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ernicus Science Centre)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뿐 아니라
폴란드가 어디 있는지 자체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폴란드와 폴란드인에 대해 잘 모르는 게
한국인만은 아니다.
쇼팽, 퀴리부인, 코페르니쿠스 등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들이 폴란드 출신인 걸 아는 사람 역시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많지 않다.
폴란드어를 배우기 전엔
나도 그걸 모르는 대다수 중 하나였다.
사실
대외적으로 유명한 폴란드인
"쇼팽(Chopin)"과 "퀴리(Curie)"의 성은
매우 프랑스어처럼 들리고
(실제로 Chopin을 "쇼팽"이라고 읽는 건
프랑스식 발음이고,
Curie는
마리아 스크워돕스카(Maria Skłodowska)의
프랑스인 남편의 성이기도 하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 사람의 성 같이 들린다.
그나마 전전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인인 건
그래도 좀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이후 이탈리아 출신 아닌 교황이
2명이나 더 선출되었고,
이미 고인이 된 교황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는
사실 폴란드 밖 비가톨릭교도에게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중 "가장 옛날 사람"인 코페르니쿠스는
15-16세기에 살았다.
정확한 연도를 찾아보니,
코페르니쿠스는
야기에워(Jagiełło) 왕조 말기에 살았는데,
야기에워 왕조가 끝나고
16세기 후반,
폴란드는 동쪽의 리투아니아와 결합한
폴란드-리투아이나 연합(Polish–Lithuanian Commonwealth)으로
세계 역사에 등장하며,
이때가
폴란드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졌던
대외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다.
서쪽과 북쪽의 독일 관할 지역도 되찾고,
동쪽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일부도 점령했었다.
쇼팽이나 퀴리 부인이
폴란드가 러시아, 프로이센(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3국분할되어
지도에서 사라졌던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폴란드 출신이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대전을 겪고, 공산 정권이 들어선
오랫동안 자유가 박탈된
폴란드에 살았던 것에 비교하면,
코페르니쿠스는 꽤나 좋은 시기에 살았던거다.
물론 그 때는 아직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별로 강하던 시기가 아니었고,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가족들은
일상생활에서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하니,
그에게 크게 의미가 없는 개념이었을,
그의 "조국"이 번성해서가 아니라
비교적 경제적으로 번영되고
자유가 덜 억압되며
미래가 희망적인 시절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폴란드 사람들은
그를 코페르닉(Kopernik)이라 부르는데,
Koper[코페르]는 폴란드어로
딜(dill), 회향(fennel)이라는 풀을 의미하고,
-nik[닉]은 슬라브어 전반에서 발견되는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접미사다.
아마도 그의 부계 조상 중에
그런 풀을 기르거나 수집한 사람이 있었나보다.
폴란드어로 코페르닉(Kopernik)인 그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라는 성으로 알려진 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책을 라틴어로 쓰면서
그 책의 저자명도
라틴어식으로 Copernicus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중세 가톨릭유럽에선
흔히 "말하는 언어"와 "쓰는 언어"가 분리되어
각자 자기나라 말로 말하더라도
공식 문서를 쓸 때나 종교의식을 할 때는
라틴어를 사용했었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틴어로 쓰여진 "데카르트"의 책을 발견하고
신기해 한 적 있는데,
아마 데카르트, 코페르니쿠스 뿐 아니라
다른 당시의 유럽 지식인들도
모두 라틴어로 저술을 했을거다.
500년전
1517년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니,
사실
16세기 중반이면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기타 문헌을 자국어로 저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땐데,
지금도 가톨릭 신자가 많은 폴란드는
그 때도 종교개혁에 크게 흔들리지 않아
신교로 많이 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폴란드 지역에 살던 코페르니쿠스가,
종교개혁만큼이나 혁명적 세계관을 담은
"지동설"에 대한 글을
라틴어로 쓴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그의 폴란드식 성 Kopernik을 음차한
2음절 더 짧은 "코페르닉"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쉽게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북부의 토룬(Toru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아마 코페르니쿠스와 관련된 유적은
거기에 많을거다.
