정원(Ogród Saski, Saxon Garden)이라

불리게 되었다.


왕의 영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는 게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그렇게 혁신적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 된

사스키 정원이 "공원(Park)"이 아니라

"정원(Ogród, Garden)"이란 명칭으로 불리는 건

바로 이런 사연 때문이다.


원래 왕궁에 딸린 정원이었고,

그런데다가 그 왕궁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을 모델로 삼았던 탓에

사스키 정원

"그냥 혼자 편안히 쉬는 공간"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공간"의 느낌이 강하고,

꽃밭이며, 분수며, 조각상이며

일부러 꾸민 듯 보이는 장치가 많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 당시

사스키 궁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공적인 설치물이 파괴되는 바람에,

일부러 꾸민 것 치고는 또

다른 유럽의 정원들만큼 화려하진 않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나는 화려하고 꾸밈 많은 프랑스식 정원보다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의 영국식 정원을 좋아해서

여기는 자주 안 갔었다.


그래도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진 공원인 탓에

나무는 다들 큼직큼직하고,

그런 큼직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면서

자연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고,


이 근처를 지나다 가끔

무성한 나뭇잎 아래를 걷거나 그 아래 앉아 있으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3년 여름엔

사스키 정원 한 쪽에서 상영하는

야외 무료 영화 상영회에도 갔었다.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다른 포스트에서도 쓴 것처럼

여름마다 폴란드 여러 도시에서는

야외에서 밤의 어둠을 스크린으로 삼아

무료 영화를 상영하는데,


사시사철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사스키 정원도 그 중요한 상영 장소 중 하나다.





4. 피우수드스키 광장 (Plac marsz. Józefa Piłsudskiego, Piłsudski Square)



사스키 궁은 이제 아주 작은 부분만 남았는데,


그 일부 남은 궁전의 아치가

사스키 정원이 끝나고

피우수드스키 광장 (Plac marsz. Józefa Piłsudskiego, Piłsudski Square)이 시작되는 곳에서

마치 두 공간을 연결하는 문처럼 서서

두 공간의 경계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계적 아치 안에는

무명용사의 무덤(Grób Nieznanego Żołnierza, Tomb of the Unknown Soldier)이 있다.


두 공간의 경계를 이루는 이 아치에서

"무덤"이라는 과거의 죽음의 공간과

"추모"라는 산 자들의 현재의 기억의 사건이

만난다는 점은 참으로 절묘하다.


두 명의 보초가 항상 지키고 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는

"무명용사의 무덤"은

1차세계대전 당시 르부프(Lwów)시를 지키다

사망한 무명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1920년대 세워졌지만,


그 이후에 폴란드를 위해 싸우다 전장에서 사망한

무명 용사들의 무덤으로

그 추모 범위와 의미가 확장되었다.


오래 전부터 폴란드에서는

사스키 궁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 계획대로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

이곳의 풍경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지도 모르겠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08년 7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피우수드스키 광장 (Plac marsz. Józefa Piłsudskiego, Piłsudski Square)

원래 18C 일반인에게 개방된 사스키 정원에 딸린,

사스키 광장(Plac Saski)이라 불리는

작은 광장이었다.


18-19세기 바르샤바가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때는

이곳에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건설되기도 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폴란드인들은 그 정교회 성당을 무너뜨리고,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데

큰 역할을 한 "마샬" 피우수드스키의 이름을

이 광장에 부여했다.


이후 2차세계대전 중에 독일 점령기에는

"아돌프 히틀러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공산주의 시대 때는"승리 광장(Plac Zwycięstwa)"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결국 1990년대 이후

피우수드스키 광장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통 유럽의 광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그 크기가 많이 크지 않다.


처음 광장이 형성될 때는

그게 작은 크기가 아니었을거고

그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 수에 걸맞는

규모였겠으나,

20세기 이후 도시는 확장된 데 비해

광장은 그대로 남아

상대적으로 작아보여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피우수드스키 광장

서울의 광화문 광장처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처럼 거대하다.