아직 토룬(Toruń)에 가본 적은 없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거기엔 그의 생가도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크라쿠프(Kraków)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하니,
아마 크라쿠프에도 그가 머물렀던 곳이라든가,
그가 공부했던 곳이라든가 하는
그와 관련된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의 짧은 전기에서
바르샤바(Warszawa)와 관련된 얘긴 안 나온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생전에
바르샤바에 간 적은 없는 것 같고,
현재
바르샤바 비스와(Wisła) 강변에 위치한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Copernicus Science Centre, Centrum Nauki Kopernik)에도
딱히
코페르니쿠스는 없다.
그냥
전세계가 다 아는 폴란드 출신 과학자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붙였을 뿐,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에서 방점은
무엇보다도
"과학"에 찍힌다.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Copernicus Science Centre, Centrum Nauki Kopernik)는
비스와(Wisła) 강변 서쪽,
BUW(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와 멀리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하철 2호선 Centrum Nauki Kopernik(코페르니쿠스 과학센터) 역에서 내리거나,
102, 162, 185, 385번 버스를 타고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Metro Centrum Nauki Kopernik(코페르니쿠스 과학센터 지하철역)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지도에서도 주변이 거의 다 녹색인 게 보이지만,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 주변은 그냥 풀밭이고,
따로 뭐 이렇다할 건물이 없다.
이건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
주변만 그런 게 아니라,
바르샤바를 동서로 흐르는
비스와(Wisła) 강변의 풍경이 대체로 이렇다.
다른 포스트에서 돌아봤던
강 동쪽 프라가(Praga) 쪽은 더 심하다.
그쪽 강변은 건물은 거의 없고
거의 녹지만 보인다.
덕분에 비스와(Wisła) 강변은
별로 "볼 게 없어서"
다른 감각들을 열고 걷기 너무 좋다.
누군가는 이걸 보며
이 전망 좋은 곳을 주택지로 개발하지 않은
심각한 경제적 안목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여러모로 경제적 가치가 커 보이는 땅을
섣불리 개발하지 않은
바르샤바인들의 절제력과 친환경적 안목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물론
요즘 뉴스에 나오는 걸로 봐서는
현폴란드 정부가
그런 절제력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도
현재까지 바르샤바 비스와 강변의 풍경은 이렇다.
위 지도에 회색으로 나온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의 길건너편 쪽은
지금 한참 개발중인데,
고층건물보다는
고급빌라와 비교적 낮은 상가를 짓고 있는 것 같아
역시나 뭔가 막혀 있는 느낌이 없다.
아래 사진은 내가 2013년 여름에
비스와 강변을 걷다가
석양에 반해서 찍은 사진이라
피사체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는데,
구시가(Stare Miasto, Old Town)가 있는
비스와 강변 서쪽에는
동쪽보다 그래도 건물이 많지만,
바르샤바 구시가 말고는
네모 반듯한 줄무늬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 건물 뒤로
눈에 띄게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주변에 다른 특별한 건물이 많지 않고
그냥 좀 휑하다.
아마 어떤 길치라도
단번에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의미 있는 이정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역 입구 바로 앞에
칼과 방패를 든 바르샤바 인어
시렌카(Syrenka)의 커다란 동상이 있고,
여기서 육안으로 바로 보이진 않지만,
강변 따라 1블록 정도 걸으면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BUW)도 나온다.
BUW에 자주 다녔던 나는
그래서 이 지하철역을 꽤 자주 이용했었고,
이 근방도 자주 돌아다녔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올 때도
다른 건물에 특별히 가려지지 않은 채
널따란 하늘이 눈 앞에 바로 그냥 펼쳐진다.
(바르샤바의 모든 지하철 역 입구가 다 이런 풍경인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무언가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뭔진 모르지만
아마도 CF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전거 타고 가는 똑같은 장면을
여러번 찍었다.
지하철역에서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 가는 길엔
여기저기에
이것이 과학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혹은 과학과의 연관성이 너무 분명한 장치들이
이것저것 보였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 찍거나
직접 체험해보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2010년에 개관한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는
이것저것 직접 만지고 체험하면서
과학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난
2013년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16년 여름에 처음 가봤다.
2013년엔
지하철 2호선이 아직 개통되지 않았고,
그래서
이 쪽으로 잘 다니지 않아서 그랬는지,
당시 홈스테이 여주인에게서
'한 번 가보라. 추천한다'는 얘길 듣고,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결국은 못 갔고,
2016년엔 이 근처에 여러 번 지나다니면서,
여러 번 입장을 시도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성공하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는
크게 본관과
플라네타륨(Planetarium),
체험 공원(Discovery Park)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야외의 체험 공원 말고,
플라네타륨만 가고
본관은 못 들어가봤기 때문이다.