광화문 광장보다는 조금 많이 크고

붉은 광장보다는 좀 작은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두 광장처럼 크기가 크고,

콘크리트 바닥에,

그 위에 별다른 지형물이 없고,

현대 이전에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적도 없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 곳이

특별히 멋있거나

매혹적인 곳이라는 인상은 별로 받지 못했는데,


그래도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크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건지,


이 한 가운데 서 있으면

그 압도적인 크기와

시야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이

탁 트인 주변 공간이 주는

무언가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희안한 감동과 자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공간적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피우수드스키 광장 한 가운데에는

폴란드 국기가 세워져 있고,

광장 한 구석에는 커다란 나무십자가가 서 있다.


공산정권 치하이던 1979년에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바르샤바에 방문했을 때

이 곳에서 미사를 봤다고 한다.


그래서 2005년 교황이 사망했을 때

이 곳에 사람들이

추모의 꽃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여기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는데,

공모에서 우승한 커다란 십자가가

지금 그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즉, 이곳은

현재의 폴란드와 과거의 폴란드,

국가 폴란드와 영적 공동체 폴란드의

상징이 모여 있는 곳이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여름엔 이 광장 동쪽 한 건물에

위대한 폴란드인들의 그림이 내걸렸다.

 

외국인들도 알만한 인물인

쇼팽, 코페르니쿠스, 퀴리부인, 교황 요한 바오로2세를 비롯한 여러 위인들의 얼굴이 걸려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여길 지날 때

내 뒤에 앉아 있던 어떤 폴란드 아주머니가

"뭐니뭐니해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가장 중요한 인물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아마도 그런 폴란드인들의 생각과

피우수드스키 광장과의 깊은 인연으로 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얼굴이

가장 가운데 가장 크게 걸려 있었던 것 같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이전에 여기에 갔을 때는

그냥 "무명용사의 무덤"과 주변 건물들,

그 뒤의 "사스키 정원"등 눈에 띄는 이정표만 보고

지나쳤었는데,


2016년에 갔을 때는

광장 자체의 드넓고 광활함이 새삼 맘에 들어서

동영상도 찍었다.


(동영상:바르샤바 피우수드스키 광장)

(2016년 7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5. 자헹타 미술관(Zachęta Narodowa Galeria Sztuki, Zachęta National Gallery of Art)



자헹타 미술관(Zachęta Narodowa Galeria Sztuki, Zachęta National Gallery of Art)

사스키 정원 바로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사스키 정원에서 나와 찻길을 건너면

바로 자헹타 미술관이다.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바르샤바 대도시엔 크고 작은 미술관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 세 곳을 꼽는다면


바르샤바 국립 박물관 (Muzeum Narodowe),

우야즈두프 미술관(Centrum Sztuki Współczesnej,Centre for Contemporary Art)

자헹타 미술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곳 중에

자헹타 미술관이 가장 만만한 미술관인 것 같다.


작품 수는 "바르샤바 국립 박물관"이 가장 많지만,

묵직한 역사적 작품들도 많고,

미술관의 크기도 크고 해서,

몇 시간씩 시간을 할애해서 볼 생각을 하니,


그냥 지나가다 잠깐 들어가기 보다는

특별하게 하루 날 잡아

시간 넉넉하게 잡아서 가게 되고,


"우야즈두프 미술관"은 전시 작품수는 적은데,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좀 난해하다.


그에 비해서 "자헹타 미술관"

도심 가까이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현대 미술만 전시하지만

전시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고,

전시물이 너무 많거나 적지도 않아서,


그 근처를 지나다가 보통은 아마 30분 정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좀 오래 머무는

나는 1-2시간 정도 그냥 가볍게 보고

기분좋게 나오기에 적절하다.


폴란드어 "zachęta[자헹타]"는

'동기부여, 북돋음, 고취, 격려' 등의 의미로

1860년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의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순수 미술 고취 협회(Towarzystwo Zachęty do Sztuk Pięknych)"라는 단체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것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 하에서 침체되어 있던

순수 미술을 진흥할 목적으로 만든 단체로,

힘들게 러시아의 허가를 받아 결성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냥 자신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던 그 단체가

규모가 커지자

19세기 후반 자신들의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고,

공모를 통해

고전주의와 신-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지금의 건축 디자인이 선정되어

1898년부터 1900년에 건설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가지고 계획하고

공들여 완성한 이 건물은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고전적인 멋이 있고

아담하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매우 정교하다.