본관 입장료는
일반 27즈워티(약 8,000원 정도),
할인 18즈워티(약 6,000원 정도),
프라네타륨 입장료는
일반22[2D], 27[3D]즈워티,
할인 16[2D], 21[3D]즈워티다.
개장 시간은 요일마다, 또 시즌마다 다른데
월요일은 휴무고
다른 요일은 보통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에 열고,
저녁 6시-7시에 닫으니
미리 시간을 체크해보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영문 홈페이지]
아래 조감적 사진에서
ㄱ 자 건물이 본관이고,
붉은색 안의 흰 동그라미 건물이 천문대다.
위에서 보면 이렇게 특별한데,
아래서,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옆에서 보면,
건물이 크기만 하지,
별로 매력적이진 않다.
모양은 그냥 평범하게 네모지고,
낮은 채도의 알록달록한 벽 색깔도
내 눈엔 별로 근사해보이진 않는다.
물론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인 것이니,
누군가에겐 무척 멋져 보일수도 있겠다.
사실 나에게도 보통은 그냥 밋밋해 보였지만,
어떤 날은 또 근사해 보이기도 했다.
동남쪽으로
비스와(Wisła) 강 위
시벵토크쥐스키 다리(Most Świętokrzyski)와
강 건너
바르샤바 국립 경기장(PGE Narodowy)이 보인다.
사실 이쪽은 인공적인 건
별로 볼 게 없는데,
드넓은 하늘이 변화무쌍하다.
본관 뒤쪽에
둥근 야외무대와
그걸 한쪽으로 둘러싼 등받이 없는
돌벤치가 만들어져 있는데,
2016년 여름엔
여기에 밤에 상영해주는 무료 영화를 봤다.
"스카리솁스키(Skaryszewski) 공원" 포스트에서
말한 것처럼,
여름동안 바르샤바의 여러 장소에서
각각 다른 요일에
각각 다른 장르의 영화를 상영해주는 행사를
매년 여름 진행하는데,
작년에 여기서는 월요일인가 화요일마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라는 장소에
너무 잘 어울리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도
매우 재미있었다.
해가 지기 전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는
(햇볕 가림막이 없어서 해가 져야
영화가 상영될 수 있다)
원로 과학자인지 다른 영역의 원로 지식인인지,
폴란드인이라면 다 아는지
특별한 소개 없이
그냥 이름만 언급된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도 하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처럼
그 분에게 아무 질문이나 하는 시간도 주어졌는데,
그 질문들도 그리고
그 지적인 어르신의 대답도 흥미로왔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가 한 질문마저도 지적이었다.
진화론, 창조론의 문제를 어린이 관점에서
어린이의 언어로 질문했고,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원로지식인은 나름대로 성의있게 대답을 했다.
아, 정말 이 지적인 분위기라니!!!
우리도 그런 원로지식인이
그런 자리에 기꺼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또 그의 말이 꼰대의 잔소리가 아니고
식견과 지혜의 말씀으로 해석되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그렇게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모임에서 진행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 때 그런 자리도
다큐멘터리 영화도 모두 재미있었는데,
영화가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나,
집에 돌아갈 일이 걱정이라
이번에도 역시 영화 끝나기 전 좀 일찍 빠져나왔다.
이게 그 지적인 대화의 시간,
이게 그날 상영된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 야외 무대 근처엔
이런 신기하게 생긴 장치가 세워져 있었는데,
내가 갈 때마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 건지,
아니면 아직 작동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시작하는 법을 못 찾았는지
그냥 이렇게 모니터가 꺼진 채로 세워져 있었다.
외계인과 통신하는 장치가 아닐까
그냥 혼자 그렇게 생각만 하면서 지나쳤다.
2016년 8월 어느 날
드디어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에 갔는데,
선택지가 두 개,
즉 본관과 플라네타륨(Planetarium)이라는 걸 알고
우선 플라네타륨에 가보기로 했다.
예전에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플라네타륨에 가 본적이 있는데,
어린이들 사이에 혼자 어른인 게
좀 뻘쭘하긴 했지만,
불이 꺼지면
둥근 반구 천장에
별들이 빼꼭한 밤하늘이 나타나고,
그 별들에 대해 이것저것 쉽게 설명해주는 형식의
그 희안한 "별구경"이 재미있었다.
갑자기 그 때 기억이 떠오르며
우선 그 날은
플라네타륨에 가보고
본관은 나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플라네타륨에서 가장 빨리 하는 공연의
좌석을 예매하고 시작하길 기다렸다.
플라네타륨은 본관 뒤쪽에 있고,
입구도 매표소도 따로 있다.
상영시간이 되어
입장하게 되자
입구에서 3D 입체 안경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래서 기대는 또 커졌다.
그리고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또는 기대했던 그 플라네타륨이 아니었다.
반구 위에 우주를 펼쳐 놓고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우주선 및 우주 개발과 관련된
어린이용 과학 에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그런 거였다.
사실 그런 영화를 꼭 플라네타륨에서
입체 안경쓰고,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그렇게 봐야 하나?
머리 위로 별을 가득 쏴주던
일리노이 변두리의, 내 인생 첫 플라네타륨이
내 머릿속 플라네타륨의 전형이 되어 버려 그런지,
어쩌면 보다 발전적인 형태일 그 최신식 공연을
흥미롭게 즐겁게 받아들이기 보다
좀 더 아날로그적인 옛 것과 비교하며
마음이 자꾸 밀어냈다.
그렇게 1시간을
과학 에니메이션을 보고 나오는데
기분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 괜히 커졌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전까지 그거 없이 잘 살았는데 말이다.
그 다음 날 폴란드어 수업에서
천문학 전공 중국 여자애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바르샤바에서 별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자기도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바르샤바 시내의 가장 높은 건물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에
플라네타륨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며,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에도 있는 줄은 몰랐단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당장 그 시내의 플라네타륨에 갈 것 같았는데,
또 뭔가 다른 곳을 가고,
다른 일들을 하느라,
거길 미처 못 가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또
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아무튼 그 때는
그래서 뭔가 아쉬운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와서
건물 밖으로 나서려다가
그 상영관이
그 플라네타륨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옆으로 계단과 복도가 있고,
거기에도 무언가 전시물이 있었다.
어떤 건 상호소통(interactive) 장치이기도 해서
이것저것 누르면
새로운 화면으로 새로운 지식을 접할 수도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아닌데 나쁘지 않다.
그리고 천정이 높은 내부 공간도 마음에 든다.
별거 아닌데
갑자기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그렇게 옥상까지 올라갔다.
그 날 낮에 계속 비가 왔는데,
갑자기 비가 그치고 날이 맑아졌다.
그리고 둥글게 뜬 어여쁜 무지개도 만났다.
이런!!!!
보너스를 하나 더 받았다.
옥상에 의자가 있길래,
거기 앉아서 그렇게 한참을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별보러 갔다 별은 못 봤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선명한 무지개를 만났으니,
뭐 나쁘진 않다.
사실 무지개만큼
원본보다 카피본을 많이 접하는 자연도 없을거다.
실생활에서 이보다 자주 형상화된 자연이
또 없지만
실물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아, 그러고보니 대도시인들에게는 별도 그렇다.
그렇게 또 별과 무지개가
비과학적 연관성을 갖게 되는구나.
아무튼
쉽게 실망한 마음을
또 그렇게 쉽게 보상받고
기분 좋게 플라네타륨을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에 두 번 정도
코페르니쿠스 과학센터 본관에 가봤는데,
한번은 줄 서 있는 사람이 너무 많길래,
'다음에 와야겠다' 생각하고 그냥 나왔고,
다른 한 번은 줄 안서려고 서둘러서 일찍 갔는데,
발권시스템인지 무언가 문제가 생겨
입장권을 살 수 없는 상태여서
결국 못 들어갔다.
원래 '코페르니쿠스'가 없는
'코페르니쿠스' '과학'센터에서
난 그나마
제대로된 '과학' 체험도 못하고 만거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에 가면
기술적으로 좀 더 업그레이드된
코페르니쿠스 과학센터를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은
별이고,
코페르니쿠스고,
플라네타륨이고
또 까맣게 잊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 것이다.