이 특별한 건물이 지금처럼 미술관으로 사용된 건

비교적 역사가 길지 않아

1989년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미술관 개방시간은 화-일 12:00-20:00,

입장료는

일반 15즈워티(약 4천원), 할인 10즈워티며,

목요일은 입장이 무료이다.


그 밖의 전시 관련 정보는

영문 홈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여름에 갔을 때는

바깥에 커다란 기둥이 눕혀 있었는데,

들어가서 보니

이것을 만들고 싣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작품이 있었다.


즉, 안의 비디오 작품과 관련된 전시물이었는데,

왜 그렇게 밖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밖에 놓여 있을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우 정교하게 만든 대리석 기둥이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08년 7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08년 7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08년 7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미술관 한가운데에는

아무런 전시물 없는 커다란 빈 공간이 있는데

어쩔 땐 여기에 작품이 전시되기도 한다.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엔 거대한 십자가 조형이 설치되어 있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여름엔 "이민자"라는 주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2013년 여름엔 전시물이 좀 더 특이했다.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미술관 광고 포스터도 좀 그랬다.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미술관 지하 출구 방면에 붙어있는

"해외의 자헹타"라는 제목 밑의 관련 포스터를 보니

외국에서도 전시회를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작품들은 아니지만,

물 건너 먼 길을 올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하게

좋아할 만한 작품은 또 없는 것 같고,


작품의 문제의식도 좀 다른 거 같다.


폴란드인들과 다른 유럽인들에게 관심 있을

"이민자" 같은 주제에 끌려 방문할

한국인 관람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2013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미술관을 나서서 북쪽으로 가면

사스키 정원 바로 건너편에  버스정류장도 있고,

남쪽으로 가면

사람들로 붐비는 상업지구가 등장한다.


현대 폴란드 미술, 현대 폴란드 문화라는

꽤나 특별한 구경을 할 수 있는 장소인데

결국은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들로 가득한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세계로 곧장 접어든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미술관 옆 게시판엔

뭔가 비주류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런 개성 있는 그림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낯익은 국명이 들어간

예술성이 절제된 포스터도 눈에 띤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자헹타 미술관

건물 자체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전시물이나 작가, 관람객 같은

그 안의 능동적, 수동적 내용물은 매우 젊다.


기념품점의 분위기도 그랬다.


작지만 특이한 책들이랑

발랄한 기념품들을 둘러보다가

이 미술관 밖에서 못 본 DVD도 몇 개 사고

작은 기념품도 몇 개 샀는데,

거기서 준 종이 쇼핑백에

Bądź na Bieżąco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혼자 씩 웃었다.


(2016년 7-8월, śródmieście, Warszawa, Poland)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발맞춰가라"

"뒤처지지 마라"는 의미다.


자헹타 미술관은

폴란드 "현대" 미술 작품만을 전시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이런 슬로건을 내건 것이겠지만,


사실

자헹타 미술관의 전시물은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첨단의 유행이라기 보다는,


뭔가 지금 세상에서 흘러가고 있는

흔한 유행에 "발맞추지 않고"

"시대적 흐름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그런 예술작품들을 전시하지 않던가?


어쩌면 미술관에 다니는 행위 자체가

너무 아날로그적이고,

한물 간,

현재의 디지털한 경향에 발맞추지 못하는,

철 지난, 지난 세기적 습성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발맞춰 가라"는

Bądź na Bieżąco라는 슬로건은

어쩌면

세상의 것들에 눈과 귀는 열고,

그것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그런 흐름들에 애써 발맞춰가기보다

주류적 흐름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자기 갈 길을 가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리고

역시나 앞서가는 사람들과 다른 감수성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굳이 미술관에 가서

직접 작품과 대면하는 데서 높은 만족을 느끼고

여전히

그런 "구식 취미"를 즐기는 걸

남몰래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날로그적 존재들이

세상에 던지는 허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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